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동안 두 눈이 부르튼 채 이렇게 서 있소 -이상옥의 디카시 <땅끝마을에서>메르스 공포로 온 나라가 긴장국면인 가운데, 지난 주말의 땅끝마을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말의 작은 음악회도 취소한다는 공고도 본 것 같다. 해남의 땅끝마을은 최고의 휴양지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는바, 메르스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방문객들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땅끝마을의 아름다운 풍광은 방문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족했다.
송호해변에서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대한민국 최남단 땅끝마을 가기 조금 전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호수 같은 바다를 볼 수 있는 송호리해수욕장이 있다. 송호해변은 다소 썰렁한 듯하고, 아직 본격적인 해수욕장 개장이 이루어지지 않아서인지 주변환경도 비닐봉지가 나뒹구는 등 제대로 정비가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길가에는 차들이 죽 늘어서 파킹되어 있고, 모래해변에는 부모와 함께 한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기도 하고, 툭 틘 바다를 바라보며 연인들이 산책을 하기도 했다.
송호해변의 송림은 바다와 함께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이곳에 잠시 산책을 하고 길을 따라 좀더 가니, 땅끝마을 표지석이 있는 곳이 나타난다. 바로 대한민국 최남단 땅끝마을이다.
땅끝마을 입구에는 작은 찻집도 있다. 땅끝마을에서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특별하다. 차를 마시며 '땅끝마을', 하고 가만히 읊조려 보면, 이 이름이 생각의 생각의 꼬리를 계속 문다. 땅에도 끝이 있고, 사람의 목숨도 끝이 있다. 땅끝 저편에는 또 무엇이 있는가. 사람의 목숨이 끝나고 나면 과연 끝나버리는 것인가. 암흑, 무의 세계로 귀결되는 것인가.
땅끝마을 주변은 볼거리도 많다.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땅끝조각공원, 아름다운 절 미황사와 천년고찰 대흥사, 그리고 공룡박물관 등등... 땅끝마을 전망대에 서면 이곳이 대한민국 땅끝이라는 것도 실감난다.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망부석(望婦石)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국토 최남단 땅끝마을에는 사람 형상의 돌 하나가 바다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얼굴형상에서 눈 부분이 부르튼 것처럼 보인다. 누구를 기다리다 저렇게 돌이 되었는가.
정절이 곧은 아내가 타관에 간 남편을 고개나 산마루에서 기다리다가 죽어서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望夫石) 얘기와는 달리, 이 돌은 남성성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봐서 또 다른 전설이 깃들 만하다.
혹시 해녀였던 아내가 불의 사고로 실종되고서 그 아내를 기다라는 남편의 형상은 아닌가. 그래서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망부석(望婦石)이라고 하면 설득력이 있겠다 싶다.
이런 시적 상상을 하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금방 하루해가 저문다. 또 다른 날을 기약할 수밖에...
덧붙이는 글 |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이제는 채호석 교수가 쓴 <청소년을 위한 한국현대문학사>(두리미디어, 2009)에 새로운 시문학의 한 장르로 소개되어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디카시는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날시)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순간 소통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