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을 몰아낸 드라마 <화정> 속의 인조 정권 사람들은 자신들도 알게 모르게 여진족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인조에게 불만을 품고 쿠데타를 벌인 이괄도 여진족과의 동맹을 모색했고, 그런 이괄을 지켜보는 반대편 사람들도 후금과의 친선에 대해 체질적 거부감은 보이지 않았다. 후금(여진족)과 명나라 사이에서 실리외교·중립외교를 구사한 광해군을 점점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조 정권 사람들이 광해군을 몰아낸 명분 중 하나는, 명나라와의 동맹을 무시하고 여진족과의 친선을 도모했다는 점이다. 인조 정권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영원히 사수할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광해군을 몰아낸 뒤 그들은 명나라를 배신했음은 물론이고 광해군 이상으로 친(親)청나라 노선을 걸었다.
광해군의 실리외교를 배척한 지 4년 만인 1627년, 인조정권은 정묘호란에서 전황이 불리해지자 후금과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인조정권은 명나라와의 기존 관계를 유지하면서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체결했다.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하늘처럼 떠받들 것처럼 말했던 이전의 모습과 대비되는 장면이다.
인조정권은 10년 뒤인 1637년에는 보다 더 확실하게 여진족의 동맹국이 되었다. 이때는 여진족이 국호를 대청(大淸) 즉 청나라로 개칭한 뒤였다. 이 해에 벌어진 병자호란에서 전황이 불리해지자, 인조정권은 명나라와의 관계를 깨끗이 청산하고 청나라의 동맹국으로 돌아섰다.
참고로, 병자호란이 1636년에 발생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글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이 전쟁은 병자년 12월 9일 즉 양력 1637년 1월 4일에 발생했다. 병자년(1636년 2월 7일~1637년 1월 25일)의 대부분이 1636년에 걸린다는 점 때문에, 많은 필자들이 '병자년' 하면 무조건 1636년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청나라로 미련없이 돌아선 인조 정권
여진족이 명나라보다 강하다는 게 확실하게 입증되자, 인조 정권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여진족 쪽으로 미련 없이 돌아섰다. 조선 지식인들 사이에서 여진족에 대한 증오심이 만연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의식이 대외관계에까지 반영되지는 못했다. 조선은 1637년부터 1894년까지 청나라를 제1동맹국으로 인정하고 국제관계에서 청나라의 패권을 인정했다.
인조의 아들인 효종이 청나라에 복수하자는 북벌론을 제기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효종은 죽기 2개월 전에 서인당 영수 송시열과의 비밀 회담에서 북벌을 입에 담았을 뿐이다. 북벌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적은 없었다.
송시열의 글을 모은 <송서습유>의 악대설화 편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송시열은 "북벌 좋지요!"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면서도 "그러다가 나라가 망하게 되면 어찌 하시렵니까?"라며 반대의 뜻을 명확히 했다. '큰일 날 말씀'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렇게 인조 정권과 그 후계 정권은 여진족의 주도권을 인정하면서 그 속에서 내일을 모색했다. 과거에 우리가 언제 명나라를 따랐느냐는 식의 행보를 보인 것이다. 이들은 광해군보다도 훨씬 더 친청 노선을 걸었다.
광해군은 여진족과의 대등한 관계 속에서 실리외교를 했을 뿐, 그들을 떠받들지는 않았다. 반면에 광해군의 적들은 여진족 앞에서 비굴하게 굴면서 나라의 이익과 체면을 손상시켰다.
광해군은 권좌에서 쫓겨나고도 18년을 더 살았다. 강화도와 그 왼쪽의 교동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그러는 동안에 인조정권 치하에서 정묘호란·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인조 정권 사람들은 여진족에게 몸을 숙일 때마다, 광해군을 한 번씩 생각했을 것이다. 광해군이 예견한 대로 흘러가는 국제정세 속에서 친청파로 변해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한번쯤은 돌아봤을 것이다.
중국과의 친선 강화하는 한국 보수파
대한민국 보수파는 한미동맹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인조 쿠데타(이른바 인조반정) 이전의 보수파를 닮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도 인조정권과 그 후계자들을 닮아가고 있다. 광해군을 비판했지만 광해군보다 훨씬 더 친청파가 된 사람들의 길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보수파는 경제적 실리를 명분으로 미국의 라이벌인 중국과의 친선을 강화하고 있다. 이들이 그저 경제적 측면에서만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아니다. 이 관계가 정치적 밀착의 단계에까지 접근하고 있다는 점은, 금년 상반기에 한국을 가운데 놓고 중국과 미국이 줄다리기를 한 사실에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중국은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미국 중심의 사드(THAAD)에 참여하지 말고, 중국 중심의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에 참여하라'고 요구했고, 미국은 '사드에 참여하고 AIIB에는 참여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한마디로 '저쪽과 놀지 말고 나랑 놀자'며 중·미 양국이 한국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정치·군사적 쟁점인 사드 참여 문제를 놓고 중국과 미국이 서로 한국을 끌어들이려 하는 것은, 한중관계가 단순한 경제관계를 넘어 긴밀한 정치관계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한미동맹을 예찬해온 한국 보수파가 '미국은 기울고 중국은 뜨고 있다'는 점에 맞추어 행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껏 한국 보수파는 헌법에도 없는 '반공은 국시' 논리로 국민과 반대파를 억압했다. 한국 현실에서 '반공은 국시'라는 말은 '친미는 국시'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렇게 친미를 국시처럼 떠받들던 한국 보수파가 친미의 반대 개념인 친중국을 향해 점차 노골적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다음 달 3일 북경(베이징)에서는 항일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절 기념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다. 중국의 패권을 과시하는 장으로 활용될 이 행사와 관련해, 박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의 우려를 무시하고 참석을 결정했다.
항일전쟁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이므로 여기서는 반일 분위기가 연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것은 일본을 대리인으로 내세우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대한 직간접적 도전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것은 앞으로 대한민국이 미국의 속을 얼마나 태우게 될지를 보여주는 전조라고 할 수 있다.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다가 나중에는 청나라로 확실하게 돌아선 인조정권과 그 후계자들처럼 대한민국 보수파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보수파에게 동맹관계를 맡길 수 없는 이유대한민국 보수파가 동맹관계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은 물론 나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한민족이 만주를 잃고 한반도에 갇힌 10세기 이래로 이 땅의 보수파들이 보여준 행동패턴을 볼 때, 대한민국 보수파가 새로운 동맹관계를 모색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조 정권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땅의 보수파들은 동맹의 상대를 바꿀 때마다 민족의 이익이나 위신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처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민족적 이익이나 위신을 포기하면서까지 동맹관계를 바꿀 수 있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김부식은 대륙에서 금나라(여진족)의 패권이 확립되던 시기에 이들과의 동맹관계를 공고히 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려인들이 대륙에 대한 기억을 잊고 한반도에 안주하도록 하고자 역사서를 왜곡했다. 이방원은 정도전의 요동정벌을 저지하고 명나라와의 동맹을 강화했다. 그러면서 그는 무역특혜를 조건으로 조선 청년 병사들이 명나라의 전쟁에 동원되는 전통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처럼 민족적 이익과 위신을 포기하는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나빠지는 일만큼은 어떻게든 막아냈다. 그래서 동맹관계가 바뀌는 것이 이 땅의 백성들에게는 큰 이익이 되지 못했다.
지난날의 동맹에 구애되지 않고 현실적 역학관계를 수긍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지만, 민족의 손실을 감내하면서까지 그렇게 했다는 게 위험한 일이다. 이 땅의 보수파가 새로운 동맹관계를 모색하는 모습을 걱정스럽게 지켜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동일한 맥락에서다. 이런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박근혜 정권을 포함한 역대 보수파 정권들이 동맹관계에서 상대방에게 이끌려 다니면서 국익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에 주둔하는 주한미군을 위해 주둔비용의 상당부분을 부담해주는 것이나,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지 않고 미국에 마냥 맡겨놓고 있는 것이나,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라는 명분 하에 우리 군사정보를 일본에 넘기려 하는 것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보수파 정권은 동맹관계에서 한국의 실익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 이제까지 이렇게 해온 보수파 정권이 새로운 동맹관계를 모색한다고 해서, 기존의 행동패턴이 바뀔 수 있을까.
박근혜 정권과 대한민국 보수파는 김부식·이방원 같은 보수파와 맥이 닿는 세력이다. 한미동맹을 예찬하던 이들이 조금씩 중국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면서, 김부식·이방원처럼 이들도 민족의 이익과 위신을 포기하고 사적인 욕망의 충족을 위해 나라를 이끌고 가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