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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반핵시위가 한창이던 1984년 미국 텍사스. 그레고리 존슨이라는 사내는 항의의 표시로 옆 동료가 건네준 성조기에 기름을 묻혀 불살랐다. 그는 국기를 모독했다는 죄로 기소되어 텍사스 주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에 벌금 2000달러를 선고받는다. 존슨은 이 처벌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연방대법원에 항소했고, 이에 맞서 의회는 1989년 성조기 방화를 막기 위한 성조기 보호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듬해, 연방대법원은 성조기 보호법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판결 이유가 중요하다. 미 연방대법원은 성조기를 훼손했다고 그 사람을 처벌한다면 성조기가 상징하는 소중한 자유가 훼손될 것이라고 봤다. 종교, 언론·출판,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의회가 이를 방해할 어떤 법도 만들지 못하도록 한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따른 결과다. 1791년 미국의 권리장전을 구성하는 10개 개정안 중 하나인 수정헌법 제1조의 전문은 이렇다.

"의회는 종교를 만들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

비교적 역사가 짧고 다인종 국가로 이루어진 미국에서 성조기가 가지는 의미는 오랜 역사와 민족적 정체성이 강한 나라의 국기가 가지는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국가통합과 정체성의 상징 그 자체다. 그럼에도 미국 연방대법원은 자신들의 성조기가 추구하는 국가정체성이란 자신을 불사르는 표현의 자유조차 용인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 지킨 성조기, 표현의 자유 검거하는 태극기?

세월호 들어 올린 4160개 촛불 지난 17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1주기를 맞아 4160명의 촛불로 세월호 형상을 만들어 기네스북 등재를 도전하고 있다.
세월호 들어 올린 4160개 촛불지난 17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1주기를 맞아 4160명의 촛불로 세월호 형상을 만들어 기네스북 등재를 도전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미국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이 사건은 2015년 대한민국에서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보수언론이 태극기를 불사르는 한 청년의 사진을 보도한 이후, 보수단체는 "경건해야 할 세월호 추모식이 폭력 추모식으로 변질됐다"며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고, 경찰 역시 검거를 위해 신원파악에 주력 중이다.

2015년 대한민국에서 미국과 같은 표현의 자유 수준을 기대하는 것을 무리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일각의 반응은 코미디에 가깝다. 이를테면 지난 20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있었던 김진태(새누리당) 의원의 발언이다.

그는 지난 18일 세월호 참사 1주년 범국민대회를 거론하며 "'성완종 리스트 정쟁' 때문에 정신을 팔고 있는 동안 태극기가 불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태극기를 불태운 것은 대한민국 국민을 불태운 것인데 이를 방치하면 이게 국가냐"라고 외쳤다.

태극기가 불탄 이유가 성완종 리스트 때문이라는 것인지, 성조기 방화를 용인하는 미국은 국가가 아니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게다가 300여 명의 생명이 수장되고 있던 상황에서 너무나도 무력했던 국가의 모습에 "이게 국가냐?"를 외쳤던 사람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며 세월호 인양에 반대했으며, 남은 실종자 9명의 유가족에게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 것"이라고 했던 사람이 다름 아닌 김진태 의원 아닌가? 수장되는 아이들을 방치한 것은 국가고, 태극기 방화를 방치하면 국가가 아니라는 이런 논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가 지킬 것은 태극기인가, 진정한 국가인가

우리에겐 미국보다 국가정체성을 상징하는 여러 요소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태극기 역시 국가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국가정체성이란,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단지 태극기 그 자체일 뿐인가?

국가의 최우선적 책무는 국민의 안전 보장이다. 세월호 참사가 국민에게 충격을 던진 이유는 이것이 단지 하나의 '사고'나 '사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 과정에서 국가를, 국가의 책무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단지 사건 자체에 대한 슬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국민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 자신의 원초적 책무를 방기하는 국가에 대한 분노였다. 

여당 국회의원들의 눈에는 태극기가 타들어가는 것만 보이고, 성완종 리스트에 나타난 고위급 정치인들의 부패, 여전히 진상규명과는 거리가 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당연한 조문조차 막아서고 물대포를 쏘아대는 공권력의 모습에 타들어가는 국민의 마음은 보이지 않는가? 당장 정권이 위기에 몰렸다고, 태극기 방화 사건을 확대·재생산하여 당사자를 추적·검거하면서 국면전환에 성공하면, 국가의 위신이 바로 서는가, 국가의 정체성이 존립되는가?

우리가 지켜야할 것은 단지 태극기가 아니다. 태극기가 상징해야 할 국가정체성은 위험에 처한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패막이다. 국가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면, 국가 스스로 나서 진상을 확인하고 재발방지를 확실하게 세워놓는 책임감을 보여야 했다.

이 사회의 썩은 부정부패의 단서가 잡혔다면, 국가가 나서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무엇보다, 어린 생명들의 죽음에 국가의 책임이 있었다면, 국가운영에 책임이 있는 여당 국회의원이라면, 부끄러움을 먼저 느껴야 했다. 그럴 때 태극기는 단지 종이나 천 조각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할 소중한 국기로 우뚝 선다.

 1987년 6월 26일 평화대행진 도중 갑자기 나타난 '아! 나의 조국'. 이 사진은 1999년 AP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진'에 포함됐다.
1987년 6월 26일 평화대행진 도중 갑자기 나타난 '아! 나의 조국'. 이 사진은 1999년 AP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진'에 포함됐다. ⓒ 고명진

1987년 6월의 거리에 존재했던 태극기는 잘못된 국가권력에 대한 심판을 통해 제대로 된 국가정체성을 세우고자 했던 국민의 의지였다. 그래서 그 순간의 태극기는 무엇보다 소중했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보수는, 우리의 여당 국회의원들은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 채, 부정과 부패의 늪에 허덕이고 있는데 오로지 태극기만 보고 있다.

되물어야 옳다. "태극기 방화에 정신을 팔고 있는 동안 국민의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세월호가 수장된 것은 국민이 수장된 것이었는데, 이를 방치했으면 이게 국가냐?"고.

불에 탄 성조기는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국가정체성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불에 탄 우리의 태극기가 단지 정국 전환용으로만 활용된다면, 그게 바로 '국민 모독'이다. 


#태극기#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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