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11월 2일, 그날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입니다. 그 날을 앞당겨 축하할 마음으로 전라남도 장흥에 있는 천관산(天冠山)을 찾았죠. 그곳에서 유별난 파티나 축하 공연을 갖고자 함은 아니었습니다. 서울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가끔씩 오른 남한산성처럼, 오랜만에 그 산자락에 올라 마음을 다잡고 싶은 까닭이었죠. 더욱이 그 산 정상 너머에 억새도 멋지다 하니 그곳에서 기념사진도 한 컷 남기고픈 마음이었습니다.
모름지기 일생일대에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사건이 결혼이라고 하죠. 그런데 꿀맛처럼 달콤한(honey) 날들도 한 달(month)이면 금방 끝나버린다고 하여 '허니문'이라고 칭한다고 하죠. 하지만 얇은 색종이로 꿈을 접듯 첫 해(紙婚, 지혼)를 지나, 가는 실을 엮어 부드러운 천을 만들어 몸에 걸치듯 따사로운 사랑으로 2년(綿婚, 면혼)을 거쳐, 무두질한 가죽으로 튼튼한 허리띠를 만들 듯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3년(革婚, 혁혼)을 보내고, 나무가 꽃이 피고 열매를 맺듯 아이들도 점차 생기고 자라나는 5년(木婚, 목혼)을 지나, 10년을 맞이하는 날 불로 연단하여 불순물을 걸러내는 주석처럼 멋진 훈장(朱錫婚,주석혼)을 달아준다고 하죠.
우리 부부도 결혼한 지 13년이 되었으니 그에 걸맞게 큰 딸 민주도 13살의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되었고, 그 아래 두 남동생 민웅이와 민혁이도 11살과 10살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부부는 구리거울처럼 맑고 빛남이 깨어지지 않을 만큼 더욱 단단해지는 과정을 통해 결혼 15주년에 서로의 목에 동메달(銅婚, 동혼) 하나씩을 걸어줄까 합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 13년 동안 큰 딸과 아들 둘을 낳아 기르면서 아등바등 살아온 것 같습니다. 산을 오르듯 힘들게 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고, 산 중턱을 오르다 양 갈래 길을 만나면 서로 다른 방향을 고집하듯 특별한 문제 앞에서 보이는 의견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정상에 올랐을 때 얻는 성취감 때문에라도 참고 또 참으며 오르듯, 우리 부부도 여태껏 그런 상급을 바라보며 힘든 나날을 잘 견뎌왔습니다.
배고픔 꾹 참고 올라 환희를 맛보다
그날 나와 아내는 목포 유달경기장 근처에 있는 자유로 교회에서 차를 몰고 장흥의 천관산까지 1시간 정도 달렸습니다. 자유로 교회에서 백년로를 지나 전남도청 앞길을 거쳐, 2번 국도에 진입했습니다. 그리고 영암 순천간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강진 나들목에 빠져나와 장흥 나들목을 거쳐 천관산 중턱 아래의 아담한 천관사(天冠寺) 주차장에 당도했습니다.
처음 가는 길목이라 우리 부부는 내려오는 순례객들을 붙잡고 어디로 가야 할지 물어봤죠. 그랬더니 천관사 윗길로 이어지는 작은 대나무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내 천관산 정상의 연대봉까지 갈 수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그분들의 안내를 따라 아내와 다소곳 손을 잡고 올라갔는데, 처음엔 짧은 대나무 숲길이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가파른 산길로 이어졌습니다.
신혼여행의 허니문이 끝나면 남자와 여자의 본색이 드러난다 하듯이, 처음 두 손을 잡고 산을 오르던 나와 아내도 이내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반부터 배가 고프다고 하소연하는 아내에게 올라가자고 다그친 까닭입니다. 아내는 중간중간에 도저히 못 올라간다고 으름장을 놨고, 그때마다 나는 끝장을 봐야 한다며, 뒤에서 아내를 밀고 또 앞에서 당기며 올라갔습니다. 그런 힘겨운 모습은 산 정상까지 오르는 2시간 내내 계속 됐죠.
그래도 아내는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렇게 배고파 하고, 힘들어 하면서도 정상까지 끝끝내 참고 올라가줬으니 말예요. 그것이 결혼 13주년을 맞이하기까지의 지난 날 결혼생활이지 않나 싶습니다. 중간에 구정봉까지 오를 때까지 인기척이 없어서 두려움도 밀려왔지만, 때마침 만난 순례객들을 통해 새 힘을 얻게 되었고, 이윽고 환희대에 올라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그 뒤 곧장 해발 723m의 표지석이 있는 연대봉에 올라섰죠.
어찌 보면 서울에서 살 때 올라갔던 남한산성 자락도 쉬운 길목은 아니었는데, 이번에 오른 천관산 정상은 더욱 가파르고 험난했습니다. 그래도 지리산(智異山)과 내장산(內藏山)과 월출산(月出山)과 변산(邊山)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천관산을 올랐으니 뿌듯했고, 아름다운 억새꽃 자태까지 만끽할 수 있었으니 흐뭇했습니다. 결혼생활이 그렇게 힘들고 어려워도 그런 묘미 때문에 아등바등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특별히 사방팔방이 터진 환희대에 당도했을 때엔 저 멀리 동쪽과 남쪽으로 남해바다가 펼쳐졌고, 북쪽으로는 월출산에서부터 제암산 그리고 팔영산에 이르기까지 영암, 강진, 장흥, 보성, 고흥 등 남도 일대의 산들이 모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옛날 옥정봉(玉井峰)이라 불리던 연대봉은 고려 의종 때 봉화대를 설치했던 곳이라고 하는데, 날씨가 좋을 때면 저 멀리 제주도 한라산까지 눈에 들어온다고 하죠.
천관산 자락을 내려오는 그 길목도 지치기는 마찬가지였죠. 그래도 왕복 3시간 반 정도 걸린 우리 부부의 이번 산행은 앞으로의 결혼생활에 좋은 묘약이 될 것 같았습니다. 우리 부부의 결혼생활이라야 목회생활이 전부를 차지하는데, 서울에서 개척교회를 섬길 때도 남한산성을 오르는 길목처럼 험난했습니다.
목포에서 작은 교회를 섬기기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녹녹치 않습니다. 그래도 좋은 교우들과 마음씨 좋은 이웃들을 만나서 좋고, 무엇보다도 함께 산을 오르듯 결혼생활을 헤쳐나가는 영원한 동반자가 있어서 더욱 든든합니다.
나와 아내는 그 산을 내려오며 다짐했습니다. 앞으로 2년 동안 알콩달콩 더욱 성실하고 신실하게 살아, 구리거울처럼 맑고 빛남이 깨어지지 않을 만큼 더 단단한 과정을 거치겠다고요. 그리고 결혼 15주년을 맞이했을 때는 정말로 멋진 보석 하나 씩을 끼워주기로 말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