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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헝그리(Hungry)하게 키우지 못한 50대 학부모입니다. 삶의 목표를 잡지 못해 표류하는 아이와, 은퇴 후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된 저의 처지는 일응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먼 이국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문제와 베이비 부머들의 2막 인생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기자 말

큰애가 만든 요리 -1학기에는 기본요리 실습을 한다
큰애가 만든 요리-1학기에는 기본요리 실습을 한다 ⓒ 정성화

1학기가 끝나고 들은 큰애의 고백에 의하면 나의 이러한 우려는 불행하게도 정확한 것이었다.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고백담을 나는 1학기가 끝난 후에 들을 수 있었다.

"개학 첫날 오리엔테이션에 갔는데,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어. 그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지. 일부 알아듣는 내용도 있었지만 그건 호주생활에서 유의할 사항 등 일반적인 내용이고, 강의 준비물 같이 수업에 필요한 전문적인 용어는 거의 알아 들을 수 없었어. 학원에서 같이 공부했던 학생이 6~8명 같이 입학했는데, 막상 물어 보려고 하니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어. 나 혼자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준비물도 제대로 못 챙겨 가고…. 나중에 같은 반에 있는 한국인 학생을 겨우 만나서 물어보기도 하고…."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윌리엄 앵글리스의 쉐프 양성 교육과정은 오후 이론강의, 다음날 오전 실습 그리고 중간중간 이론과 실습 테스트가 반복되는 형태다. 이중에서 실습은 겨우겨우 눈치껏 따라하며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론강의였다.

나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프리젠테이션을 많이 한다. 파워포인트 화면을 띄워 놓고 중요한 내용만 설명하면서 다이내믹하게 진행하는 게 보통인데, 큰애는 그 속도를 따라 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강의 내용은 잘 알아 들을 수 없고, 화면은 절반쯤 읽으면 다음으로 넘어 가버리는 강의를 들으면서 큰애는 점점 지쳤다고 한다. 같이 입학한 외국인 학생 둘은 벌써 학교를 그만뒀고….

그러다가 3주차에 접어 든 어느 날, 그날 따라 강의 듣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큰애가 교수에게 몸이 아파서 집에 가야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교수가 돌직구를 날렸다.

"너 수업시간 내내 휴대전화 썼지? 내가 모를 것 같나? 게임 했지?"

큰애는 그날도 파워포인트 화면을 따라가다가 포기하고, 지루한 수업시간을 휴대전화를 보면서 대충 때웠는데, 휴대전화를 보면서 대충 때웠는데 교수가 그걸 지적한 모양이었다. 큰애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서 대학에 다닐 때 자신이 했던 잘못을 다시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진실로 위기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만일 이 학교를 포기하면 비자가 취소되고 그러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잖아. 한국에서 다니던 대학은 이미 자퇴했고, 그 이후의 일은 상상하기도 싫었어."

막다른 골목에서 다행이 큰애는 강의에 임하는 자세를 바꾸었다고 한다.

"알든 모르든 강의를 집중해서 듣고, 잘 모르는 내용은 도서관에 있는 '부교재(Learning Support)'를 참조했어. 실습에 필요한 내용은 일단 한글로 메모하고, 모르는 내용은 현지인 학생을 한 명 사귀어서 그 친구에게 물어 봤지."

그렇게 한 학기를 버텨낸 것이다. 매주 실시하는 테스트에서 처음엔 겨우 통과하는 'C' 수준이었는데, 1학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A'를 받았다고 한다.

1학기 마지막 주에 스위스 출신 쉐프가 큰애를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도 처음에는 영어를 잘 못했는데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해줘서 정말 고맙다."

이 말에 큰애가 받은 감동의 크기를 나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아마 큰애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든 상황에 직면했을 때 항상 힘이 돼줄 수 있는 말 한마디였을 것이다. 1학기가 끝난 후 달콤한 방학을 즐기고 있던 큰애로부터 이 말은 듣고는, 큰애가 진정한 스승을 만난 것 같아서, 뭘 이뤄낸다는 것에서 오는 희열을 알게 된 것 같아서 나도 먹먹해진 가슴을 저미며 한동안 앉아 있었다.

어려움을 참아낼 수 있는 것, 철이 들었다는 것

윌리엄 앵글리스 강사진 -학생만큼이나 강사들도 다국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윌리엄 앵글리스 강사진-학생만큼이나 강사들도 다국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 정성화

내가 어렸을 때 동네 어른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철이 들었다는 것은 어려움을 참아낼 수 있는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참고 뭔가를 이룬 경험을 한 사람은 철이 들었다고 할 수 있다."

내 기억으로는 윌리엄 앵글리스에서의 1학년 1학기 교육과정은 큰애가 참고 뭘 이룬 첫 번째 경험으로 보인다. 물론 대학 입학 허가를 받기 위해 어학원에서 공부한 시간도 힘들긴 했겠지만, 이 정도의 위기의식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탈락의 공포를 이겨낸 경험은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 번 견뎌냈으니 앞으로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 섞인 기대를 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러일전쟁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양측 군대가 만주에서 포격전과 백병전을 벌였고, 막대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양측 피해 상황을 보면 일본군이 더 심했고, 러시아군은 상대적으로 우세한 상황이었다. 차이점은 지휘관이다. 전투상황이 이렇게 난전으로 진행되면 지휘관은 할 일이 별로 없다고 한다.

일본군 지휘관은 포탄이 날아 다니는 전장에서 수통에 담아온 술을 마시면서 그냥 무심히 있었고, 러시아군 지휘관은 아군의 피해에 괴로워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겁을 냈던가. 소모전이 끝없이 이어지자 러시아 군대는 우세한 전장에서 괴멸 직전의 일본군을 버려두고 후퇴한다. 후퇴하는 러시아군을 일본군이 추격해 러시아 군대가 주둔하던 지역을 점령하고, 급하게 후퇴하면서 버려두고 간 군수물자까지 노획한다.

결과적으로 일본군이 승리했다. 그 배경에는 인명을 경시하는 일본군 특유의 문화가 있다. 중국 천진에 주둔하던 러시아군을 일본군이 공격할 때의 전투상황을 보면 일본군의 인명경시 풍조가 좀더 적나라하게 보인다.

기관총으로 방어되는 러시아군 콘크리트 벙커 요새를 향해 일본군 지휘관은 무조건 돌격을 외쳤다. 소총으로 무장한 일본 군인들이 아무리 돌격을 해도 기관총 앞에서는 추풍낙엽과 같이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일본군 지휘관은 계속해서 본국에 보충병을 요청하고 무의미한 살육이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일방적인 학살을 중단시킨 것은 일본 본토 해안방어를 위해 설치돼 있던 해안포였다. 그나마 깨어있던 중간 간부가 건의를 해서, 해안포를 뜯어 일본에서 배로 싣고 오고, 해안포를 설치하기 위해 타설한 콘크리트가 굳은 후, 그 해안포가 러시아군 벙커를 파괴할 때까지 불쌍한 수많은 하급병사들은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이야기가 좀 빗나갔지만 살아 가면서 고난이라고 하는 십자포화를 그냥 참고, 견뎌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가 종종 있다. 뾰족한 해결 수단이 없으므로 그냥 참으면서 상황이 반전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 자리를 벗어나 포기하면 우선은 편하지만 훨씬 악화된 상황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

큰애도 그러한 상황에서는 그냥 버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난전이 벌어지는 전쟁터에서 어떻게 해볼 수단을 가지지 못한 일본군 지휘관처럼 이럴 때는 그냥 견뎌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불쌍한 일본군 병사의 살육을 중지시켜줬던 해안포와 같은 것이 나타난다.

같이 공부하는 학생, 학교의 한국인 써포터 등 주변에 있는 도움의 손길을 최대한 이용하여 버티다 보면 어딘가에서 해결책이 나온다는 것을 나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고난이라는 펀치에 맷집이 생기면 그 다음 고난도 견딜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체력이 길러진다. 큰애는 이제 한 번 그런 경험을 한 것이다.


#멜버른 유학#쉐프#청년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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