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학생 시절, 옆집에 살던 열댓 살 많은 누님은 내가 하교할 무렵이면 대문 앞에서 담배 한 대를 참 맛있게 피우셨다. 머리도 좋고, 성격도 올곧아서 조리 있게 옳은 말을 따박따박 하는 품이 어린 나이에 참 멋져 보이던 누님이었다. 어느 날, 하굣길에 나는 건넛집 형님이 커피 한 잔을 내밀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녀에게 말을 거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저는 담배 말고는 몸에 나쁜 거 아무것도 안 해요."담배를 피우며 커피를 거절하던, 그녀의 모습은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뇌리에 박혀있다. 커피는 세계적으로 1년에 약 6천억 잔이 소비되는, 매우 대중적인 음료임에도 그간 건강에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람들의 인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커피는 정말 건강에 해로운 걸까?
그 인기가 대단한 만큼, 커피와 건강에 관한 이야기는 종종 매스컴에 등장한다. 해롭다고도 했다가, 이롭다고도 했다가, 또 어떤 보도에서는 별 관계가 없는 것 같다고 하기도 한다. 실제로 커피와 암, 커피와 여러 질병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수의 연구가 최근에 이르기까지 진행되고 있으며 미국암협회의 공식 사이트에서는 커피와 암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만 1000개가 넘는다고 이야기한다.
학계를 포함해 여러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사인 커피. 커피는 과연 몸에 좋은 것일까, 아니면 그 어두운 색깔에서 연상되듯, 해로운 것일까.
커피가 암을?세계암연구재단과 미국암협회의 2007년 보고서에서는, 커피는 발암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가암정보센터의 질의 응답에서도, 암 발생과 커피 섭취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암 발생 위험을 낮춘다, 높인다, 영향이 없다는 등 다양한 결과가 보고되고 있으며 커피와 암과의 관련성이 명확하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반면, 더욱 최근에 발표된 보고에서는 커피에 관해 유익함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21개의 연구, 백만 명의 인구를 통합해 분석한 2014년의 한 메타 분석에서, 하루에 4잔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의 사망률이 커피를 마시지 않는 인구에 비해 사망률이 16% 낮았다는 보고가 있었다.
최근 이뤄진 커피와 암의 관계에 대한 분석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연구에서는 커피 복용이 암의 발생을 높이는 것 보다는, 무관하거나 혹은 발병률을 낮추는 것으로 밝혀졌다(커피 음용이 발암률을 낮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된 암으로는 유방암, 구강암, 간암, 대장암, 자궁내막암, 전립선암 등이 있다).
커피의 음용이 발암률을 높이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던 암으로는 폐암, 방광암이 있다. 폐암의 경우, 한 메타 분석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폐암 발병률이 28%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 됐으나, 비흡연자의 경우에는 오히려 22% 감소하는 것으로 결과가 나와, 폐암의 증가는 담배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방광암에 대해서는, 2001년에 발표된 메타 분석에서 커피 음용자의 방광암 발병률이 1.2배 정도 증가한다는 보고가 있었으나, 역시 흡연에 의한 영향, 카페인 용량과 발암률 간의 무관함 등을 이유로 실제로 발암률을 높인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비판이 있다.
이를 종합해 미국암협회와 세계암연구재단의 웹사이트에서는, 최근 업데이트에서 커피와 암과의 관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수정했다. 2007년 보고서에서 암 발생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한 것과 달리, 최근의 결과에서는 자궁내막암과 간암에 예방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항암 혹은 발암과의 연관성 4단계 중, 2등급으로 분류했다).
커피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발암과 관계가 없거나 일부 암의 위험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의심됐으나, 최근의 연구에서는 커피가 대부분의 암의 원인이 아니며 오히려 일부 암에서 유익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섣불리 커피가 '항암물질'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조심스러우나, 커피로 인한 암의 위험성에 대해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커피는 암 말고 다른 질병과도 관계가 있을까?
커피는 그 인기를 반영하듯, 매우 다양한 질환과의 관계가 연구됐다. 먼저, 유익한 것으로 알려진 분야부터 살펴보자.
커피의 음용은 파킨슨병의 발병률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에 발표된 메타 분석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마시지 않는 사람에 비해 파킨슨병의 발병률이 31% 낮았다. 특이한 점은, 호르몬 치료를 하는 폐경 여성의 경우 커피 음용이 파킨슨병의 발병률을 오히려 크게 높였다는 보고가 있었다.
과거에는 커피의 음용이 부정맥(심장의 박동이 규칙성을 잃거나, 혹은 느리거나 빨라지는 질환. 자체로 증상을 유발할 수 있고 악화 시 다른 심장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을 유발할 것으로 생각됐으나, 최근의 연구들에서는 연관성이 없다는 보고가 많았다.
관상동맥질환과 커피와의 관계를 연구한 메타 분석에서도, 커피의 음용이 전체 인구의 관상동맥질환의 발병률을 높이지 않았고, 오히려 소량(하루 1~4잔) 의 커피를 마신 여성의 경우에는 위험률이 18% 감소해 커피가 관상동맥질환의 위험을 높일 것이라는 가설을 반박했다.
2014년에 발표된 한 메타 분석에서는, 36개의 연구와 그에 포함된 130만여 명의 인구를 대상으로 커피와 여러 심혈 관계 질환(관상동맥질환, 뇌졸중, 심부전 등)과의 통합적인 관계를 분석했다. 이 연구에서 소량의 커피 음용은 심혈 관계 질환의 위험도를 감소케 했는데, 하루 3~5컵 정도를 음용하는 군의 위험도가 가장 낮아, 커피를 마시지 않는 군에 비해 15% 낮았다.
커피의 음용은 또한 2형 당뇨(성인 당뇨의 대부분을 차지한다)의 유병률을 낮춘다. 한 메타 분석에서, 하루 2잔 미만 혹은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과 비교해 4~6잔 마시는 사람은 당뇨 발병률이 28% 낮았다. 또한, 알코올성 간경화에도 효과가 있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한 연구에서는 하루 1~3잔 커피를 마시는 경우 그 위험이 40%, 4잔 이상 마시는 경우 80% 이상 감소했다고 보고 했다.
이번에는 커피가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연구를 살펴보자. 일부 연구에서는 커피의 음용이 골다공증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대개 고령의 여성을 대상으로 연구가 이뤄졌다. 한 연구에서는, 마른 70대 초반 여성 중 커피를 하루에 5잔 이상 마시는 사람의 골다공증 발병률이 1.7배 높다고 하였다.
폐경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에서는 칼슘 섭취가 부족한 여성의 경우 하루 450mg 이상의 카페인 (내린 커피 기준으로 약 세 잔) 이상을 마신 경우 골다공증의 위험이 높다고했다. 또한 커피의 음용이 소변의 양과 소변 횟수를 증가시켜, 노인들에게 발생하는 요실금이나 요급증 등을 악화할 수 있다는 연구들도 일부 있다.
그렇다면 커피를 어떻게 마셔야 할까?커피에 대해서 정해진 권장량이나 추천량은 없다. 다만 일부 연구에서는 카페인 섭취의 안전량을 제시하고 있는데, 1일 400mg 이하의 카페인을 섭취하도록 권유하고 있다(내린 커피 약 3~4잔에 해당한다). 이 연구의 저자들은 여러 데이터를 종합해 봤을 때, 1일 400mg 이하의 카페인 섭취는 심혈 관계 질병이나 골다공증, 암 등과 무관하게 음용 가능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커피는 집중력과 운동 능력을 일시적으로 향상하는 등 장점도 있지만, 과량 마실 경우 위에서 언급한 중증의 질환들 외에도 불면, 불안, 두근거림, 위장 장애 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알아둬야 겠다. 또한, 커피의 음용이 심혈관 질환과 관계가 적다는 통계적 연구들이 나와 있지만, 일부 사람들에게서는 커피나 카페인을 포함한 음료를 과음할 경우 두근거림이나 흉통 등의 증상을 야기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증상이 나타날 경우는 음용하지 말아야 한다.
요약하자면, 위에서 언급한 안전량 이하, 혹은 그 주변에 해당되는 양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다면 그것이 건강을 해칠 것이라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겠다. 또한 건강에 대한 우려로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하루 3~4잔 정도까지 마시는 것은 무방하고 오히려 건강에 유익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카페인 및 커피에 대한 영향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커피로 인해 두근거림, 흉통, 위장 장애 등의 증상을 야기하는 경우는 마시지 않거나 증상이 야기되지 않을 정도로 소량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 참고 :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음료의 카페인 함량은 다음과 같다
내린 커피 한 잔 (240cc) 약 130mg, 에스프레소 한 잔 (30cc) 약 40mg, 녹차 한 잔 (240cc) 약 53mg, 콜라 한 캔 (큰 캔 기준) 약 40mg (차와 커피의 카페인 함량은 제조 방식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