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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어차피 인생이란 어느 만큼이 고유하고 또 어느 만큼이 흉내인가? 남들이 쓰고 버린 헌 조각들을 주워 모아 누덕누덕 기워 한 벌의 인생을 만들어 놓았으니 그것이 어쨌다는 말인가? 꼴라쥬도 결국 그 자체가 훌륭한 예술이지 않는가? 삶이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철저한 흉내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 안정효 장편소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중에서

'절친'이 쓴 필생의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든 한 영화감독, 사실은 그 글의 8할이 할리우드 영화의 짜깁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경악하게 되는 소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위 대목은 표절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충격을 추스르기 위해 자기 합리화에 이르는 영화감독의 심리를 기술한 대목이다.

문학평론가 권성우가 "4.19 세대의 문화사적 자서전"이라 평한 이 소설은 1992년도에 출판됐다. 피폐한 삶을 예술로 돌파하려는 그 세대의 환상을 수많은 영화적 인용과 함께 서사화한 작품이다. 한편으로, 표절을 진지한 삶과 예술의 무게 위에 놓은 흔치 않은 한국 소설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실에서 예술에 있어서의 표절을 그저 '흉내의 과정'이나 '콜라주'라고 두둔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표절 논란에 휩싸인 신경숙 작가가 드디어 직접 입을 열었다. 23일자 <경향신문> 인터뷰를 통해서다. 그러나 (예상대로) 논란이 잦아들기는커녕 이 인터뷰가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사과나 해명의 적절함은 물론, 신 작가의 태도까지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주, 표절 논란 직후 표명한 신경숙 작가의 입장이나 출판사 '창비'의 해명글에 기름을 붓는 꼴이라는 것이 중평이다. 왜 그럴까.

실망 쏟아지게 한 신경숙, 기억 실종된 자기변명

 소설가 신경숙씨. 사진은 지난 2009년 6월 25일 세종로 한 레스토랑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 당시 모습.
소설가 신경숙씨. 사진은 지난 2009년 6월 25일 세종로 한 레스토랑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 당시 모습. ⓒ 연합뉴스

"표절 지적, 맞다는 생각... 독자들께 사과"

<경향신문>의 '단독 인터뷰' 제목이다. 이 사과 같지 않은 기이한 '문장'이 화를 더 키웠다. 이어진 신경숙 작가와의 인터뷰 전문에선 "사과"라는 단어 대신 "이렇게 입장 표명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것은 모두 내 탓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는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주 짧은 해명 글보다 당연히 분량은 늘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유려하게 자기변명만 구구절절 늘어놓은 형국이다. 일각에서 지탄을 받은 몇몇 문장만 보면 이러하다.

"그런데 <우국>은 아무리 기억을 뒤적여 봐도 안 읽은 것 같은데, 지금은 내 기억을 믿지 못하겠어요. 어떤 작품을 반쯤 읽다 말고 이건 전에 읽었던 작품이구나, 하는 식이니까."

"그런데 어떤 소설을 읽다보면, 어머 어쩌면 이렇게 나랑 생각이 똑같을까 싶은 대목이 나와요. 심지어 에피소드도 똑같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동서고금을 떠나 사람들의 생각은 비슷하구나, 반가운 기분마저 들어요."

"처음에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모두 제 탓입니다. 습지가 없는데 왕골이 돋아나겠어요. 문장을 대조해보면서 이응준씨가 느닷없이 왜 이랬을까, 의문을 안 갖기로 했어요. 대조해 보는 순간 나도 그걸 믿을 수가 없었어요. <전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쇠스랑이 있으면 내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실망을 금치 못했다는 반응들이 줄을 잇고 있다. 표절 사실은 "기억에 없으"며 "비슷한 표현의 소설을 많이 읽었"고 "나도 그 (표절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신경숙 작가의 해명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필사'로 소설을 배웠다던 그가 충분히 내놓을 만한 '정답'에 가까운 답변이어서만은 아니다. 그것은 "내 땅이 문학"이라고 자임하는 중견 소설가가 이리도 표절에 둔감할 수 있는가 하는 한탄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이미 1990년대부터 있어 왔던, 아니 15년 전 정확히 <우국>과 <전설>을 비교해 놓은 평론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판 글을 잘 읽지 못한다"는 이유로 표절 논란을 넘기려는 신경숙 작가. 그에게서 작가 윤리의 실종이나 권력과 기억력 상실과의 관계를 따져 묻는 일은 이제는 당연하고도 필수 불가결한 상황임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사회에서 유사하긴 하지만 표절은 아니다, 라거나 나도 믿을 수 없고 기억엔 없지만 죄송합니다, 라는 괴이한 변명을 통용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토론회와 고발, 문단 자성까지... 신경숙 논란 어디까지 갈까

표절 부인 철회한 창비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의혹 부인으로 비판에 직면했던 창작과 비평(창비)이 표절 부인 입장을 사실상 철회한 가운데 19일 오전 경기 파주시 문발동 창비 사옥이 조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표절 부인 철회한 창비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의혹 부인으로 비판에 직면했던 창작과 비평(창비)이 표절 부인 입장을 사실상 철회한 가운데 19일 오전 경기 파주시 문발동 창비 사옥이 조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신경숙 작가의 사과 인터뷰가 나오기까지 1주일, 문학계는 대중들로부터 그간에 받지 못한 관심을 기이한 방식으로 받게 됐다. 소설가 이응준의 '신경숙 표절' 논란으로 촉발돼 해묵은 그러나 현재형이라 지적받는 '문학권력'에 대한 논의까지 내부고발자에서부터 평론가나 문인들까지 말을 보태 왔다.

그 중 지난 18일 <한국일보>에 게재된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입장 글은 특히 주목을 받았다. 신경숙을 키운 것이나 다름없는 출판사 <문학동네> 편집위원의 첫 번째 글이기도 했거니와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평론가의 입장이어서 더욱 그러했다. "같은 것을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신형철은 표절을 확인하는 한편 신경숙 작가의 "자문과 자성"을 촉구하며 "신경숙 작가의 책임을 묻고 끝낼 일도 아니다"라는 신중론을 폈다.

같은 날, <표절은 없다>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던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신경숙 작가를 '사기 및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현 원장은 "작가와 대형 출판사의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보고 실망과 분노를 느껴 고발했다"고 밝혔다. "문단의 문제는 문단에서 풀겠다"는 이응준의 만류가 이어졌지만, 현 원장은 23일에도 "신경숙이 자기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고발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문학권력과 표절 문화 사이. 신경숙 작가 개인 차원의 문제로 끝낼 일이 아니라는 의견이 줄을 잇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표절을 인정하지 않는 소설가 개인은 자성하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동시에 이를 키운 구조와 그 결과물인 '표절 용인 하는 사회'에 대한 개선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만연'이란 표현이 친숙할 만큼 늦었기에, 더 절실하다. 그 분위기가 비단 문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 또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표절 용인하는 사회, 누가 '할리우드 키드' 들을 키워내는가

 소설가 신경숙의 작품 표절 여부를 놓고 문학계 내 논쟁이 확산되는 가운데, 19일 신 작가가 업무방해와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지난 19일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작가별 소설코너에 표절 의혹을 받는 단편 '전설'이 포함된 소설집 '감자 먹는 사람들'이 꽂혀 있다.
소설가 신경숙의 작품 표절 여부를 놓고 문학계 내 논쟁이 확산되는 가운데, 19일 신 작가가 업무방해와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지난 19일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작가별 소설코너에 표절 의혹을 받는 단편 '전설'이 포함된 소설집 '감자 먹는 사람들'이 꽂혀 있다. ⓒ 연합뉴스

최근 천만 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표절 문제가 제기됐다. 2009년 한국콘텐츠진흥원 '기획창작 아카데미'의 졸업 작품 중 하나인 <차붐-차범근과 파독 광부 이야기>가 <국제시장>의 주요 소재와 모티브 면에서 비슷하다는 주장이다. 이미 지난 5월부터 관련 영화인이 인터넷을 통해 제기한 이 표절 의혹은 SNS를 통해 퍼져 나가는 중이다.

그렇게 각종 드라마, 영화, 음악 등 대중문화 콘텐츠의 표절 시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제기된다. 해외 드라마나 영화 포스터, 뮤직비디오 콘셉트를 표절한 경우, 사과나 해명으로 끝나게 되지만 스토리나 내러티브, 소재를 가져온 콘텐츠 내용의 표절은 법정으로 직행하기 일쑤다. 드라마의 경우, 제작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참고하거나 이후에도 방송사에서 용인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번 신경숙 표절 논란은 그런 사회 분위기의 역설적인 반증일 수 있다. 스타 작가, 베스트셀러 작가, 성공한 창작인만 된다면 표절도 용인되는 분위기를 보고 자란 콘텐츠 창작자들이 표절의 유혹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더욱이 드라마나 가요, 영화 등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대중예술의 경우 '성공'이란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법정에서 표절 시비를 가리는 경우, 복잡다단하고 검증이 쉽지 않은 창작 과정에 대해 올바른 판단이 내려지기 힘든 구조다. 표절 작품이 먼저 성공을 거두거나 명망 있는 창작가일수록 상황은 더 힘들어진다. 외국 작품의 경우라면 해당 회사가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이상 유야무야되기 십상이다. 누가 이 시대의 창작자들을 '할리우드 키드'로 키워내고 있는가.

신경숙 작가의 이번 논란에 대한 사과는 훨씬 더 정교하고 정직해야 했다. 단지 <우국>과 <전설> 뿐만이 아닌 수많은 작품에 표절 혐의가 제기됐다면 자신에 대한 비판에 정면으로 대면했어야 했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이 그렇게 동일시하고 아끼는 '독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가 가능했을 것이다.

표절 용인하는 사회에 대한 선배 작가, 예술가로서의 책임과 윤리를 자성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또 하나 이번 표절 논란이 던져 준 사회적인 충격과 독자들의 실망이 큰 만큼, 여진이 진행 중인 논란의 진행 과정을 지켜보는 눈이 많다는 것 또한 잊지 마시기를.

○ 편집ㅣ곽우신 기자



#신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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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현 영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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