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보다 훨씬 작지만,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이 드는 피렌체. 좁은 '포씨 거리(via dei Fossi)'를 지나 아르노강을 가로지르는 6개의 다리 중 하나인 '카라이아 다리(Fonte alla Carraia)'를 건너다보니 '베키오 다리'도 보이고, 강 건너 '산 페르디난도 성당'도 눈에 들어옵니다. 저 멀리 '미켈란젤로 언덕'도 얼핏 보입니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습니다. 오늘은 피렌체에서의 첫 날. 온몸으로 피렌체의 공기를 느끼며 천천히 걷습니다.
구글 맵을 통해 몇 번이나 미리 익혀두었던 거리와 교차로들을 지나 도착한 곳은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Chiesa di Santa Maria del Carmine)'입니다.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파사드는 역시 구글 맵에서 본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정문이 닫혀 있습니다.
순간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정문 오른쪽의 화살표가 내 목적지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이탈리아 가정집의 정문 같은 나무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소박한 정원과 회랑을 지나면 그곳에 내가 만나고 싶었던 또 다른 기적이 꼭꼭 숨어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절묘한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르네상스 회화를 탄생시킨 곳. 바로 '브랑카치 예배당(Cappella Brancacci)'입니다. 그 주인공은 또 다시 마사초입니다.
1424년, 당시 피렌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가 중 한 명이었던 마솔리노는 브랑카치 가문으로부터 가족 예배당을 장식할 프레스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마솔리노는 당시의 관습대로 제자인(혹은 후배) 마사초와 함께 작업합니다. 그런데 마솔리노는 1426년, 또 다른 유력자의 주문을 받고 피렌체를 떠납니다.
1427년까지 홀로 작업을 이어가던 마사초는 완성을 앞둔 1428년, 27세란 나이에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최종적으로 모든 작업을 완료한 것은 필리피노 리피입니다. 3명의 거장들에 의해 완성된 '브랑카치 예배당'의 프레스코. 그중에서 우리가 기념하는 것은 마사초의 작업입니다.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한 인간... 마사초의 발자취
'브랑카치 예배당' 프레스코의 기본 주제는 성 베드로의 일화들입니다. '성전세', '사마리아인에게 세례를 주는 성 베드로', '그림자로 병자를 치료하는 성 베드로', '테오필루스 아들의 회생과 법좌에 앉은 성 베드로', '성 베드로의 순교' 등 모두 로마 가톨릭의 초대 교황으로서 성 베드로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일화들로 이루어져 있죠. 그런데, 눈길은 어쩔 수 없이 가장 먼저 예배당 입구 왼쪽 기둥 위로 향합니다. 그곳엔 마사초의 걸작, '낙원으로부터의 추방'이 있습니다.
큰 칼을 쥐고 발길을 재촉하는 근엄한 천사 아래로 두 남녀가 쫓겨 가고 있습니다. 선악과 열매를 따먹은 나머지 인간 원죄의 시초가 된 그들, 아담과 이브. 그런데, 그들은 울고 있습니다. 그냥 울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할 정도로 엉엉, 말 그대로 대성통곡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눈물. 더군다나 남자의 통곡하는 모습. 이전에 이런 그림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입니다. 신성하고 근엄한 중세 회화(혹은 모자이크) 속 성인이 아닌 벌거벗은,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한 인간. 그 와중에 이브는 로마에서부터 익히 봐왔던 '베누스 푸디카(정숙한 비너스)' 자세까지 취하고 있습니다.
맞은편 기둥에 있는, 마솔리노가 그린 '아담과 이브의 유혹'과 비교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인물들의 발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마솔리노의 아담과 이브는 여전히 발끝으로, 땅도 없는 공중에 그냥 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쩔 수 없는 중세적 표현 그대로입니다. 그에 비해 마사초의 아담과 이브는 무겁고 육중한 발바닥을 땅에 붙인 채 걷고 있습니다. 어찌나 급하게 쫓겨 갔던지 이브의 왼발은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이전까진 한 번도 그려진 적이 없는 '그림자'가 그려져 있습니다. 영적인 존재가 아닌 인간의 육체란 뜻이겠지요. 인물들의 표정은 또 어떻습니까? 여성으로 묘사된 뱀의 유혹을 받으면서도 평온하기 그지없는 마솔리노의 아담과 이브. 그에 비해 마사초의 아담과 이브는 신으로부터 추방된(혹은 독립된) 참담함을 '인류 최초의 눈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혁명적 형식과 표현. 저 위대한,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의 중요한 모티프가 되기도 했던 그림. 마사초를 마주하고 있으니 여러 복합적인 감동이 한꺼번에 물밀 듯이 밀려옵니다. 불과 한 시간 사이에 서양 미술사의 기념비적 두 작품,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와 '낙원으로부터의 추방'을 모두 만나고 보니 현기증마저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감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본격적으로 성 베드로의 일화가 그려진 프레스코연작을 봅니다. 세 명의 거장이 연이어 작업한 탓에 어떤 그림이 누구의 작품인지 여전히 논란이 많습니다. 하지만, 왼쪽 벽 상단의 '성전세'와 정면 왼쪽 하단의 '그림자로 병자를 치료하는 성 베드로', 정면 오른쪽의 '사마리아인에게 세례를 주는 성 베드로'를 비롯한 두 작품은 마사초의 작업으로 여기는 데 별 이견이 없습니다.
이 연작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인 '성전세'는 기존의 성화에선 거의 볼 수 없었던 주제로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일화입니다. 예수의 기적을 묘사한 이 일화를 마사초는 특이한 방식으로 구성했는데, 바로 한 화면에 세 개의 다른 순간을 묘사한 것이죠.
제자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려는 화면 중앙의 예수. 그런데 그들 앞에 세금 징수원이 나타나 성전에 들어가려면 세금을 내라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세금 징수에 발끈한 제자들. 그러자 예수는 베드로에게 호수로 가서 물고기 한 마리를 잡고 그 배에서 은전을 꺼내오라고 합니다. 믿기지 않는 스승의 말을 듣고, 베드로는 동전을 꺼내기 위해 화면 왼쪽 구석에서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끙끙거립니다. 그리고 이내 화면 오른쪽으로 가서 잔뜩 화난 표정을 하고는 세금 징수원에게 은전을 건네고 있죠. 돈을 받아 즐거워진 세금 징수원이 탐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불과 23세의 젊은 마사초는 이 독특한 화면에 그동안 자신이 익혔던 새로운 양식들을 총동원하여 천재성을 드러냅니다. 먼저 투시 원근법을 적용한 오른쪽 건물은 대기 원근법(멀리 있는 대상일수록 작고 희미하게 묘사하는 방법)으로 묘사된 산자락으로 이어져 독특한 공간감을 보여줍니다. 성인들이라 어쩔 수 없이 광배(nimbus)를 그려 넣긴 했지만, 예수를 비롯한 제자들은 지오토의 인물 묘사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사실성을 드러내고 있죠. 한 명 한 명 개성이 살아 있는 표정과 동작. 그리고 그들에게도 역시 그림자가 그려져 있습니다.
예수 일행을 막아선 세금 징수원의 다리는 아담의 다리처럼 명암을 통해 근육질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불과 몇 달 전에, 황금빛으로 치장된 국제 고딕 양식의 정점,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의 '동방박사의 경배'(며칠 후 '우피치 미술관'에서 만날 것입니다)가 수많은 피렌체인들의 찬탄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당시로선 가히 혁명적인 변화였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사마리아인에게 세례를 주는 성 베드로'에는 세례를 받고 있는 근육질의 사마리아인과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인물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또 '그림자로 병자를 치료하는 성 베드로'에는 헐벗은 늙은이와 앙상한 다리의 나이 어린 앉은뱅이 병자까지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당시 피렌체 사람들의 옷차림을 하고 있죠. 그들 주위에 피렌체의 평범한 건물들이 배경으로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성인이 아닌 평범한 인간을, 그것도 이교도에, 늙고 병들고 미천한 이들까지 성화에 등장시킨 것은 마사초가 거의 처음입니다. 평범한 인간에 대한 관심, 르네상스 회화 정신은 이렇게 마사초에게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평범한 인간에 대한 관심... 마사초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회화 정신
그런 마사초의 정신은, 다음으로 이 프레스코 연작을 마무리한 필리피노 리피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왼쪽과 오른쪽 벽면의 하단을 마무리한 필리피노 리피는 좀 더 자연스러워진 인물 묘사와 함께 당시 피렌체인들을 대거 등장시킵니다. 물론 대부분 주문자인 브랑카치 가문 사람들이지만 슬쩍 슬쩍 자신과 스승인 보티첼리도 등장시킵니다.
특히, 마솔리노의 '아담과 이브' 아래 벽면에 그려진 '감옥을 나서는 성 베드로'에서는 주인공인 베드로보다 아무 관심 없다는 듯 졸고 앉아 있는 보초 병사가 더 돋보입니다. 500년도 훨씬 넘게 '브랑카치 예배당'의 이 신화적 작품들을 저런 자세로 지켜왔으니 저 병사는 어찌 보면 가장 복 받은 인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양 근대 회화를 탄생시키고 27세로 죽음을 맞은 마사초. 그에게 조르조 바사리는 자신의 저서 '르네상스 미술가전'에 친구의 이름을 빌려 두 편의 시를 바칩니다.
나는 그렸네. 진실과 같은 그림을나는 그곳에 넋과 감정과 입김을 불어 넣었네.부오나로티(미켈란젤로)는 모든 사람을 가르쳤으나나한테만은 배웠다네. - 안니발 카로그가 간 뒤에 모든 그림의 즐거움은 사라졌다네.이 태양이 지고는 모든 성신(星辰) 또한 빛을 잃었도다. 아! 그와 더불어 모든 미는 죽어버렸구나.- 피에로 세에니마사초를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유유히 흐르는 아르노 강변을 따라 걸으며 마사초를 되새기고 피렌체와 르네상스를 실감하다 보니 발길은 어느새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에 닿습니다. '오래된' 혹은 '낡은'이란 뜻을 가진 '베키오 다리'는 원래 피렌체 공화국의 국부(國父)로 칭송받는 코시모 데 메디치가 '피티 궁전'으로 이동하기 위해 만든 통로였습니다.
1333년까지 나무 다리였던 것이 파괴되어 1345년에 오늘날 같은 2층 구조로 재건된 것이죠. 2층은 메디치 가문 사람들의 통로로 이용되었는데, 1층은 16세 무렵부터 지금처럼 피렌체의 유명한 귀금속 상점들이 쭉 들어서서 지나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귀금속에 별 관심이 없는 나에게는 단지 아르노 강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다리, '베키오'만이 그 어떤 귀금속보다 아름답게 느껴질 뿐입니다.
'베키오 다리' 위에서 잠시 아르노 강을 감상하다가 다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공화국 광장(Piazza della Repubblica)'을 지나 피렌체의, 아니 르네상스의 중심, '두오모 광장(Piazza del Duomo)'으로 향합니다.
아름다운 피렌체의 '두오모(Duomo)'! 나의 첫 여행을 이탈리아로 이끈, 내 그리움의 근원. 하지만 나는 아직은 '두오모'와 공사 중인 '세례당'을 아껴두고 싶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판테온'에서 그랬던 것처럼 억지로 그 두 건물을 외면하며 우선 '지오토의 종탑(Campanile di Giotto)'에 오르기로 합니다.
'지오토의 종탑'은 두오모 건설의 총책임자였던 지오토(흔히 서양 회화사는 지오토 이전과 지오토 이후로 나뉜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파도바 편에서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가 1334년 설계하고 기초 공사 후 1337년 사망하자 제자 파사노와 탈렌티가 완성한 탑입니다.
두오모와 마찬가지로 흰색과 녹색, 분홍색의 대리석들이 기하학적 무늬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종탑. 그 꼭대기까지는 414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배에 힘을 꽉 주고 천천히 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중간 중간에 쉴 수 있는 공간들이 많아서 그다지 힘들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간 중간에 언뜻 언뜻 보이는 피렌체의 전경과 '두오모'가 정신을 못 차리게 합니다.
꼭대기에 오르니 가장 먼저 '두오모'의 주황색 쿠폴라(돔형 지붕)가 내려다보입니다. 숨이 막혀 옵니다. 쿠폴라가 더 높지만 착시 현상 때문인지 종탑에서는 쿠폴라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눈을 돌려보면 내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전망, 주황색 지붕들이 모자이크를 이루고 있는 피렌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멀리, 오전에 가려 했던 '산 로렌초 성당'도 보이고 '베키오 궁전'과 '산타 크로체 성당'도 보입니다.
오후 3시를 지나 4시로 향하고 있는 시간. 짧은 겨울 해는 벌써 주황색 그늘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이제 정말 나의 '피렌체'에 온 것입니다. 그 어떤 말로도 새길 수 없는 기쁨입니다.
종탑에서의 감동을 오래오래 가슴에 새긴 채 다시 길을 나섭니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조금 남아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시 호텔 주변의 '산 로렌초 성당'으로 향합니다. 그 큰 성당에서 보여준 공간이 너무 작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성당을 한 바퀴 빙 둘러볼 작정을 하고 가니, 아니나 다를까 성당의 정면 입구가 나타납니다. 표를 끊고 급하게 성당 안으로 들어갑니다.
'두오모'의 쿠폴라를 만든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최초의 르네상스식 성당, '산 로렌초'. 그래서 '두오모'와 같은 작은 쿠폴라도 있습니다. 오전에 들어갔던 '메디치 예배당'이 바로 그곳입니다. 그리고 내가 보고 싶었던 프라 필리포 리피의 '수태고지'와 도나텔로의 '청동 설교대'도 물론 만났습니다. 로마 '바르베리니 국립 미술관'과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에서 먼저 만났던 필리포 리피의 또 다른 '수태고지'.
다른 그림들과 달리 놀란 듯한 성모 마리아의 동작이 독특합니다. 내일과 모레 만나게 될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와 다빈치의 '수태고지'의 중간쯤이라 할 수 있을까요? 나는 마치 만나지 못할 뻔한 연인을 다시 만난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그림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비록, 너무 늦게 들어간 탓에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은 이번에도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어떻습니까? 오늘은 내 오랜 그리움이 비로소 현실로 다가온 날이니까요.
누군가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했던가요? 한동안 나는 이 말을 반신반의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꿈을 꾸는 것이 백안시되는 현실 앞에서 이 말을 온전히 믿을 수가 없었죠. 하지만 나는 지금 내 꿈의 도시, 피렌체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으로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아픔이 있었는지 굳이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저 이 말만 반복하고 싶습니다.
아! 피렌체! 아! 피렌체! 아! 피렌체!
(*6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