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상과 관련된 사진들을 본다. 청소부와 스스럼없이 주먹 인사를 하고, 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보좌관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그의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들. 물론 어떤 컷은 연출이 포함되어 있겠지만 그래도 멋있고 부럽기만 하다. 우리는 죽은 논에 소방호스를 갖다 대는 수준 아니던가. 그러니 많은 이들이 그 사진들을 보며 미국이라는 국가의 품격과 저력을 느낄 수밖에.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도 버락 오바마와 같은 인간적인 대통령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손녀를 자전거 뒤에 태워 청와대를 활보하고, 참모들과 맞담배를 피우며 토론하고, 거리낌 없이 영부인에게 장난치던 대통령. 그렇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최근 그런 노무현 대통령을 다룬 만화책 한 권이 나왔다. <만화 노무현-그의 마지막 하루>(아래 <만화 노무현>)가 바로 그것이다.
읽을수록 힘든 만화책
사실 그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도서는 회고록과 인터뷰집, 추모집, 기록집 등 여러 형태로 많이 출판되었다. 워낙 극적인 삶을 살았고, 노무현 개인 자체가 할 말이 많았던 사람이기에 '노무현'은 아직도 5월만 되면 으레 등장하는 출판계의 주요 아이콘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화 노무현>은 이런 그의 성장 과정이나 꿈, 인생역정 등을 차치하고 오로지 그의 마지막 하루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가 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누가 그를 부엉이바위로 몰아갔는지 주목한다. 결국, 그의 삶 전체를, 그가 추구했던 꿈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가 죽어야만 했던 이유를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1981년 부림사건 이후 인권 변호사가 되고 6월 항쟁과 5공 청문회, 3당 야합과 꼬마민주당 시절을 거쳐 홀로 부산에서 선거 유세를 하면서 간직해온 '사람 사는 세상'의 꿈마저 그렇게 좌절되어서는 안 된다. 슬픈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그를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역사와 진실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다. 고통의 시간을 끝내고 희망의 시간을 다시 품어야 한다." - <만화 노무현> 본문 중에서만화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하여 2008년 촛불 시위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2008년 촛불 시위로 인해 집권 초 위기를 맞은 이명박 정부는 그 배후를 찾는 데 혈안이었다. '시민'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던 그들로서는 자생적으로 발생한 촛불 시위를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신들을 흔들려는 배후가 있다는 생각.
결국, 그들은 퇴임 이후 봉하마을로 내려가 재임 때보다 훨씬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 배후로 지목한다. 현직 대통령보다 인기 있는 전직 대통령이 불편했고, 소위 친노라는 세력이 그들의 텃밭이었던 영남지역을 잠식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고, 근본적으로 고졸 출신의 대통령을 인정할 수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든 흔적을 지우고자 했으며, 그가 추구했던 모든 가치를 헐뜯고자 했다.
"그해 그들이 벌였던 잔치, '노무현 잔혹사'의 기획은 누가 했으며 각본은 누가 썼고 메가폰은 누가 잡았으며 실행은 구가 했으며 배급은 누가 맡았나? 나는 그들의 민낯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과 국정원, 거찰, 국세청, 언론, 집권당이 벌인 그해 여름의 잔칫상." - <만화 노무현> 본문 중에서문제는 그들이 그렇게 노무현을 궁지로 몰아가고 있을 때, 노무현을 지지하던 이들 역시 그를 버렸다는 사실이다. 당시 우리는 모두 노무현을 탓했다. 소위 진보 언론들은 보수언론들과 마찬가지로 노무현을 죄인 취급하며 검찰이 흘린 소설들을 받아쓰기 바빴으며, 한때 그를 지지했던 이들은 나부터 포함해서 내가 왜 노무현 때문에 아버지에게, 어르신들에게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되는지 짜증을 내고 있었다. 아직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우리는 몰랐지만, 그가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를 범죄자 취급했다.
"그들이 한 일이다. 노무현 패밀리가 한 일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도덕적으로 결함의 차이, 남편과 아내의 차이, 알았다와 몰랐다의 차이를 구별하는 데 필사적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달라지지 않는다.(중략) 노무현 정권의 재앙은 5년의 실패를 넘는다. 그렇다면 노무현의 당선은 재앙의 시작이었다고 해야 옳다. 이제 그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이 뿌린 환멸의 씨앗을 모두 거두어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지는 일이다. 굿바이 노무현!" - 2009년 4월 15일, <경향신문> '이대근 칼럼' 중에서
만화가 매우 잘 읽히지만 잘 읽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모두 함께 그를 죽음으로 몰았음을 이야기한다. 비록 많은 이들이 그의 죽음 앞에 목 놓아 울며 후회했지만, 과연 우린 그럴 자격이 있었을까? 노무현은 그 누구도 탓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우리는 그의 사과를 받아들일 자격이 있을까?
왜 다시 노무현의 죽음인가만화책을 보며 나도 노무현의 죽음에 책임이 있음을 새삼 느끼다 보면 다시금 질문이 떠오른다. 왜 저자는 하필 지금 노무현의 죽음을 꺼냈을까? 저자의 말대로 그의 죽음을 상기하다 보면 그가 꿈꾸었던 세상을 이룰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질문과 관련하여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1980년의 광주다. 광주 5·18이 위대한 이유는 우리가 모두 5·18에 대해 가진 부채의식 때문이다. 결국, 우리 대신 피를 흘렸던 광주 시민들과 그들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인해 우리는 그나마 이만큼의 민주주의를 이루었다. 사람들은 당시 죽어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자신이 서 있던 곳에서 최선을 다했으며, 권력은 그 역사를 교훈 삼아 야수의 발톱을 숨기지 않았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계속해서 상기되어야 하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저자가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권력의 사유화가 어떻게 우리 시대의 가장 뜨거웠던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우리가 그 죽음을 잊었을 때 권력은 야수의 발톱을 드러낼 것이며 우리의 숨통을 조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최근까지도 계속 드러나고 있는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검찰의 편향적인 수사 등을 보자. 그것은 결국 우리가 노무현의 죽음으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들이 얼마나 집요하고 끈질기게 이 땅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는지 우리는 종종 망각한다. 이젠 오히려 권력기관들의 정치개입을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시대의 퇴보를 막지 못한 채, 역사적 책무를 내버리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다시 노무현, 특히 그의 죽음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가 얼마나 악랄하고 치졸하게 몰렸는지를 다시금 우리에게 상기시키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에 대한 부채의식을 일깨우고자 한다. 우리가 만들었던 우리의 신화를 지키지 못한 결과가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 낱낱이 보여주며,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 우리 스스로가 그에 대한 미안함을 잊기 위해 그를 신화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닌지 질문한다.
"무엇이 달라졌는가?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인 5백만 명의 추모 인파가 만들어낸 거대한 역사의 물결에 미혹 당해 그것을 너무 경배하지는 않았을까? 그 힘이 모여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거대한 믿음' 말이다. 그런데 그 믿음이 빗나간 것임을 확인하기까지는 겨우 3년에 불과했으니 노무현에게는 너무나 미안하고 또 미안할 따름이다." - <만화 노무현> 본문 중에서노무현이 더는 5월에만 등장해서는 안 된다. 사회 전반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그가 꿈꾸었던 '사람 사는 세상'이 빈껍데기만 남았다면 그를 호명해 내야 한다. 우리는 노무현처럼 뜨겁고 열정적으로 비루한 현실에 맞서야 한다. 그가 우리에게 이야기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얼마나 소중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그를 보내고 살아남은 우리들의 몫이다.
만화책을 덮고 나면 다시 눈물 한 방울이 맺힌다. 보고 싶습니다. 노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