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요즘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한데. 핫초코 좀 사야죠?""하하, 당신은 날만 추워지면 어김없이 핫초코를 찾네요. 여름에는 입에도 안 대면서."지난 주말 마트에서 장을 보던 40대의 C씨 부부가 이런저런 물건을 고르면서 대화를 나눈다. 한데 부인이 핫초코를 쇼핑 카트에 집어넣자, 남편이 이를 놓치지 않고 한마디 한 것이다.
"글쎄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네요. 하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따뜻한 핫초코에 구미가 당기는 건 자연스럽지 않나요?"부인이 이상할 게 전혀 없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을 받는다. 그러자 남편이 정색하며 반박한다.
"초콜릿을 꼭 뜨겁게 마시란 법은 없죠. 여름에는 얼음을 띄워 시원하게 먹을 수도 있는데, 당신은 겨울엔 그렇게 좋아하는 핫초코를 여름엔 시원하게 해서라도 먹을 생각을 아예 안 하잖아요."여름에는 시원한 음식을, 겨울에는 따뜻한 음식을 찾는 건 얼핏 생각하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열치열이라는 말도 있듯, 여름에 땀을 흘리면서도 탕 종류 메뉴를 찾는 예도 적지 않다. 또 겨울에도 떠먹는 아이스크림 등 찬 음식을 즐겨 먹는 사람들 또한 드물지 않다. 음식 자체가 차고 뜨거운 게 음식 선호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아닐 수도 있다.
메뉴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아마도 개인의 기호일 것이다. 그러나 기호를 떠나 계절별로 선호되는 음식 유형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추울 때는 대체로 열량이 높은 메뉴를, 더울 때는 칼로리(열량)가 낮은 음식에 마음이 간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육류는 열량이 높은 대표적인 음식인데, 다른 계절보다는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에 소비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겨울에 열량 섭취 적어도 살이 불어나는 이유는
구체적으로는 보건복지부 등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 1인당 하루 육류 소비량은 겨울철에 261g 정도로 가장 많고, 가을에 255g, 봄과 여름은 각각 244, 247g으로 적은 편이었다. 계절별 수치 차이는 크지 않은 것 같지만, 여름철에 해가 길고 휴가 야외 활동 등이 많은 등 고기 수요가 커질 요인이 적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나름 의미있는 통계 수치라고 할 수 있다.
겨울철은 사실 고기류 외에도 식품 총 섭취량이 단연 높은 계절이다. 바꿔 말해 겨울철은 열량 섭취가 늘어나는 경향이 뚜렷하다. 또 이런 계절별 추세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북미 지역 등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왜 겨울철에 열량 섭취가 늘어나는 걸까? 학자들은 추운 날씨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가을을 가리켜 흔히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가을에 접어들며 살이 찌는 건 말만이 아니다. 동면하는 곰은 물론, 집 밖에서 기르는 개에 이르기까지 날씨가 추워지면 거의 모든 동물이 많이 먹고 살을 불리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인류의 조상들 또한 혹독한 겨울을 나려면 가을부터는 충분히 먹어둬야 했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겨울에는 열량 섭취가 적더라도 살이 불어나는 경향성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햇빛 노출이 적은 겨울철에는 비타민D 생성이 줄어드는데 비타민D가 줄어들면 보통은 지방 분해 속도 또한 느려지는 까닭이다. 이 또한 혹독한 겨울나기를 위한 진화의 산물이다.
또 일조량이 적은 늦가을이나 겨울철에는 혈중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 분비가 줄어들면서 계절성 우울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세로토닌 수치는 열량 섭취가 늘어나면 역시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 또한 겨울철에 먹을 것을 많이 찾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편으로도 열량 높은 음식을 찾는 셈이다.
덧붙이는 글 | 위클리공감(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주간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