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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 이영광

지난 12일 '반헌법 행위자 열전' 편찬위원회 출범식이 서울시청에서 열렸다. 공교롭게 이날은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 계획을 발표했다.

'반헌법 열전'은 헌법이 제정된 뒤 대한민국 권력을 잡은 자들이 과거에 헌법을 어떻게 짓밟았는지를 기록하는 것이라고 편찬위 측은 설명했다. 어떻게 편찬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여 열전 편찬위에서 활동하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를 지난 13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편 한 교수는 최근 논란이 된 동영상에 대해 15일 "근 1년 전에 한 강연이 지금 새삼스럽게 문제가 되는 것은 다수의 국민과 거의 모든 역사학자가 반대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호도하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한다"며 "11개월 전 강연을 이제 와 사실 확인도 없이 악의적으로 왜곡 보도하고 무책임하게 퍼나른 것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란 뜻을 밝혔다(관련 기사: 한홍구의 눈물 "조선일보와 끝까지 가겠다").

"헌법만 잘 지켜도 '헬조선'이란 말 안 나온다"

- 지난 12일 '반헌법 행위자 열전' 편찬위원회 출범식이 있었는데요.
"마침 역사교과서 국정화 계획이 발표된 날이라서 역사 문제에 대해 열기와 관심이 더 뜨거웠어요. 토크쇼 형식이어서 자유롭게 말했는데 신인령 선생은 크리스천 아카데미 때 잡혀간 얘기를 하셨어요. 또한 이해동 목사님은 '과거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고 이만열 선생이 나오셔서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셨어요."

- 지난 12일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발표했어요. 어떻게 보시나요?
"'막가파'란 생각이 들어요. 박근혜 정권이 이념 문제를 들고 나오는데 하필이면 왜 모델이 유신이어야 하는가에요. 그리고 '종북, 종북'하더니 자기네가 북한 따라 국정화하는데 북한과 우리의 가장 큰 차별성이 '다양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심각한 상처를 받게 된 거죠. 정상적인 역사학계 전체의 분위기가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국정화 반대입니다. (국정화 교과서) 지금 분위기는 집필에 참여한 보수 성향 교수들까지도 좌편향으로 몰아붙일 정도입니다.

이 정권이 왜 역사에 매달리느냐 하면 모든 걸 가졌으나 역사의 주인은 일반 시민이기 때문에 그건 못 가졌죠. 그들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느냐가 내일의 역사가 되는데, 박근혜 정권의 말도 못하는 횡포와 시대착오적 행위는 역사에 분명하게 기록될 겁니다. 앞잡이 노릇을 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나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도 역사가 기억할 겁니다.

저는 장기적으로 볼 때 이(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봐요. 그리고 정권이 천년만년 가기 위해 이 짓을 하는데 그렇게 갈 수 없죠. 정권에 따라 역사가 바뀌어야 하나요? 적어도 교육의 중립성을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짓을 저지르는 겁니다."

- <반헌법 행위자 열전>에 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세요.
"헌법이 우리 사회 중요한 쟁점으로 등장했습니다. 민주화 이전에는 권력이 힘으로 밀어붙였는데 민주화가 되면서 적어도 룰이 무엇인지를 따지게 됐어요. 그 룰은 우리 사회에서 헌법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지금까지는 헌법이 기득권 세력의 전유물이다시피 했거든요. 그런데도 헌법엔 좋은 내용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 헌법에 있는 내용만 제대로 지키면 20~30대 청년들이 '헬조선', '망한민국', '지옥 불반도'란 표현을 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쟁점이 헌법으로 귀결되는 상황이죠. 헌법이라는 게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활동을 해결할 최종적 기준이 될텐데, 그 헌법을 수구 진영에 넘겨줘서 되나 싶은 거죠. 이승만 정권이나 유신 등 친일에서 이어진 독재 세력이 헌법을 파괴해왔습니다. 특히 유신과 5공에서는 헌법 자체가 극악하게 바뀌었어요. 그러다가 헌법을 장악하고는 호헌을 내걸었습니다.

그런데도 6월 항쟁 이후 헌법이 최소한 중립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고 대한민국에서 지켜야 할 기본 룰로 자리를 잡게 된 게 1987년이죠. 우리 사회가 워낙 보수적이다 보니 보수적인 지금의 헌법에 규정된 내용도 진보적으로 보이게 되는데, 헌법에 규정된 최소한도의 기본적인 가치들을 지켜야죠.

대한민국에서 쉽게 빨갱이 소리 안 듣고 살아갈 근거는 헌법 속에 다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대한민국 권력을 잡고 있는 자들이 과거에 헌법을 어떻게 짓밟았는지를 젊은층에 보여줌으로써 '당신들 더는 헌법에 대해 떠들지 마'를 외치려는 작업이에요."

"지금까지 정체 감추고 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고발"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 이영광

- 준비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작년 초부터 시작해서 사전을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기초·물적·인적 자원은 어느 정도 확보했어요. 그래도 많이 부족합니다. 장기적으로 끌고 가려면 여러분들이 동참해주셔야죠. 자료는 널려 있어요. 민주정부 10년에서 과거청산을 안 한 것이 아니죠. 다만 가해자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안 했어요. <반헌법 행위자 열전>은 지금까지 과거 청산의 성과를 이어받아 가해자 부분을 정리하고 가해자들에게 당당히 '당신들 대한민국에서 시민으로 살려면 당신들의 과거 가해행위에 대해서 반성,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확실히 약속하라'는 거예요."

- <반헌법 행위자 열전>은 어떻게 편찬하게 되었나요?
"제가 참여정부 때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3년 정도 일했는데, 진실을 많이 밝혀냈지만 제대로 밝히지를 못했어요. 그때 탄핵이 이뤄진 것도 과거청산 없는 민주화가 초래한 민주주의 자체의 위기였죠.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개인으로서는 온 힘을 다해 과거사를 정리하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참담한 실패였죠. 국정원이 도로 저 모양으로 대선에 개입했거든요. 구제불능이라 해체밖에 길이 없는 것 같아요. 실패를 절감한 상징적인 사건이 '인혁당' 사건인데요, 당시 제가 인혁당 사건 조사 책임자였습니다.

조사 당시 국정원을 대표해서 보고서 작업에 참여했던 국정원 직원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에서 증거조작을 한 주 선양 한국영사관 국정원 영사예요. 이런 일을 당하니 '과거 청산이라는 게 가해자들의 선의를 믿으면 안 되겠다, 그들이 이 사회에서 과거 어떤 짓을 했는지 밝히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업을 우리가 해야겠다' 생각을 해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시작하게 된 거죠."

- 혹자는 '지금은 과거 얘기할 때가 아니라 미래를 말해야 한다. 언제까지 과거만 붙들고 살 것인가?' 하고 묻는데.
"이 작업을 과거사로 보지 않아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친일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겠지만, 작업에 옛날 일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 헌법을 짓밟은 채 지금까지 정체를 감추고 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까지 고발하는 작업입니다. 이게 왜 문제냐면 우리 사회에서 뭔가 진보나 변화를 향한 얘기를 하면 무조건 종북이나 빨갱이 딱지 붙이는 자들이 실제 어떤 자들이었고 어떤 행각을 벌여왔고 어떻게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파괴해 왔는지를 밝히기 때문입니다. 이 작업은 과거를 다루는 것 같지만, 현재의 대한민국 민주시민들이 이 사회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 반헌법 행위자에 대한 기준이 필요할 듯한데.
"헌법엔 모든 게 다 들어있잖아요. 그러나 헌법을 다 적용하면 너무 넓어서 필요한 작업을 못해요. 그래서 범위를 내란·민간인 학살·부정선거·고문 조작 등 네 분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300명 정도로 축소하려고 해요. 왜냐면 너무 많아서 자료정리만 하다가 필요한 시기에 발간하지 못하거든요.

저희는 적어도 5~6년 사이에 발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한 과거에 벌어진 일을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려느냐고 할 수 있어요. 역사학은 지금의 잣대로 재평가해야 하죠. 하지만 이 작업을 하는 데 적어도 여기 걸린 사람들이 '내가 왜 반헌법 행위자냐', '억울하다'라는 소리를 못하게 하려고 당시의 법령으로 따져도 명백한 범죄 행위를 구성하는 경우로 국한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하면 많은 분이 반헌법 요건에서 빠져나갈 수가 있어요. 그런데도 뺐어요. 어차피 낚시질을 해도 물고기 다 잡는 거 아니잖아요. 정말로 중요한 사람들을 정확히 역사적인 평가를 하기 위해서죠. 유신 헌법 때도 무고한 사람 잡아다가 가두고 고문해서 간첩 만드는 건 당시 법률로도 중대한 범죄입니다. 그 당시 형사법 체계 아래에서 명백한 범죄 행위들만 해도 300명 집어넣는 건 문제가 없어요. 여기 걸린 사람이 억울해 하진 않아요."

- 300명이면 적은 느낌인데.
"물론 그런 느낌이 들 수 있어요. 네 분야면 각 분야에 70~80명 정도 되겠죠. 터무니없이 적죠.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단 한 명도 반헌법 행위자를 기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300명은 많다고 생각해요. 버겁기도 해요. 그러나 이 300명만큼은 책임지고 반드시 하죠. 처음부터 욕심부리지 않을 거예요."

- 300명 중에 박정희 전 대통령 부녀도 들어가나요?
"박정희씨는 안 들어갈 수가 없겠죠. 탱크 몰고 헌법을 파괴한 자가 안 들어갈 수 있나요? 언제쯤 들어가서 발표할지는 모르죠. 그리고 박근혜씨는 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대선 부정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미국 닉슨 대통령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의 가치 아닌 형사법 기준으로 반헌법 행위자 판단"

- 반헌법 행위자는 아무래도 보수 측 인사가 많아서 보수 측이 반발하고 있어요. 다시 이념논쟁으로 빠질 가능성도 커요.
"그래서 기준을 진보의 잣대가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을 기준으로 형사법 체계를 갖고서 했어요. 대한민국 보수세력도 이 기준을 존중해야죠. 진보의 가치로 그들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과 행위 당시의 법률을 가지고 평가하겠다는 얘깁니다. 이건 이념도 아니고 이중 잣대도 아니에요.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기준을 세운다면 그나마 합의할 수 있는 기준이 헌법이잖아요. 반헌법은 진보진영에서는 쓰지 않던 말이라서 생소하거나 거기에 주저앉아야겠냐고 비판하기도 해요. 그러나 저희는 현재 대한민국 절대다수에게 공감할 수 있는 기준으로의 헌법을 얘기하는 겁니다.

이런 보편적인 가치를 세워나가는 작업이 대한민국에서 쓸데없는 이념논쟁을 피할 길입니다. 진보와 보수가 성숙한 민주주의로 룰을 존중해야죠. 대한민국에서 룰을 어기고 심하게 반칙하는 자들을 기록하는 작업입니다. 그걸 적발하는 데에 너 편 내 편을 가르면 안 되죠. 우리 편이든 저쪽 편이든 간에 룰을 어기면 제재를 해야죠. 심한 것도 아니고 역사에 기재하는 겁니다."

- 보수권에 의하면 헌법을 부정하고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이 있다고 주장하잖아요. 실제 존재한다면 그것도 포함되나요.
"저희가 대상으로 삼는 사람은 대한민국 공직자로서 공권력을 이용해 반헌법 행위를 한 자로 전제를 달았습니다. 북한을 추종한다면 국가보안법으로 처리하면 되죠."

- 세월호 참사로 작업 범위가 확대되었다고 들었는데 이유가 있나요?
"이런 작업은 저희가 거의 소액후원을 받아 하기 때문에 일을 크게 못 벌여요. 그리고 다뤄야 하는 시간이 60년이 넘다 보니 시기를 확대하면 검토해야 할 자료의 성격도 달라지고 일이 커집니다.

처음 저희는 1960년 이후로 생각했어요. 막 시작하려는데 세월호 사건이 터져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죠. 특히 이준석 선장이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도망간 것에 대해 '저런 나쁜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분개했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전쟁 발발 당시 도망가며 국민에겐 안심하라고 했죠. 이준석 선장이야 평생 감옥에서 보내겠지만, 이 대통령은 돌아와서 다리가 끊겨 피난 못 간 사람들을 부역자로 몰아 처벌했잖아요. 이런 부분에서 책임을 물어야죠.

과거 청산의 뿌리라는 게 결국 친일파부터였죠. 친일파가 대한민국에서 권력을 장악한 계기가 다리 끊고 도망간 놈들이 돌아와서 남아있던 서울시민을 모두 부역자로 처벌하는 과정에서라는 걸 다시 알게됐죠. 이런 이상 힘들더라도 반민특위가 실패한 그 자리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하고 올 7월 기자회견을 했죠."

- 일반인이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죠?
"간단한 작업이 아니라 상당히 오래 걸릴 거예요. 우선 후원회원이 되면 시민편찬위원이 될 수 있고 그 외에 각종 정보나 자료를 제공할 수도 있고 사무실에 나와 행동으로 편찬 작업에 동참할 수도 있습니다. 동참해주시려면 저희 홈페이지나 페이스북에 와주세요."

-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워낙 큰 작업이죠. 올해부터 내년 3월 정도까지 분야별 주요 사건과 주요인물 그리고 각 분야에서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선정 기준을 마련하고 후보자 명단을 작성해 이르면 내년 말 100명쯤 1차 명단을 발표하려고 합니다."

○ 편집ㅣ이준호 기자



#한홍구#반헌법 행위자 열전#이승만#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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