"저는 '떡쟁이'입니다. 한 마디로 떡에 제 인생의 승부를 걸었죠. 쟁이라는 말이 '장인(匠人)'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떡쟁이라는 호칭이 정말 좋습니다."15일 오전에 찾아간 떡쟁이 차상현(남, 32)씨가 운영하는 희망떡집. 수원시 팔달구에 소재한 떡집에서 차상현씨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떡 만들기를 멈추지 않는다. 손으로 만드는 수제 떡이지만 그 속도는 기계에 비해 늦지 않다. 그렇게 빠르지 않으면 떡 장사를 할 수 없다.
"제가 떡을 이렇게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게 이제 3년 정도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직장생활을 했어요. 아버님께서 기계 제작을 하셨는데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죠. 그런데 화재로 공장이 다 타버리고, 저는 나름대로 배운 것이 있어 직업훈련학교에 들어가 기계에 대해서 공부를 했어요."세상살이는 그리 수월치 않았다고 한다. 직장에서 나이가 먹어 순차적으로 직장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평생 직업으로 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젊은 나이라 집안의 부채를 갚느라고 투잡으로 야간에 대리운전을 하면서 손님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떡쟁이'가 제 운명인 듯해요"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평생직장이 될 것인가를 알아보던 중에, 떡 공장을 운영하는 손님의 차를 대리운전하게 되었단다.
"그 손님이 많이 취하셨는데, 요즈음 젊은이들은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자신이 떡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런 기술을 다 물려주고 싶어도, 물려줄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하시면서 푸념을 하시기에 명함을 한 장 달라고 했어요."상현씨는 부채를 청산하는 날 바로 연락을 취하고 그 떡 공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3~4년간을 서울, 수원, 인천 등을 돌아다니면서, 떡이 맛있다고 소문난 집은 다 찾아가 기술을 배웠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바로 오늘의 '희망떡집'이다.
"저는 떡쟁이가 팔자인 듯해요. 저희 집은 떡을 해놓고 한 번도 날짜를 넘겨 팔지를 않았어요. 그날그날 팔 수 있을 정도만 만들고, 팔리지 않는 것은 문을 닫을 시간이 되면 싸게 팔아 버려요. 가장 맛있는 떡을 손님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죠."
우리 떡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어떡집에 젊은 손님들이 찾아들었다. 장안대학교 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과 2학년생인 김진아양과 정예지양이다. 이들은 희망떡집의 홍보와 떡의 패키지 디자인 등을 잘 정리한 자료를 갖고 있다. 산학연계로 지역에 있는 기업을 홍보하기 위해 조별로 한 집씩 맡아서, 그 집의 모든 것을 다 책임지고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게 하고 있다.
"이 분들이 찾아온 것도 저에게는 호기인 것 같아요. 제가 떡을 만들다 보니까 우리 떡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어요. 전통적인 것은 물론이고 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떡이에요. 저희들이 쉬지 않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을 하는 것도, 떡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떡을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이분들과 함께 고민을 해보아야죠."아직은 작은 가게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떡쟁이 차상현씨의 욕심은 끝이 없다. 떡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열심이다. 스스로가 그것을 천직으로 알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는 떡을 만드시는 분들이 함께 화합하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한국떡협회 수원지회 매산분회장을 맡고 있는데, 주변에 떡을 하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는 해요. 같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우리 떡을 더 많은 분들이 찾을 것 같아서죠."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른스런 생각을 하는 것도, 그동안 오래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란다. "남들이 노안이라고 해요." 떡집에서 떡 케이크를 만들던 부인의 말이다. 매신시장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있는 희망떡집 떡쟁이 차상현씨. 우리의 전통음식인 떡을 세계화를 시키고 싶다는 그의 욕심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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