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매미'가 남긴 상처비가 오면 박민자 할머니는 팔에 생긴 10cm의 수술 자국을 만진다. 끔찍했던 그날 밤이 생각나 잠도 이루지 못한다. 할머니가 사는 경남 의령군 가례면 갑을마을은 2003년 태풍 매미로 산사태가 나 6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그 중 한 명이 고인이 된 할머니의 남편이다. 산사태가 나던 날 저녁,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별 걱정 하지 않고 잠에 들었다. 평소대로 할아버지는 거실에서 주무시고 할머니는 안방에서 자려 했다. 별안간 할아버지가 갑자기 '한기가 든다'고 해 할머니는 거실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잤다.
"안 그랬으면 난 즉사했을기에요. 큰 바위가 들어차서 안방이 절단이 난 거지요. 내가 누워 자는데 '쾅' 소리가 나드라고."다행히도 할머니는 목숨을 건졌지만, 절반이 떨어져 나간 집은 불어난 물에 휩쓸려 내려갔다. 오후 9시에 휩쓸려 내려간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다음 날 오전 6시가 돼서야 구조됐다.
"둘이 누워 자는데, 물소리가 '쏴'나면서 이 거실도 그냥 쓸려 내려가는 거라. 계속해서 비를 다 맞으면서 흙도 먹고 물도 먹고. 그래서 그냥 이대로 죽는 구나 싶었지. 집 전체가 원래 자리에서 수 십 미터는 떠내려갔어."할머니는 다행히 집 안에서 구조 됐지만 한참을 떠내려간 할아버지는 논 한 쪽 구석에서 발견됐다. 숨은 붙어 있었지만, 흙을 많이 먹어 수술을 못할 만큼 위태로웠다. 죽을 때까지 물 한 방울도 못 마실 정도로 위를 비롯한 장기에 구멍이 났다. 응급실에 갔지만 영양제만 맞았다. 두 달을 병원에 있었지만 아무런 조치도 받지 못한 채 집으로 왔다. 집에서 간호한 지 넉 달 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근데 지금 그 자리에 저놈의 풍력발전소를 짓겠다는 거잖아요. 내가요, 지금도 비가 되게 많이 오면, 잠을 못자요. 아들 딸들이 나한테 집에서 자지 말고 회관에서 자라고 매일 말해요, 불안하다고. 집이 산 바로 밑에 있으니까 아들들도 불안해서 죽을라고 해."의령풍력발전(주)는 지난 4월부터 한우산 정상에서 풍력발전단지 조성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 아래에는 산사태로 6명이 목숨을 잃은 갑을마을과 궁유면 벽계마을이 있다. 주민이 '한우산풍력발전반대대책위원회(위원장 정영규)'를 조직해 풍력발전소를 막는 이유는 생명에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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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김애란씨는 "풍력발전소를 무조건 세우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인명과 재산 피해가 없는 곳에 지으라는 거예요"라며 "우리에겐 10여년 전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하거든요, 풍력발전소가 위치할 산꼭대기 그 바로 밑에 우리가 살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불안해요, 무서워요, 그래서 이렇게 싸우고 있는 거죠, 결사적으로 막고 있는 거죠"라고 덧붙였다.
지난 25일 풍력발전소 공사를 반대하는 한우산풍력발전반대대책위와 주민 100여 명은 의령 군청 앞에서 오영호 의령군수를 만났다. 주민은 "소음, 저주파 그리고 산사태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사업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오영호 의령군수는 "풍력발전에 대한 허가는 의령군에서 한 것이 아니라 경상남도에서 통과한 것이다. 중앙정부에서 통과가 된 거라 의령군수로서 반대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주민들은 "태풍 매미 때, 이곳에서 사람이 죽은 거 알고 있습니까, 모릅니까? 위에서 통과했다고 그냥 허가를 내주는 게 군수가 할 일입니까? 군민들이 또 다시 산사태로 죽을 수도 있는데 그걸 막아야지, 통과하는 게 말이 됩니까?"라고 따졌다. 오영호 군수는 주민의 질책에 대해 아래와 같이 답하고 자리를 떠났다.
"토목과 교수님들이 다 안전하다고 말했습니다. 학생들 가르치는 교수들인데, 그 사람들이 다 잘 알아서 했겠죠. 그분들이 안전하다고 말하지 않습니까."풍력발전공사의 위험성을 따지고 대화하기 위해 군수를 만났지만 군수가 내놓은 대답은 군민을 설득하지 못했다. 오히려 군청으로 들어가려는 군수를 잡기 위한 주민과 그 주민을 막기 위한 경찰 및 공무원 간의 몸싸움이 일어났다. 한바탕 소란이 일던 그곳에서 한 할머니는 "내가 어디까지 떠내려간 줄 압니까? 지금도 내 가슴이 벌렁거리는데, 산사태가 난 그 산 위를 다 파헤칩니까. 그럼 그때보다 더 큰 산사태가 날 겁니다. 사람이 더 많이 죽어봐야 정신을 차리겠습니까"라고 외쳤다.
한편, 사업 승인에 관한 문제 제기에 대해 의령군청 관계자는 6월 29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경남도 도시계획위원회에서 통과시켰기 때문에 의령군청에서 개발허가를 내 준 것이다"라면서 "진입 면적이 3만 제곱미터를 넘으면 경상남도 도시계획위원회에 승인을 얻도록 돼 있다. 그 승인이 나야 의령군도 허가를 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남도청 도시계획과의 한 관계자는 29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풍력 사업을 승인한 것은 의령군이다"라면서 "사업을 승인하기 전에, 도시계획위원회는 개발 행위에서 문제가 있는지를 심의하는 역할만을 맡는다. 도시계획위원회는 허가 유무를 따지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무 베는 소리로 알게 된 공사
한우산반대대책위와 주민들은 의령군과 의령풍력발전(주)로부터 풍력발전 사업 및 공사에 대한 제대로된 정보를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풍력발전소가 들어설 산의 주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산 주인들한테도 전봇대 들어서는데, 1기 들어서는데 얼마, 이렇게만 설명을 했다고 해요." 주민 김애란씨는 "그때는 정말 안일하게 생각하고 도장을 찍어 준 거죠. 그런데 이제 와서 알고 보니까 이 공사는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 분이 세 분이나 있어요. 이 분들이 (공사) 취소를 위한 소송을 7월에 준비하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박민자 할머니도 공사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는 그런 거 몰랐어. 나무 벨 때 그때 처음 안 거지. 몇 달 전쯤 갑자기 나무 베는 소리가 들리는 기라. 너무 크게 들려서 뭔가 하고 가보니 글쎄 산꼭대기가 허연 민둥산이 돼 있었어. 나무며 돌이며 모든 게 파헤쳐 있더라고. 최근에는 마을 앞에 있는 길을 뜯대. 풍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외부로 보내는 파이프를 지하에 만든다고 땅을 뒤집은 기라. 산에서는 나무를 베고, 마을 앞에는 전기 보낸다고 길을 파헤쳐서 그때 안 거지."제대로 된 주민 동의 절차가 없었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 의령군청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7일 주민 설명회를 했다"면서 "공무원, 의령풍력발전 직원, 주민 등 40여 명이 참석했다, 그 중 주민은 20명 정도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풍령 발전소 사업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4개 마을의 전체 주민 수는 600여 명에 달한다.
이에 정영규 한우산풍력발전반대대책위원장은 한탄했다.
"이렇게 땅을 파헤치고 나무를 베면 태풍 '매미' 때보다 더 큰 산사태가 날 수가 있죠. 저 산 정상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들을 막아줄 돌이나 바위, 나무도 없는데 그 물들이 다 어디로 가겠어요. 바로 밑에 있는 마을, 민가로 가는 거잖아요. 태풍 매미보다 더 큰 산사태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이 공사를 막고 있는 거죠. 이 공사로 총 4km의 산 정상이 다 휑해졌어요. 산꼭대기가 허옇게 드러나서 민둥산이 됐는데, 여기 주민들은 그걸 가장 두려워하는 거예요. 산사태를요. 엄청난 피해를 입힌 산사태가 난 한우산에 나무를 심어도 모자를 판인데, 산을 파헤친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
이어 그는 "저희가 바라는 것은 마을이 있고 사람이 사는 방향으로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지 않는 쪽으로 만들라는 거예요"라며 "그러면 인명 피해나 산사태 피해도 없잖아요, 그 주위에 민가가 없으니 소음이나 다른 피해를 입지도 않고요, 그냥 무조건 막는 것이 아니라 피해가 없는 방향으로 만들라는 거예요"라고 강조했다.
현재 25개의 풍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나무 벌목은 끝난 상태고, 풍력발전소를 설치할 땅을 포클레인으로 파고 있는 상황이다. 풍력발전소는 핵발전이나 화력발전과는 달리 자연 에너지인 풍력을 이용해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지만, 의령 한우산에 들어설 풍력발전소는 제대로된 주민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관련 전문가들에 따르면 2003년 태풍 매미로 6명의 인명 사고를 낸 산사태보다 더 큰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말 없는 자연이 무서운 것은 받은 만큼 되돌려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