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구먼, 한잔 어때?" "좋지, 종일 너무 시달려서 그렇지 않아도 으슬으슬한데, 우선 몸이라도 좀 녹이자구." 겨울 추위가 맹위를 떨칠 즈음이면, 이른바 주당들은 퇴근길 한잔이 더욱 그리워진다. 알코올이 체내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이내 몸이 달아오르고 취기가 돌게 마련이다. 그러나 술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열기로 '훈훈해진' 몸이 얼마 가지 않아 빠른 속도로 차갑게 식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럼에도 일단 추위로 언 몸을 녹일 수 있다는 '위안' 혹은 '핑계'를 앞세워 주점을 찾는다.
알코올은 상당히 강력한 혈관 확장 작용을 하는 약물이다. 술을 마시면 얼굴이 붉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알코올의 혈관확장 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술로 인해 달아오른 열기는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기온이 낮을 경우 인체는 피부를 통해 빠른 속도로 열을 뺏기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마땅히 체온을 올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피부에 소름 등을 돋게 함으로써 체온의 방출을 최대한 억제한다. 그런데 반대로 열기를 뺏긴다면 체온은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알코올의 혈관확장에 대한 과학적 신뢰가 부족했던 18세기까지만 해도 서구의 일부 고산지대에서는 구조대들이 술병을 준비하고 조난자 수색에 나서곤 했다. 구조견의 목에 술병을 매달고, 눈 속에 파묻힌 사람을 찾는 풍경이 드물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술로 인한 체온 상승은 잠시뿐, 결과적으로 나쁜 영향이 더 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구조대들은 더 이상 술병을 동반하지 않게 됐다.
항온동물인 인간의 체온은 항상 일정한 범위 내에 있어야 한다. 바로 섭씨 36.5~37.5도다. 이보다 1, 2도만 높거나 낮아도 인체에는 치명적인 타격이 올 수 있다. 겨울철 조난자들의 직접적인 사인 가운데는 저체온증이 주요 요인인 경우가 꽤 많다. 저체온증의 의학적 기준은 체온이 35도 이하로 떨어지는 것이다.
가벼운 저체온증은 오들오들 떨면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게 대표적인 증세다. 그러나 중등도 이상으로 증세가 심해지면, 더 이상 떨지도 않는다. 대신 제 정신이 아니게 된다. 또 중등도 이상의 저체온증으로 인해 사망하는 조난자의 25~50%에서는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옷 벗어 던지기'현상이 동반된다. 체온이 뚝 떨어졌는데, 옷을 여미기는커녕 입은 옷을 벗어 던지는 것이다. 뇌의 온도중추인 시상하부가 오작동을 하거나, 근육이 수축력을 잃어 체온 방출을 억제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추정되지만 원인이 분명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체온은 외기의 온도가 떨어지는 겨울철과 수은주가 치솟는 한여름에 아무래도 제대로 관리하기가 어렵다. 또 특별한 질병이 없는 사람이라도 잠이 부족하거나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은 약간 낮은 체온을 보일 확률이 높다. 이런 사람들은 겨울철 똑같은 한기에 노출되더라도 추위를 더 탈 수 밖에 없다.
체온은 또 심리 상태의 변화에 따라 오를 수도 있다. 흔히 "누구누구는 걸핏하면 열을 낸다", 혹은 "아무개는 사소한 일에도 핏대를 올리곤 한다"는 말을 하는데, 실제로 흥분하면 체온이 높아진다. 그러나 쉽게 열 받거나 흥분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추위에 강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흥분해 후끈 몸이 달아올랐다면 추위에 이내 그 열기를 뺏길 수 있는 탓이다. 흥분이 식으면, 오히려 화를 잘 안 내는 사람보다 체온이 더 빨리 내려갈 수 있다. 언 발에 오줌을 눕는 식으로는 체온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위클리 공감(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 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 주간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