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게 보낸 추석 연휴나는 올 추석 연휴를 매우 우울하게 보냈다. 그 까닭은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차라리 추석 연휴 이후에 그 책을 읽었더라면 후회하기도 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로 인생사란 어디 내 마음대로 펼쳐지는가?
나는 1960년대 대학을 다녔는데, 그 시절 장준하 선생이 펴낸 <사상계>는 지적 욕구를 채워주는 오아시스요, 바이블이었다. 그 뒤 그분이 쓰신 <돌베개>와 은사 김준엽 선생이 쓰신 <장정>을 가슴 조이게 읽으면서,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듯 황홀했다. 질곡의 일제강점기 말기에 그토록 장한 젊은이가 있었다는 데 나는 무한히 느꺼운 감동을 받으며, 이런 분들이 있었기에 조국의 앞날은 밝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2003년 2기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장준하 선생 의문사를 담당했던 고상만 조사관이 피와 땀과 눈물로 쓴 것으로, 그분의 진정성이 첫 장부터 끝 장까지 켜켜이 묻어나 있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독자는 저자가 피와 눈물로써 쓴 글만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 탓인지 나는 추석 연휴 내 이 책을 열독했으며, 어떤 부분은 두어 차례 다시 읽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크게 세 가지 점을 장탄식했다.
'골로 가다'의 실체그 하나는 그분은 왜 당신 발로 '골로 가다'의 그 산골짜기로 갔을까 하는 점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골로 간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다. 은사 조동탁(조지훈) 선생의 '사쿠라론'에 따르면, 이 '골로 간다' 말은 6.25 전쟁 전후로 유행한 속어로 '산골짜기로 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는 곧 '아무도 몰래 죽인다'는 말이라고 풀이했다. 나는 실제로 이 말의 어원이 되는 골로 가는 장면을 사진으로 직접 봤다.
2004년 백범 암살 배후를 규명하고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갔을 때 제주 출신으로 '백조일손'의 후손 고 이도영 박사가 당신이 발굴했다면서 나에게 기증했다. 1951년 대구 근교 부역자 처형 장면을 담은 이들 사진 6매에 따르면, 관계 당국자들이 부역 혐의자들을 산으로 데리고 간 다음 자기 무덤을 파게 한 뒤 총살시킨 후 처형 집행자들이 삽으로 그 무덤을 덮는 장면이었다.
장준하 선생은 '골로 가다' 말의 의미도, 또 그런 세태도 잘 아셨을 것이다. 그런데도 가족이나 믿을 수 있는 동지와 동반도 아닌, 홀로 경기도 포천 약사봉 험한 산을 찾은 것은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든 꼴'로 내내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감시의 공포그 둘은 1963년부터 1975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할 때까지, 아니 사후까지 중앙정보부의 감시를 받고 사신 점이 매우 가슴 아팠다. 다른 이나 전문 정보기관으로부터 감시와 도청을 당한다는 것은 체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그 공포감과 불편함을 모를 것이다.
나는 2005년 5월 25일, 안동문화방송국 '혁신유림' 특별취재팀의 코디 역으로 중국 동북 삼성항일유적지 답사 길에 나셨다. 그날 이른 아침, 단둥 압록강 강가에서 압록강 철교를 촬영하다가 중국 공안에게 영문도 모른 채 연행되었다. 다행히 선양 영사관의 도움으로 풀려났지만 우리 답사팀 일행은 랴오닝성을 벗어날 때까지 사흘 동안 중국 공안은 우리 취재팀을 철저히 미행했다.
그 이튿날 고산자 신흥무관학교 옛 터를 찾아가는데 중국 공안 두 대의 승용차가 마치 개구리 노는데 뱀처럼 우리 일행을 노려보면서 신경을 건드렸다. 그때마다 머리칼이 쭈뼛 섰다.
나는 1980년 초 당시 사형수(김대중 전 대통령)의 막내아들 김홍걸군을 학교에서 가르쳤는데 그는 도통 말이 없었고 침울해 보였다. 어느 날 그가 모처럼 나에게 던진 한 마디는 "선생님, 저희 집은 정보부에서 감시하기에 대문을 열어둬도 도둑이 얼씬도 안 해요"라고 했다. 그 감시가 얼마나 철저했으면 생기 발랄할 청소년의 말조차 앗아가게 했을까?
보이지 않는 권력그 셋은 우리나라 정치인의 의문사는 왜 시원스럽게 진상이 밝혀지지 않느냐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나는 한때 백범 암살범 안두희를 10여 년간 끈질기게 추적한 우국지사 권중희 선생을 인터뷰한 인연으로 독자들이 성금을 보내줘 그 진상을 규명하고자 미국 내셔널아카이브에 간 적이 있었다.
영어에 벙어리요, 까막눈인 권 선생과 나는 정말 매우 힘들게, 권 선생님은 필생의 소원으로 미국 워싱턴 근교 내셔널 아카이브까지 찾아갔으나 곧 그곳 아키비스트(문서관리자)로부터 미국 국익에 반하는 문서는 97~98퍼센트가 "Destroyed(파괴, 또는 제거)"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도록 실망한 적이 있었다.
그곳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국익에 반하는 극비문서는 별도 소장되어 일반인은 열람할 수도 없거니와 여러 차례 열람신청을 거듭하면 검은 색으로 기록을 덮어 도저히 읽을 수 없게 된 서류를 보여준다고 했다. 아마 미국도 보이는 않는 어떤 권력이 미국전체을 컨트롤 하며 이끌어간 듯 보였다.
두개골 함몰의 진실은?이 책의 저자 고상만 전 조사관도 중앙정보부가 기록한 장준하의 숨겨진 기록이 어딘가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고 믿고, 그것을 매우 보고 싶어 하고 있다.
나는 이 책 마지막 쪽에 실린 '오른쪽 두개골이 둔기로 함몰된 장준하 선생의 유골'을 보면서 누가 이런 끔직한 짓을 했을까? 라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이 책을 덮으며 혼잣말을 했다.
'누가 장준하 선생님의 두개골을 함몰시켰을까?'고상만 전 조사관이 앞으로도 좌절치 않고 계속 소명감을 가진 채 장준하 선생 의문사 진실을 이 세상에 시원하게 드러내 주기를 기대해 본다.
"진리가, 진실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덧붙이는 글 |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 / 오마이북 / 352쪽 / 1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