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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양조장에 술을 한 상자 주문했더니 단풍잎 한 장이 따라왔다. 술도 마시기 전에 나뭇잎 한 장으로 마음이 포근해졌다.

막걸리학교를 운영하면서 술을 이야기하다 보니 사람들이 자꾸 '어떤 막걸리가 가장 맛있냐'고 묻는다. 나는 대답을 못한다. 대답이 궁해서가 아니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이 가장 좋더냐고 던지는 질문 같아서다. 굳이 대답하자면,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술'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다시 "감미료가 없는 술은 어떤 술인가요?"라고 물어온다. 이쯤 되면 양조장 이름을 꺼내야 한다. 전통주 기법으로 빚는 프리미엄 막걸리 회사들에서는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는 술들이 제법 있는데, 계룡 장인정신 찹쌀막걸리, 홍천 만강에비친달, 함평 자희향, 강릉 방풍도가 도문대작, 남양주시 봇뜰 막걸리 등이 있다. 규모가 큰 양조장으로 국순당의 옛날 막걸리 고(古), 배상면주가의 느린마을막걸리를 꼽을 수 있다. 꿀로 감미료를 대신하는 막걸리로는 장성 사미인주, 거창 하얀술 등이 있다.  

단풍잎 딸려 술 보내는 해창주조장

 해창막걸리, 감미료가 들어있지 않아 칵테일하기 좋다.
해창막걸리, 감미료가 들어있지 않아 칵테일하기 좋다. ⓒ 허시명

주전자로 막걸리를 받으러 가던 동네 양조장 중에서 감미료를 버린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나쁜 남자' 같은 기질을 지닌 태인의 송명섭 막걸리가 무감미료로 마니아층을 많이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커밍아웃하듯이 무감미료를 선언한 대열 속에 단풍잎을 딸려 보낸 해창주조장이 들어왔다.    

감미료가 안 들어간 해창 막걸리는 맛이 덤덤하고 담백하다. 단맛이 고스란히 빠지니, 마치 물밑의 고요함과 같은 적막함이 느껴진다. 아주 섬세하게 그 향과 맛을 좇아가 보면 고소한 맛이 미끌리듯이 느껴지고, '쌉쓸한' 맛이 혀 끝에 물린다. 설탕보다 200배 강한 단맛을 지니고 있다는 아스파탐이나 스테비오사이드가 들어간 맛은, 입안에서 엷은 듯하면서도 짜릿하게 느껴지는 단맛의 질감이 입안에 오래 남는다.

 해창주조장의 안주인이 술을 빚고 있다.
해창주조장의 안주인이 술을 빚고 있다. ⓒ 허시명

쌀의 전분에서 넘어온 단맛은 입안에서 두툼하고 무겁게 느껴지지만, 삼키고 나면 사라져버린다. 감미료의 단맛은 미세하지만 뒷끝이 남고, 쌀의 단맛은 뭉툭하지만 뒷끝이 없다. 내가 감미료가 들어간 술을 높이 치지 않는 이유는 원재료의 진솔한 맛을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왜 감미료를 안 넣게 됐어요?" 주조장(전라도에서는 양조장보다는 주조장이라고 상호 등록한 곳이 많다)의 안주인에게 물었다. "찾아오는 손님들이 자꾸 '감미료 안 넣으면 안 돼요?'라고 묻기도 하고요, 애 아빠가 단맛 도는 술을 싫어해요"라고 말한다. "감미료를 안 넣으니 손님들 반응은 어때요?" 뜻밖에 "아주 좋아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제법 많은 소비자들이 무감미료 막걸리를 바라고 있었던 셈이다. 이 주조장에서는 감미료를 안 쓰는 대신, 단맛을 올리기 위해서 찹쌀 반, 멥쌀 반 비율로 술을 빚는다고 했다.   

'감미료 넣지 말라'는 말의 함의

 해창주조장 마당의 봄.
해창주조장 마당의 봄. ⓒ 허시명

그렇다면 왜 일반 양조장들은 감미료를 넣고 물엿이나 올리고당을 넣는 것일까? 이 책임은 생산자에게만 있지 않다. 사람들은 달면 맛있고, 쓰면 맛없다고 말한다. 달면 달고, 쓰면 쓰다고 말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다. 양조업자들은 술맛이 달면 술이 좀 더 팔린다고 한다. 대체로 단 술은 술을 잘 못 마시는 이들이 좋아하고, 달지 않은 술은 관록의 주당들이 좋아한다. 술을 마시는 숫자는 주당들보다는 초보자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감미료를 넣지 말고 술을 만들라는 말은 양조장을 망가뜨릴 수도 있는 제안이 되는 셈이다.

이런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데도, 해창주조장이 무감미료 막걸리를 만들 수 있는 동력은 주조장을 찾는 손님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1월에 이 주조장을 찾은 관광객의 숫자는 127명(달력에 적어 놓은 숫자)이었다. 겨울철 주조장을 찾는 숫자로는 적지 않다. 안주인은 찾아오는 손님들과 막걸리 이야기를 나누면서 무감미료 맛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손님들도 담백한 무감미료 막걸리 맛에 쉽게 수긍하고 감동한다고 했다.

 해창주조장 마당의 여름.
해창주조장 마당의 여름. ⓒ 허시명

 해창주조장 마당의 가을.
해창주조장 마당의 가을. ⓒ 허시명

그런데 이 주조장에서는 감동할 게 또 있다. 정원이 아름답다. 주조장 문을 들어서면 감나무와 측백나무가 있고, 톱니 모양의 잎을 단 은목서는 현관을 지키고 있다. 마당에는 사계절 꽃이 핀다. 겨울에 애기동백이 피고, 2월에 수선화가 올라오면 연달아 향긋한 천리향이 핀다. 봄에 목련꽃과 영산홍이 피고, 여름에 석류꽃과 배롱나무꽃과 마로니에꽃이, 가을에는 상사화와 팔손이꽃이 피고 단풍나무가 붉게 물든다. 이끼가 깔린 야트막한 언덕에 수석을 놓아두거나 돌단을 쌓아서 변화를 주고, 마당 가운데로 뒷산의 물을 끌어들여 작은 연못을 그려뒀다.

정원이 아름답다는 것과 술맛이 좋다는 것 사이에는 아무 연관이 없어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마음은 비슷하지 않을까?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는 마음이 술을 빚는 정성으로 이어진 듯하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술의 자연스런 맛에 충실하겠다는 것으로 이어져 보인다. 그걸 증명하려고 단풍잎이 딸려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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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해창주조장#단술#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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