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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청소년 특별면 <너, 아니?>에 실렸습니다. <너, 아니?>는 청소년의 글을 가감없이 싣습니다. [편집자말]
 브뤼켄토어(Bruckentor)
브뤼켄토어(Bruckentor) ⓒ 임하영

늦은 오후,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버스에 올랐다. 이제 본격적인 나 홀로 여행의 막이 올랐다. 여태 파리와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친구든, 그 가족이 되었든 누군가 힘이 되어주는, 그리고 하소연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모든 일을 다 혼자서 해나가야 했다. 나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믿어야 했고, 또 그에 따른 책임도 스스로 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을 떠난 지 거의 20일 만이었다.

버스는 하이델베르크로 향했다. 좌석에 앉아 한국에서의 다짐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았다. 그건 바로 진짜 여행자가 되자는 것이었다. 그저 여러 곳의 관광지를 '찍고', 그곳에서의 인증사진을 '찍어' 남들에게 자랑하지만, 정작 그곳에 왜 갔는지, 그 도시, 그 장소에 어떤 역사가 깃들어 있는지 알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그저 단편적인 감상에 머무르는 그런 관광객이 되지 않겠다고 나는 굳게 다짐했었다.

그렇지만 이제 나도 그 '관광객'이 되어버릴 위험에 처해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너무 파리에만 집중했던 나머지 다른 도시들에 대해서는 그리 깊이 있는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이었다. '뭐 그래도 할 수 없지, 일단 가서 무엇이든 찾아보자'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우연히 마주친 철학자의 길, 가슴이 두근거렸다

 철학자의 길 입구
철학자의 길 입구 ⓒ 임하영

프랑크푸르트에서 하이델베르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출발한 지 거의 한 시간 만에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큰 길에는 전차가 다니고 있었고, 그 뒤에 어떤 조그만 오르막길이 시작되는 것이 보였다. 입구를 보니 'Philosophenweg'라고 적혀있는 이정표가 하나 보였다. '으잉, 이건 뭐지?'라고 생각하다 문득 알아차렸다.

이렇게 사람들도 별로 없고, 양옆에 전원주택들로 둘러싸인, 그저 평범한 오르막길 같은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철학자의 길'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칸트와 헤겔, 그리고 괴테가 걸었던 그 길에서 하이델베르크 여행을 시작하다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의욕은 충만했지만 정작 머릿속은 텅 비어있었기에 급한 대로 책도 사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벼락치기 공부를 한 다음 다시 길을 나섰다.

언덕을 따라 쭉 올라가니 본격적인 산책로가 시작되었다. 강을 기준으로 하이델베르크 구도심과 마주 보고 있는 이 언덕은 하일리켄베르크(Heiligenberg)라고 불리는데, 직역하면 '성스러운 산'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곳 하일리켄베르크에는 로마 시대부터 계단식 농업이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당시에는 주요 작물이 포도였던 만큼 언덕 전체가 포도원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런데 왜 이 길에는 생뚱맞게 '철학자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것일까? 이 이름이 생겨난 것은 19세기 초인데, 당시 하이델베르크에 머물고 있던 시인 횔덜린(Holderlin)과 아이헨도르프(Eichendorff)가 포도밭 사이 오솔길 거닐기를 즐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그전에는 칸트(Kant), 헤겔(Hegel), 이후에도 하이데거(Heidegger), 야스퍼스(Jaspers)와 같은 철학자들이 이 언덕에서 산책을 즐겼다고 하니 그리 생뚱맞은 이름은 아닌 듯하다.

 철학자의 길에서
철학자의 길에서 ⓒ 임하영

여러 포도원을 요리조리 관통하는 길이었던 이곳이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게 된 것은 1830년대 후반이었다. 중간마다 철학자의 뜰을 비롯해 쉬어갈 수 있는 공간들이 생겨났고, 언덕을 뒤덮고 있던 포도원은 점차 과수원과 채소밭으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철학자의 길을 조금만 벗어나면 아직도 그 로마와 중세시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부지런히 밭을 가는 농부와 이제 막 익어가고 있는 포도.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 내려오는 하이델베르크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잠시 엿볼 수 있었다. 힐끗 강 건너를 바라보니 차분하지만 아름다운 구도심의 경치가 펼쳐진다.

차분하지만 매력적인 구도심은 내일로...

 철학자의 길 중간에 있는 엘리자베스 샤를로트(Elizabeth Charlotte) 기념비. 그녀는 루이 14세의 동생 필립 오를레앙(Philippe d'Orleans)과 결혼했다.
철학자의 길 중간에 있는 엘리자베스 샤를로트(Elizabeth Charlotte) 기념비. 그녀는 루이 14세의 동생 필립 오를레앙(Philippe d'Orleans)과 결혼했다. ⓒ 임하영

모든 건물이 거의 같은 색의 지붕을 가지고 있기에 자칫 단조로울 수도 있지만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그 오묘한 풍경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사실 하이델베르크는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상당한 폭격을 당했는데 그것을 전쟁 전의 모습으로 거의 완벽에 가깝게 복원해낸 것을 보면, 이들이 옛것을 얼마나 사랑하고 존중하려고 노력하는지 알 수 있는 것 같아 무언가 신기하기도, 부럽기도 했다.

철학자의 길 중간쯤 다다랐을 무렵, 샛길로 빠져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좁고 가느다란 골목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네카어(Neckar) 강 언저리에 다다른다. 그와 동시에 마주하는 '오래된 다리(Alte Brucke)'라고도 불리는 '카를 테오도르 다리(Karl-Theodor-Brucke)', 그 건너편에는 다리의 문이라는 뜻의 브뤼켄토어(Bruckentor)가 여행자들을 반긴다. 브뤼켄토어는 두 개의 망루와 그를 이어주는 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래 이 문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시 외벽의 일부로서 두 개의 망루만이 하이델베르크의 북쪽 출입구를 지키고 있었지만, 1786년 카를 테오도르 선제후에 의해 석조다리가 착공되면서 이 두 망루를 잇는 문 역시 함께 건설되었다고 한다. 만약 이 문이 없었다면? 굉장히 썰렁하지 않았을까…. 중세시대의 하이델베르크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보며 발걸음을 돌렸다. 날이 벌써 어둑해지고 있었다. 구도심은 아쉽지만, 내일 둘러보기로 하고 숙소로 향했다.


#하이델베르크#철학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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