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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씨알 강의 책 표지
다석 씨알 강의책 표지 ⓒ 교양인

한민족이 낳은 위대한 사상가로 알려진 다석 류영모의 강의록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다석의 제자 주규식이 4.19 혁명 이후 진행된 류영모의 강의를 기록해 오늘날 우리 말로 쉽게 풀어썼다. 역시 다석의 제자인 박영호가 풀이글을 덧붙였다. 함석헌, 김흥호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다석의 가르침은 아직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제자 박영호 등에 의해 <다석 전기> 등이 나온 바 있지만 다석사상의 핵심이 녹아있는 일기 등은 아직 출판되지 않았다.

지난 3월 교양인에서 출간된 <다석 씨알 강의>는 이러한 아쉬움을 얼마간 달랠 수 있는 책이다. 4.19 혁명을 목격한 다석의 심상과 제자 함석헌의 실덕에 대한 실망, 그 자신의 사상에 대한 설파 등을 부분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석 류영모가 1959년부터 1961년까지 종로 YMCA 연경반에서 한 강의가 핵심 내용이다. 광복 이래 이렇다 할 사상가를 배출하지 못한 한국에서 다석과 같은 인물의 사상을 정리하는 책이 나온 건 의미있는 작업이다.

다석 사상의 핵심은 제나를 넘어 얼나에 이르는 것이다. 물질 세계에 묶인 제나를 넘어 영원과 진리에 다가서는 얼나를 깨닫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다석은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 기독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부활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에게선 '가르침은 여럿이지만 진리는 하나'라는 일원다교의 사상 아래 독자적인 시각에서 외부의 가르침을 수용하는 자세가 빛난다.

유교와 불교, 기독교를 아우르는 그의 사상은 동서양의 유명 사상가와 비교해 새롭고 깊지는 않을지언정 자유롭고 주체적이라는 점에서 특색이 있다. 그의 철학은 기독교를 줄기로 삼아 불교, 노장 사상, 유교 등을 아우르는데 무엇보다 한국의 말과 글이 중심이 되어 외국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는 스스로 4·19혁명에 동참하지는 않았으나 거리로 나선 젊은이들의 의기와 희생을 기리고 민주주의의 승리를 기뻐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대목에선 정부와 시민이 광장에서 대치하는 오늘의 현실을 발견할 수 있다. 다석에게선 스스로 금욕적인 삶을 살며 얼나로 나아가기 위해 정진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독자는 이로부터 물질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선인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한국이 처한 열악한 현실에서 동서양의 사상을 주체적으로 바라보는 모습에선 의연한 기상까지 읽힌다.

물론 이 책이 오늘날 한국이 처한 어려움에 어떠한 해답을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사상은 사회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이고 물질적이라기보다는 영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4.19 혁명의 가치를 인정한 민주주의자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불의에 맞서 일어서는 게 얼나에 어긋나지 않은 길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의 사상에선 독자적이고 주체적이며 민주적인 가능성이 엿보인다. 우리가 그의 사상을 받아들여 발전시켜야 할 이유다.

<다석 씨알 강의>는 다석 사상의 진수가 담긴 책이 아니다. 그의 강연을 받아적은 내용에 제자들이 해설을 붙인 정도에 불과하다. 다석의 진정한 사상은 그의 내밀한 글이 출간될 때에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 책이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진정한 어른을 찾기 힘든 한국의 오늘날 한국 최초의 사상가로 손꼽히는 다석의 사상을 부분적으로나마 접하는 건 의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다석을 읽고 알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다석 씨알 강의>(류영모, 주규식, 박영호 지음 / 교양인 / 2015.03. / 1만 8000원)



다석 씨알 강의 - 1959~1961년 강의록 45편

류영모 강의, 박영호 해설, 주규식 기록, 교양인(2015)


#다석 씨알 강의#류영모#주규식#박영호#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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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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