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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장석> 겉표지
<월장석>겉표지 ⓒ 동서문화사
최초의 추리소설은 에드거 앨런 포가 1841년에 발표한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 소설은 전세계를 통틀어서 발표된 최초의 추리소설이다.

최초의 추리소설치고는 상당히 잔인한 살인사건이 발생하지만, 포는 이 작품을 필두로 오귀스트 뒤팽이라는 괴짜 탐정이 활약하는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한다. 그렇게 보면 포는 최초의 추리소설과 최초의 탐정을 동시에 만들어낸 셈이다.

반면에 영국의 작가 윌키 콜린스가 1868년에 발표한 <월장석>은 '영국최초의 추리소설'로 일컬어진다. <황무지>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토머스 엘리엇(T.S.Eliot)은 <월장석>을 가리켜서 '영국 최초의 추리소설이자 가장 위대한 추리소설'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토머스 엘리엇이 이렇게 극찬을 한 데에는 <월장석>의 독특한 전개방식과 짜임새있는 구성이 큰 몫을 했을 테지만, 작품의 긴 분량도 나름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국내에 번역출간된 <월장석>의 분량은 약 700 페이지에 육박한다. 소설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길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추리문학을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이렇게 긴 작품을 선호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작품의 제목인 '월장석(月長石)'은 6월의 탄생석이다. 동시에 작품 속에서는 인도에서 전설처럼 전해져오는 보물이기도 하다. 수 백년 전부터 이 보석은 네 개의 손을 가진 힌두신 석상의 이마에 박혀 있었다고 한다. 그 보석에서 나오는 빛이, 달이 차고 기우는 것에 따라서 밝기가 변한다고 해서 월장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인도의 전설 속 보석이 제목인 만큼, 작품의 배경도 인도와 연관되어 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하던 18세기 말, 영국군대는 인도 남부의 도시 '세링가파탐'을 공격해서 함락시킨다. 그 과정에서 한 영국군 장교가 힌두교 사원에서 보관 중이던 월장석을 약탈한다. 그 장교를 보고 한 인도인은 '월장석이 당신과 당신의 자손들에게 재난을 가져다 줄 것이다'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소유자에게 재앙을 가져오는 보석

<월장석>의 시작은 그로부터 약 50년 뒤인 1848년이다. 월장석을 약탈한 그 장교는 세월이 흘러서 영국으로 돌아오고, '자신이 사망할 경우, 월장석을 조카인 레이첼에게 선물하라'는 내용의 유서를 작성하게 된다. 이 장교는 영국에 돌아와서도 친척 및 친구들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그 이유가 도깨비 같은 보석을 영국으로 가져왔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레이첼 집안은 요크셔의 저택에서 살고 있다. 장교가 사망하자 월장석은 레이첼의 소유가 된다. 엄청난 보석을 소유하게 된 레이첼의 기쁨은 채 하루가 가지 못한다. 선물을 받은 그날 밤, 레이첼이 자신의 방에 보관해 두었던 월장석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

보석을 잃어버린 레이첼은 히스테리 상태에 빠져들고, 당일 집안에 있던 손님과 하인들은 입을 모아서 외부인이 집에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한다. 즉 보석은 집안 내부인이 가져갔다는 이야기.

워낙 비싸고 귀한 보석이라서, 사건의 해결을 위해 런던에서 베테랑 수사관이 요크셔로 내려오게 된다. 그래도 사건 수사는 큰 진전이 없다. 오히려 또다른 비극이 발생할 뿐이다. 이렇게 시작된 도난사건은 해결되기까지 약 1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누가 어떤 이유로 이 저주받은 보석을 가져갔을까?

빅토리아 시대 영국 신분사회의 풍경

이 작품이 독특한 이유 중 하나는 편지형식, 즉 서간체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어떻게 보면 일기형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건 관계자 7명이 돌아가면서 각자 자신의 시점으로 바라본 사건과 배경 등을 차례로 나열하고 있다. 사건 관계자의 성별과 신분, 연령도 모두 제각각이다.

이렇게 시점이 계속해서 변한다는 점이 익숙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작품에 몰입하게 만드는 하나의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시점에서 묘사하기에 사건과 등장인물이 그만큼 입체적이면서도 세밀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또한 18세기 영국와 인도의 관계 및 영국이 바라보는 인도의 문화 등도 함께 알 수 있다. 영국의 인도지배는 이후 다른 추리작가들에게도 상상력을 제공해주는 배경이 된다. 코난 도일은 <네 개의 서명>에서 인도의 세포이항쟁을 묘사하고 있다. 얼 데어 비거스의 <커튼 뒤의 비밀>에서 명탐정 찰리 첸은 인도 페샤와르 지방에서 사라진 영국군 장교 부인의 정체를 추적한다.

<월장석>에서는 뛰어난 한 명의 탐정이 활약하지는 않는다. 하긴 명탐정이 등장한다면 도난사건 수사에 1년이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월장석>에서는 사건관계자들의 서로다른 입장과 해석이 모이고 모여서 대단원을 향해 나아간다.

동시에 빅토리아 시대 신분사회의 관습과 문화 등도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을 담았기에 약 700 페이지 가량의 추리소설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토머스 엘리엇이 이 작품에 최고의 찬사를 보낸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월장석> 윌리엄 윌키 콜린스 지음 / 강봉식 옮김. 동서문화사 펴냄.



월장석

월키 콜린즈 지음, 강봉식 옮김,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2003)


#월장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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