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대의 한국사 연구단체인 한국역사연구회도 역사 국정교과서 집필 거부를 선언했다.
한국역사연구회는 15일 오후 전·현직 회장, 전·현직 운영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비상회의를 열고 입장을 정리했다.
연구회장인 정용욱 서울대 교수는 "회의 내내 침통한 분위기였으며, 때로는 격한 성토가 이어지기도 했다"면서 "회원들이 특히 분개한 것은 현 정부와 여당이 엄격한 기준에 따라 심사와 검정을 마치고, 이후 수정까지 거친 교과서들에 대해 낡아빠진 색깔론으로 국민 선동을 일삼고 역사연구자와 역사교사들을 모독한 것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같은 날 단국대와 동국대 역사 관련학과 교수들도 집필 거부를 선언했다. 역사 관련학과 교수들이 집필 거부를 한 학교는 한국교원대·연세대·고려대·경희대·서울시립대·성균관대·중앙대·한국외대·이화여대·부산대·전남대·동국대·단국대 등 12곳으로 늘어났다.
다음은 한국역사연구회와 동국대·단국대 역사 관련 학과 교수들의 입장 전문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한국역사연구회의 입장
|
한국역사연구회(이하 '연구회')는 2017년 10월 15일 참석을 원하는 일반 회원들도 참석한 가운데 전·현직 회장과 운영위원들이 비상회의를 개최하여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이 초래한 역사교육과 역사학의 위기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하고 연구회의 장단기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이 회의의 논의 및 결의 사항을 간략히 추리면 아래와 같습니다.
한국사 전문 연구자 단체인 저희 연구회는 그동안 다른 역사 연구 및 교육 전문가들과 힘을 합쳐 정부와 여당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기도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연구회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 것은 그것이 헌법이 보장한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역사 교육의 목적, 그리고 UN 인권이사회 보고서가 명시한 역사교육의 세계 보편적 기준에 어긋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저희의 노력에 대해 역사학계, 역사교육계는 물론 시민사회도 지지와 성원으로 화답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낡아빠진 색깔론으로 국민 선동을 일삼고 역사연구자와 역사교사들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현 정권 스스로 검인정 통과시켜 일선학교에 보급한 현행 교과서가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있다며 펼침막을 내걸었다 회수하는 여당의 소동은 21세기 한국사회에서 벌어졌다고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 구시대적 작태의 전형입니다. 이 소동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대립이 이념이나 정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몰상식, 이성과 광기의 대립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역사의 독점과 사유화로 정권의 입맛에 따라 국민의 과거 기억을 통제하려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단지 교과서 편찬제도의 퇴행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크게 후퇴시킬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학문의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 국민의 알 권리를 위축시키거나 침해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 결과 식민지, 분단, 전쟁, 독재를 거쳐 국민의 힘과 땀으로 힘들게 일구어온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성취는 심각하게 훼손될 것입니다.
졸속적인 역사 교과서 편찬으로 학생, 교사, 학부모가 입을 피해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초래할 역사교육과 역사학의 위기, 그리고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그대로 좌시하지 않겠다는 역사학자들의 결의와 각오가 각 대학 교수들과 여러 학회의 집필 거부 선언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연구회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며, 비상회의의 결의 사항을 국민들에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1. 정부 여당은 지금이라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철회할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2. 정부 여당은 낡아빠진 색깔론으로 국민을 선동하고 역사학자와 역사교사의 명예를 훼손하는 구시대적 행태를 즉각 중단하도록 엄중히 요구합니다.
3. 정부 여당이 끝내 국정화를 강행한다면 연구회는 국정 교과서 제작과 관련된 연구 개발, 집필, 수정, 검토를 비롯한 어떠한 과정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을 결의합니다.
4. 연구회는 혹시라도 이런 상황이 올 것을 예상하며 연구자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대안 한국사 도서의 개발을 준비해왔습니다. 교육 현장의 어려움을 외면한 채 역사 교과서 집필 불참 선언으로 역할을 끝내는 무책임한 처신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고, 대안 한국사 도서의 편찬에 더욱 속도를 내겠습니다.
5. 국정화 철회를 위해, 역사교육과 역사학의 퇴행을 막기 위해 역사교육계와 더욱 긴밀히 협력하고, 또 다른 학문 분야와도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겠습니다. 연대와 협력의 대상에 국제 학계도 포함할 것입니다.
2015년 10월 15일 한국역사연구회
|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 참여를 거부하는 단국대학교 역사 전공 교수 성명서 |
교육부는 지난 월요일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방안을 공식 발표하였다. 이 시대착오적 퇴행에 동의하기 어려운 단국대학교 역사 전공 교수들은 향후 진행될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 및 제작과 관련된 일체의 과정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밝히고자 한다.
우리는 비판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역사학 본연의 임무를 도외시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역사교육적인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나아가 국정 역사교과서는 청소년들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인식, 배려하고 포용하는 민주주의적 사고능력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청소년들이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역사해석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역사교육이 필요하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교육부는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과 국민 통합을 위하여 후진적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철회하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리는 바이다. 우리는 이 땅의 청소년들이 포용력과 창의력을 함양시킬 수 있는 비판성과 다양성이 담보된 역사교과서를 염원하고 있다.
2016년 10월 15일 단국대학교 역사 전공 교수
-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 김문식, 김연진, 박경식, 심재훈, 전덕재, 최희재 - 외국어대학 역사학과 교수: 김영제, 김현수, 문철영, 이종수, 한시준 - 문과대학, 교양학부 교수: 김상엽, 김철웅, 박성순, 이재령, 이정주
|
반민주적 한국사 국정교과서 집필을 거부한다! |
동국대 교수 65명은 9월 23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이미 발표한 바 있다. 대다수의 역사학자와 일선의 역사교사는 물론 많은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은 한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결정하였다. 국정화의 의도가 무엇인지, 국정화 교과서가 어떤 내용을 담게 될지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검인정 교과서는 많은 국민들의 희생으로 쟁취한 민주화의 소중한 산물이었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고 획책하고 있다. 일찍이 역사교과서의 검인정화를 주창하였던 국내 역사학계는 검인정화 실시 이후 많은 노력을 통하여 이전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알차고 수준 높은 검인정 교과서들을 다수 간행하였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중등 역사교육의 수준은 한층 높아졌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이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일부 독재국가에서나 행해지는 국가 주도의 국정교과서로 역사 교육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려는 것은 최근의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기존에 간행된 검인정 역사 교과서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검토 없이 일부 내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선입관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정치권에 영합하기 위하여 분명한 근거도 없이 기존 학계의 연구 및 그에 기초하여 서술된 역사 교과서의 내용을 좌파적, 친북적이라고 중상 비방함으로써 개인적 영달을 추구하는 일부 순수하지 못한 출세주의 연구자들의 선동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재의 상황에 대하여 대학에서 역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우리들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정부가 시도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절대로 허용되어서는 안 될 학문적, 교육적 폭거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정부 여당의 의도대로 국정화가 시행된다면 우리들은 그 집필 및 감수를 비롯한 어떤 과정에도 일절 참여하거나 협조하지 않을 것이며, 이후에도 국정화 철폐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15년 10월 15일
한국사 국정교과서 집필 거부 동국대 교수 명단
강택구(역사교육과), 한철호(역사교육과), 황인규(역사교육과), 윤선태(역사교육과), 서인범(사학과), 양홍석(사학과), 노대환(사학과), 최연식(사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