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국무총리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국민을 호도하고 사실을 왜곡한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황교안 총리는 현행 검정교과서가 북한의 반인륜적 군사도발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교육부의 집필 기준에 따르면, 남북관계에 대해 군사도발보다는 평화·협력에 주안점을 두고 집필하도록 하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황 총리는 박근혜 정부(교육부)의 집필 기준에 따라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의 내용을 비판한 셈이다.
북한 도발 은폐? 집필 기준 따랐는데...황교안 총리는 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역사교과서 국정화 기자회견에서 "어떤 교과서에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 도발 사실이 빠져있다"면서 "남북관계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줘야 할 역사교과서에 북한의 군사도발과 그에 따른 우리 국민들의 희생은 최소한도로만 서술함으로써 북한의 침략야욕을 은폐·희석시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현행 검정교과서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8월 검정을 통과했다. 이는 현행 검정교과서가 정부의 집필 기준에 따랐다는 뜻이다.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는 앞서 2011년 12월 30일 한국사교과서 집필 기준을 확정해 발표했다. 향후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국사편찬위원회가 공동연구진을 통해 초안을 마련했고, 교육부가 이를 검토한 후 확정했다.
교육부는 당시 보도자료에서 "이번에 개발된 집필기준을 통하여 교과서 집필자나 발행사들이 학생들에게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과 올바른 역사관을 고취할 수 있는 교과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집필 기준을 살펴보면, 교육부는 "북한사회의 변화와 오늘날의 실상을 살펴보고, 남북한 사이에서 전개된 화해와 협력을 위한 노력을 파악한다"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도발 등으로 남북 간의 갈등이 반복되었으나, 통일을 위한 남북한 당국 간의 평화체제 구축 협상과 민간 부문의 교류·협력 노력이 꾸준히 진행되었음에 유의한다"고 밝혔다.
부천여고 역사교사인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정부는 지금껏 교육부의 집필 기준에 따라 쓰인 교과서를 지속적으로 비판하며 국정화의 명분으로 삼았다. 이젠 국무총리까지 나서 국민을 호도하니 당황스럽다"라고 말했다.
본문에 눈감고 보조자료 뒤진 총리... "침소봉대"
황교안 총리는 두산동아 <한국사> 교과서가 "6.25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 남북한 간에 많은 충돌이 있었다"라고 기술한 부분을 두고, "남북 간 38선의 잦은 충돌이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인 것처럼 교묘하게 기술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황교안 총리가 지적한 부분은 이 교과서의 보조 자료다. 본문에서 전쟁은 북한의 남침에서 시작됐다고 명시하고 있다. "북한은 중국에게 전쟁 지원 약속을 받아내고" "김일성은 소련을 방문하여 스탈린에게 무력 통일을 위한 군사적 지원을 약속받았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은 38도선 전역에서 전면적인 공격을 시작하였다"라고 기술돼 있다.
이 교과서의 대표집필자인 왕현종 연세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3일 오후 <오마이뉴스>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본문에서 6.25 전쟁 발발 과정을 충분히 서술했다. 학습자료 제시된 부분은 보조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 부분만 끄집어 내서 침소봉대하는 것은 잘못됐다"라고 비판했다.
황교안 총리는 또한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으로, 북한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수립으로 기술된 역사교과서가 있다"면서 "대한민국은 마치 국가가 아니라 정부단체가 조직된 것처럼 의미를 축소하는 반면, 북한은 '정권수립'도 아닌 '국가 수립'으로 건국의 의미를 크게 부여해 오히려 북한에 국가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의미를 왜곡 전달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서술을 비판한 황교안 총리의 발언은 헌법 정신과 배치된다.
무엇보다 교육부의 검정기준 첫 번째가 헌법 정신 반영 여부다. 2011년 8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내놓은 '초·중등학교 검정 교과용도서 편찬상의 유의점 및 검정기준'의 공통 기준의 첫 머리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왜곡·비방하는 내용이 있는가'이다.
기자회견 뒤 질의응답에서 이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교육부는 한발 물러섰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무총리가 그 부분을 인용한 것은 지금 현재 역사교과서의 문제점을 좀 적시하기 위한 수단"이라면서 "전문가들, 한국사를 (연구)하신 분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