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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7일 오전 8시 21분]

한국, 일본, 미국 세 나라의 관계는 기묘하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겠다는 듯 다툰다. 미국은 마치 '누가 더 예쁘냐'고 묻는 자식들을 달래듯 "둘 다 소중한 우방"이라고 말한다.

한 나라의 '애정'을 얻기 위해 두 나라가 아귀다툼을 벌이는 모습은 부모와 자식 같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이 둘의 경쟁관계를 즐기며 영리하게 이익을 챙겨왔다는 점에서, '부모' 비유는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대놓고 차별해 왔다.

한 나라는 미국과 전세계를 공격했던 전범국이었으나, 멀쩡히 통일된 국가로 살아남았다. 반면에 그 나라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피해자가 둘로 나뉘어 고통받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그 반쪽 나라를 임시로 통치하면서 친일파 지도자들을 기용한 탓에, 그 곳에서는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역사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앞의 두 나라 중 하나는 언제나 더 다급하고, 언제나 더 필사적이다. 미국이 다른 우방을 편애해 왔다는 사실을 무의식 가운데 알고 있기 때문일까? 상대에게 충성심을 입증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목숨을 내맡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나라는 전쟁이 날 때 제 나라 군대를 움직일 권한을 미국에 넘겨주었다.

"미국이 가는 곳이면 지옥도 마다하지 않는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보수 단체가 광화문에 내걸었던 현수막 표어다. 자칭 '애국세력'이 외쳤던 이 구호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호구' 취급 받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제 나라 군대가 타국 지휘를 받는 것을 '자주국방'이라 부르고, 남의 나라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것을 '애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에 정상적인 외교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방력 세계 7위의 '국제 호구'

 2008년 4월 18일(현지시각) 캠프 데이비드 방문중 골프카트에 함께 올라 손을 흔들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
2008년 4월 18일(현지시각) 캠프 데이비드 방문중 골프카트에 함께 올라 손을 흔들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 ⓒ 청와대 제공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국군 지휘권을 미국에 넘긴 이래로 한국의 대통령은 단 한 차례도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남한이 북한보다 경제력과 국방비 지출 모두 뒤처졌던 1950년대도 그랬고, 경제력이 북한의 약 43배(GNI 기준)에, 국방비 지출은 44배가 된 지금도 그러하다.

몸집이 상대보다 4배도 아니고, 40배가 넘는 거구로 자랐는데도, '무섭다'며 남의 나라 바짓가랑이 잡아당기는 상황은 아무리 봐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미국 정부의 눈에도 기괴해 보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시 대통령이 나서서 "한국은 전시 작전권을 행사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안심시키며 반환 날짜까지 잡았는데도, 시간이 다가오자 대통령과 전현직 장성들이 읍소하며 막무가내로 버텼다.

2009년에 이명박 대통령은 남한과 북한의 군사력을 객관적으로 비교분석할 것을 지시했다. 이렇게 나온 보고서는 남한이 현역 군인만으로 북한과의 전면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미군 개입 없이, 예비군도 동원하지 않은 채 복무 중인 병력만으로 북한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보고를 받고도 이명박은 전작권 환수를 2015년 말까지 연기해 달라고 미국에 요청한다.

<글로벌 파이어 파워>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국방력은 세계 7위로, 36위인 북한은 물론 독일이나 일본보다도 앞선다. 한국보다 열위에 있는 일본조차 자위대의 전시작전권을 스스로 행사한다. 제 나라 군대를 제 나라가 지휘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 막대한 돈을 쓰면서도, 한국군은 입만 열면 '북한과 싸우면 진다'고 노래를 한다. 정부 보고서, 미국, 3자의 객관적 분석도 모두 한국군이 우위를 말하는데도 말이다. 그러면서도 남북 관계가 틀어질 때마다 호기롭게 '전쟁 불사'를 외친다. 전시 군 작전권도 없고, 북한과 싸우면 패한다는 나라가 남의 이불 속에 숨어 웬 포효 소리는 그리 요란할까?

만일 독자가 미국 정부라면, 이런 한국을 '호구' 취급하겠는가, 동등한 대화 상대로 존중하겠는가? 입장을 바꿔보면 한국이 퍼주면서도 무시 당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위안부 한일합의' 실책과 '한국형 전투기 사업' 좌절 역시 같은 '호구 외교'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퍼주면서도 조롱 당해 온 한국

두 손 맞잡은 한·미 정상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두 손 맞잡은 한·미 정상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은 어땠는가. 후보 시절부터 '전작권 환수'는 그의 일관된 대선 공약이었다. 하지만 '원칙'을 유달리 강조하던 박 대통령은 취임 이듬해인 2014년에 미국 정부에 전작권을 무기한 연기해 달라고 부탁한다.

미국은 '더 이상 연기는 없다'고 거듭 강조하다가, 결국 한국 정부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인다. 전작권을 유지하는 것이 한국을 '중국 견제'의 전략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그해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무기를 사 주는 것으로 보답했다.

덕분에 한국은 2014년 전세계 최대의 무기 수입국이 되었다. 심지어 전쟁 중인 이라크보다도 많은 무기를 구입했다. 2014년 한국은 9조 원이 넘는 무기를 외국에서 사들였는데, 그중 8조 원어치 이상을 미국에서 사 왔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수입해 온 무기 중 무려 89%가 미국산이었다.

한국은 18조 원이 투입되는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을 진행하면서 미국에 막대한 이익을 안겼다. 대당 1200억 원에 달하는 고가의 F-35A 전투기 40대를 구매하는 대가로, 한국은 레이더 핵심 기술을 이전 받기로 했다. 하지만 미국은 약속했던 기술 이전을 거부함으로써 전투기 사업 자체가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일본 역시 미국으로부터 같은 기종 42대를 구매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완제품을 인도받기로 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4대를 제외한 38대를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기로 했다. 면허생산권을 포함해, 한국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구매한 것이다.

미국이 계약을 위반한 것이든, 한국이 협상을 잘못한 것이든, 한국군과 정부가 '호구' 취급 받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제 나라 안보까지 미국에 맡긴 나라가 유럽의 입찰 경쟁자를 선정할 배짱이 없다는 사실을 미국이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줏대 상실'은 국제 교역에서 한국을 '호갱'으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위안부 한일합의'에서 보듯, 한국 정부의 무능은 이제 국민들의 주권과 존엄성까지도 무시당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애견' 반기문

한국 정부가 저지른 아둔한 짓은 수를 헤아릴 수 없지만, 그중 가장 어리석은 행동은 '북한 무시'다. 경제력이 쇠락해 가는 미국은 일본을 '아바타' 삼아 동아시아의 패권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일본은 '북한의 위협'을 구실 삼아 재무장을 서두르고,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남한을 지킨다'는 구실로 한반도에 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와 전술핵 등을 배치하고 싶어한다.

물론 미-일 연합의 궁극적 목표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이다. 한국 땅을 중국을 견제하는 '완충지대'로 만들어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미국 정부가 한일 과거사 문제를 빨리 매듭지으라고 종용하고, 아시아의 '민족주의'를 비난하고, 위안부 한일합의를 두 손 들어 환영한 까닭이 여기 있다.

국내에서는 존경, 세계적으로는 경멸 반기문 총장에 대한 해외 언론과 전문가들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포린폴리시>는 "반기문, 잠이나 주무시라"며 사퇴할 것을 요구했고, <가디언>은 그를 "투명인간"으로 소개하면서, 유엔 직원들 사이에서 그의 조직 운영 능력을 "한심"하고 "창피하다"고 평가한 내부 문건에 대해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반기문이 '미국의 푸들'이지만, 미국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고 썼다.
국내에서는 존경, 세계적으로는 경멸반기문 총장에 대한 해외 언론과 전문가들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포린폴리시>는 "반기문, 잠이나 주무시라"며 사퇴할 것을 요구했고, <가디언>은 그를 "투명인간"으로 소개하면서, 유엔 직원들 사이에서 그의 조직 운영 능력을 "한심"하고 "창피하다"고 평가한 내부 문건에 대해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반기문이 '미국의 푸들'이지만, 미국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고 썼다. ⓒ 강인규

최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까지 나서서 한일 합의를 지지한 데 실망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비록 국적은 한국이지만, 그는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미국의" 유엔 사무총장 역할을 하기 위해 선출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전임 사무총장이었던 코피 아난이 미국 입장에 반대하고 사사건건 충돌했던 탓에, 미국은 더 이상 자신을 피곤하지 않게 할 '무색무취'의 사무총장을 원했다. 그 적임자가 한국의 반기문이었다. 반기문이 '사상 최악의 유엔 사무총장', '그의 끔찍한 언어능력보다 더 끔찍한 정책 부재' 등의 가혹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재선에 성공한 까닭이 여기 있다.

한국 정부의 전폭적 지지 속에서 탄생한 사무총장이 "미국의 애견"으로 비판 받는 상황은 반 총장 개인의 자질 못지 않게 한국을 둘러싼 상황 또한 녹록지 않음을 말해준다.

남북관계 파탄은 자해 행위

현재 한국이 강대국 속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 카드는 북한뿐이다. 중국이 북한을 적절히 활용해 발언권을 키워 온 반면, 한국 정부는 남북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감으로써 주변국의 무시를 자초했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북핵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화두를 선점하려고 애쓴 까닭은, 이것만이 강대국에 이용당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며 줄곧 요구해 온 것은 미국과의 상호불가침 조약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핵 문제가 해결되어야 대화할 수 있다며 북한을 의도적으로 외면해 왔다. 북한은 이런 무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높은 강도의 카드를 꺼내고, 이는 북한을 더 고립시키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어 왔다.

세계를 경악시킨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성공'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북한은 불운한 미궁 속에 갇혀 있다. 평상시 잊혔다가 뭔가 일을 터뜨려 주목 받고, 대화를 진전시키지 못한 채 다시 잊히고, 또 다시 일을 터뜨리는 것이다. 이번 '수소폭탄' 논란을 통해 북한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대화 상대로 주목해 달라'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의도적 무시가 오히려 위협을 키워왔다는 점에서, 이제 한국이 직접 나서야 한다.

미국의 외면은 북한을 믿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위협'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사악한 나라여서가 아니라, 그 편이 미국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에게 북한은 혐오스러우면서도 요긴한 존재인 셈이다. 북한과의 관계를 미국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삼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한국의 우방이지만, 미국의 이익이 곧 한국의 이익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참고기사: "전쟁광, 미친개, 정신병자... 그게 북한 아냐?"). '미국이 가는 곳이면 지옥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어리석은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 우리는 정말 지옥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한국이 충돌하는 국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북한과 평화롭게 공존하고,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은 무려 37조의 세금을 국방예산으로 썼다. 1981년 국방예산이 2조 원이었으니, 한 세대를 지나는 사이 무려 2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통일은 소중한 세금을 세금 본연의 용도로 쓸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국민들의 생계를 보장함으로써 '헬조선'의 악몽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 말이다. 통일이 인구 1억 가까운 자족적 내수시장을 만들어, 한계에 처한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마련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말이다.


#한일합의#반기문#외교#박근혜#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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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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