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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서대문독립공원 내 이진아기념도서관 4층 전망대에서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이 이진아씨의 부모인 현진어패럴 대표 이상철씨 부부에게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12일 서울 서대문독립공원 내 이진아기념도서관 4층 전망대에서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이 이진아씨의 부모인 현진어패럴 대표 이상철씨 부부에게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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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이 찬송가 <내 평생에 가는 길>을 부르자, 현진어패럴 대표 이상철(68)씨는 정두언 의원을 꼭 껴안았다. "아이고 감동이야, 고마워"라고 나직이 일렀다. 정두언 의원은 "이 찬송가의 가사는 사고로 네 딸을 잃은 미국 변호사(호레시오 스패포드)가 쓴 거죠"라고 하자, 이상철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씨의 부인은 눈시울을 붉혔다.

이상철씨는 12년 전 교통사고로 딸 이진아(당시 23세)씨를 잃었다. 당시 이씨는 책을 좋아했던 딸을 그리워하며 도서관을 짓는 데 50억 원을 내놨다. 이씨는 "도서관에 딸의 이름을 붙여 달라"고 했다. 2005년 9월 이진아씨의 생일에 맞춰 서울 서대문독립공원 내에 서대문구립 이진아기념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고, 12일 이진아기념도서관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책 축제를 열었다.

이씨의 고등학교 후배인 정두언 의원은 10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있을 때 도서관이 현재 자리에 세워질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이상철씨는 도서관 4층 전망대에서 인왕산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바라보면서 "정말 좋은 자리"라고 읊조렸다.

"은퇴 후 도서관서 청소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싶다"

 12일 개관 10주년 행사를 연 서울 서대문독립공원 내 이진아기념도서관 전경.
 12일 개관 10주년 행사를 연 서울 서대문독립공원 내 이진아기념도서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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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독립공원 내 이진아기념도서관 입구에는 이진아씨 가족의 사연이 쓰여 있다.
 서울 서대문독립공원 내 이진아기념도서관 입구에는 이진아씨 가족의 사연이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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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부터 이틀 동안 열리는 책 축제에 많은 어린이가 부모의 손을 잡고 참여했다. 이진아기념도서관은 한해 서대문구민(약 32만 명)의 2배에 가까운 60만 명이 방문하고 있다. 전국도서관운영평가 등에서 열 차례 이상 상을 탈 정도로 내실 있는 도서관으로 이름이 높다.

이상철씨와 함께 도서관에서 내려와 책 축제 행사장으로 걸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 감회가 새로울 것 같아요.
"감회라는 게 특별한 게 있나요? 세월이 빠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네요."

- 도서관이 잘 운영되고 있네요.
"보람을 느껴요. 구청에서 관리·운영을 참 잘하는 것 같아요. 작은 동네 도서관인데, 전국적으로 아주 유명한 도서관이 됐잖아요. 사람들이 잘해줘서 그런 거죠. 고마워요."

- 10년 전에 도서관이 이렇게 잘 운영될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이 자리에 오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는데, (이렇게 잘 운영될 것이라고) 많이 생각하지 못했어요."

- 따님 생각이 많이 나실 것 같네요.
"그 뭐, 항상 가슴에 묻고 사는 거죠. 항상 그립고…."

- 하늘에 있는 따님은 오늘 흐뭇해하지 않을까요.
"허허허, 항상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죠. (딸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서 '아빠 고맙습니다' 하지 않을까요."

이상철씨는 작지만 특별한 소원이 있다. 이날 개관 10주년 기념 행사 때 그 소원을 다시 한 번 밝혔다. 

"조금 더 세월이 지나서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되면 여기 도서관에 와서 휴지도 줍고 청소도 하면서 어린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겠다는 그 약속을 아직 지키지 못하고 있어요. 아직도 현업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제 좀 더 오래 사는 세상이 됐으니까 제가 조금은 일을 더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이곳에 와서 그 약속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지역주민의 도서관으로 자리 잡은 이진아기념도서관

 12일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에서 현진어패럴 대표 이상철씨 부부가 이정수 이진아기념도서관장과 함께 책 축제 행사장을 걷고 있다.
 12일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에서 현진어패럴 대표 이상철씨 부부가 이정수 이진아기념도서관장과 함께 책 축제 행사장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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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기념도서관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배경에는 이정수(51) 관장이 있다. 그는 도서관 개관 때부터 10년째 관장으로 일을 하고 있다

2005년 당시 문헌정보학 시간강사였던 이정수 관장은 공모를 통해 뽑혔다. 이 관장은 "면접 때 부성애로 만들어진 도서관을 모성애로 운영하겠다고 말한 게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라고 했다. 이진아기념도서관은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독서실 같은 열람실을 두지 않은 대신, 도예공방·문예창작실 등을 마련했다. 현재 발레·도예수업, 청소년 방송 프로그램 등이 운영되고 있다.

이정수 관장은 "개관 초기 '도서관인데 왜 공부할 곳이 없느냐'면서 1시간씩 소리를 지른 분이 있었어요"라면서 "지금은 그 취지를 이해해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라고 전했다. 또한 "지금은 전국 도서관에 인문학 강좌 붐이 일고 있는데, 이진아기념도서관은 개관 이듬해부터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라고 덧붙였다.

이진아기념도서관은 주민들의 도서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정수 관장은 "주민들과 함께 독서회를 만들었고, 이분들은 동화를 구연하는 자원봉사자나 강의하는 선생님이 됐어요"라면서 "또한 아이 돌잔치를 하지 않고 100만 원을 기부하신 주민이 있었죠"라고 전했다.

이 관장은 "10년 동안 힘든 일도 많았지만, 진아를 생각하면서 힘을 얻었어요"라고 했다. "진아 아버님의 마음이 담긴 도서관에서 제2, 제3의 진아인 예쁜 아이들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면서 "힘들 때마다 '진아가 도와주겠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라고 말했다.

이날 이정수 관장은 이상철씨를 배웅했다. 이정수 관장은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고 했는데, '진아가 자기 생일 때 비 오게 하겠느냐' 하는 생각을 했어요"라면서 농담을 던졌다. 이상철씨는 "비가 안와서 행사가 잘 진행됐어요"라면서 "수고 많으셨어요"는 말을 건넸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이진아기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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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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