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신학 대학교로 유학을 가겠다는 말을 남긴 채 회사에 사표를 던진 선배로부터 책 한 권을 받았다. 책 제목은 <스페셜리스트>(조경이 지음, 달빛아래 펴냄). 21명의 크리스천들이 파도치거나 잔잔했던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이에 조경이 기자(전 오마이뉴스 스타팀 소속)가 편지형식으로 답글을 보낸 신앙 고백서다.
받은 책을 벌써 다 읽었지만 쉽사리 서평을 쓸 수 없었다. 고백하건대, 모태신앙으로 신앙생활을 해온 지 30여 년이 넘었지만 종교서적을 완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형식으로 글을 써야 할지 난감했다. 잘못하다간 내가 그간 지녀온 종교서적에 대한 편견처럼, 믿음이 좋거나 특별한 종교적 경험을 한 이들의 고백으로 읽힐 게 뻔했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달랐다. 책을 덮고 며칠이 지났는데 한 선교사의 고백이 계속 생각났다.
세상은 '빨리 뛰어라' '이기라'고 이야기하는데, 도대체 누구와의 경쟁일까요. 내 모습으로 지어진 것은 '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길을 하나님이 주신 모습대로 걸어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신앙의 시작입니다.(책 속에서)빨리뛰기 보다는 나다움으로 달려볼까어릴 때부터 주먹질 하고 다니며 방황하던 소년은 군대에 입대해서도 적응을 못해 퇴소 후 한 달 간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정신병원에서 힙합스타일로 CCM(기독교 음악)을 만들었는데, 아무도 그를 불러주지 않았다. 스피커 하나 없이 길거리에서 노래하다가 안양 소년원에서 일하는 선생님을 만났고, '소년원에 와서 공연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온 몸에 문신을 한' 미래의 선교사가 소년원에서 처음 집회를 열게 된 사연이다.
그런데 그 이후가 더 흥미롭다. 설교를 하면서 몸이 뜨거워지자 재킷을 벗었고, 민소매 바깥으로 문신이 드러났다. 뒤에서 그걸 보던 목사님들은 놀라 마이크를 꺼버렸다. 하지만 소년은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개교 이래 처음으로, 무심하던 소년원 아이들이 울며 기도를 시작한 것도 그때다. 이후 소년은 선교사가 됐고, '삐딱하게 지어진 내가 삐딱한 곳에 보내져서 삐딱하게 말씀을 전해야 하는구나' 깨달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온 몸에 문신이 있는데... 빡박머리... 그 애가 울면서 하나님을 이야기했는데 애들이 같이 울었대... '라는 식으로 전국 소년원으로 퍼져나갔고, '삐딱한' 선교사는 현재 연간 200회 이상의 설교를 다니고 있다. 참고로, 이 선교사의 유일한 스승은 나이트 DJ출신 목사란다. 어린시절 방황하던 소년이 자신의 '삐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주어진 길을 걸어나갔기에, 다른 사람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었던 거다.
요즘 부쩍 '왜 난 행복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자주 한다. 누구는 연봉이 얼마더라, 누구는 몇 년 만에 승진을 했다더라, 누구는 어디에 집을 샀다는데...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는 나를 발견한다. 남들보다 빨리 뛰고 싶어서, 다른 사람을 이기고 싶다는 마음은 어느새 사소한 것까지도 비교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했다지만, 남들보다 빠르게 뛸 생각만 했지, 진짜 '나다움'으로 달려볼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앞서 소개한 '삐딱한' 선교사 뿐 아니라 책 속에 소개된 영화감독, 엔터테인먼트 대표, 가수, 배우 등 21명이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었던 건, 남들보다 뛰어나지 않은 조건 속에 평탄하지 않은 삶을 '나다움'으로 헤쳐나가는 '특별한' 삶의 태도에 있었던 게 아닐까.
미국 유학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는 조경이 기자는 다른 신문사에 입사해 연예인들의 선행기사를 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아, 이 책의 인세는 모두 스페셜리트스들이 선행을 실천하고 있는 NGO단체에 기부된단다. 역시 그녀답다!
덧붙이는 글 | 스페셜리스트/조경이 지음/ 달빛아래 펴냄/ 2015.06.08./ 1만 5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