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차가 산으로 가고 있어."
아내가 연신 재밌다고 사진을 찍어댔다. 정말이었다. 대로변을 달리고 있는데 내비게이션에선 차가 등고선을 질주하고 있었다. 어쩐지 내비 아가씨가 조용했었다. 평소 주정차 금지 구역이니, 신호 위반 단속 지역이니 하며 끊임없이 잔소리하는데 웬일인지 얌전했었다.
2년 동안 휴가도 없이 일했으니 파업하는 모양이었다. 농담은 거기까지였다. 하필이면 명절이라고 내려온 울산에서 말썽이었다. 고향이긴 하지만 새로 개발된 구획은 영 낯설었다. 별안간 목덜미가 움츠러들며 불안해졌다.
'언제부터 고장 났던 것일까?'
'과속 카메라가 있지는 않았을까?'
우선 바보 같은 기계를 껐다. 검게 변해버린 화면과 선명하게 부각되는 엔진음. 여자친구의 쌩얼을 처음 보았을 때 같았다. 분명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약간 당황스러운 기분. 2013년 11월 16일 신차 출고 후 최초로 기본세팅 상태로 운전하게 되었다.
안내 프로그램 없이 운전대를 잡은 건 면허시험장뿐이었다. 어쩌겠는가? 감각을 믿고 가는 수밖에. 바깥 차선에 붙어 아스팔트 위 방향 기호에 따라 느릿느릿 운행했다. 와이프는 신호등에 붙은 '직진 후 좌회전' 따위를 살피고, 단속 카메라 유무를 확인했다. 이십 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오십 분 만에 왔다. 핸들을 얼마나 꽉 쥐었는지 손바닥이 얼얼했다.
'고작 내비게이션 고장 났다고 이렇게 피곤해지나?'
어른이 되고 나서 도구 의존증이 심해졌다. 몸으로 부딪히고 시간 들여가며 배우는 행위가 성가셨다. 도구를 쓰니 몸은 편한데 또 다른 안락함을 위하여 장비를 계속 구입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자발적 퇴화. 스티븐 호킹 박사가 '미래에 인간이 로봇에게 지배당하리라' 예언했는데 거짓이 아닐 수 있었다. 인류 생존의 위기감이 들 때마다 나는 '김담'을 떠올렸다.
그는 내가 아는 최고의 '길잡이'였다.
고장난 내비게이션 덕분에 '담이'가 떠올랐다
담이는 당시 3학년이었다. 그가 다녔던 P초교는 정문에서 조금만 나가면 도심과 연결되고 후문부터는 거짓말처럼 시골풍경이 펼쳐지는 반전 있는 곳이었다. 학교 뒤에는 산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산이라 부르기 애매한 언덕에 가까운 지형이었는데 꼭대기에 조선시대 봉수대가 남아 있었다. 거리도 짧아 초등학생 걸음으로 왕복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산책하기 적당한 산을 참 좋아했다.
담이도 산을 사랑했는데 방식이 아주 특별했다. 또래들이 익숙한 길로만 다닐 때 담이는 샛길이나 돌아가는 길을 일부러 찾아다녔다. 평지와 달리 산지에는 으쓱하고 숨겨진 통로가 흔했다.
더군다나 그런 장소는 눈대중으로 분간하기 어려워 몸으로 겪어야만 기억할 수 있었다. 그는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며 일대 지리에 통달한 베테랑이었다. 교실에서는 유난히 촐싹거리는 탓에 관심 요망 장난꾸러기인 줄만 알았다. 에너지 넘치는 어린이의 진가는 담장 밖에서 발휘되었다.
3월 하순, 하얀 냉이 꽃이 지천으로 피고 밭 귀퉁이에는 이른 달래가 나올 듯 말 듯한 날이었다. 산행에 나섰다. 지역 문화재 답사라는 멋진 목적으로 진행된 바람 쐬기였다. 남학생들은 봄기운을 주체 못해 멀쩡한 길을 두고 시멘트벽 위를 달렸다. 여학생들은 팔짱을 끼고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거렸다. 얼굴에 닿는 바람이 훈훈했다. 동해를 끼고 있는 도시의 특권이었다. 들뜬 마음을 추슬러보니 선두와 하위 그룹 간격이 벌어지고 있었다.
"앞에 정지! 잠깐 기다려!"
고함을 질러 앞서간 녀석들을 붙잡아 두었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믿음직한 반장 은준이를 전방으로 급파하여 위치를 지켜 달라 하였다. 후방으로 내려가 걸음이 더딘 친구들을 다독였다. 어미 닭이 병아리 몰듯 전진하니 오래지 않아 처음 출발한 대열이 갖추어졌다. 이번엔 담임이 앞에서 이끌었다. 3분쯤 걷고 있는데 은석이가 등 뒤에서 외쳤다.
"선생님, 경록이가 안 와요."
경록이가 안 오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살펴보니 동그란 안경 낀 꼬마가 진짜 없었다. 중간에 모여서 출발할 때 은석이한테 화장실 갔다 온다고 해놓고 사라졌다고 했다. 주변에 있던 애들은 경록이가 자주 소변을 보러 가는 체질이니 아무 의심도 없이 그런가 보다 했단다. 큰일이었다. 엄연히 창의적 체험활동이라는 수업시간 중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당장 교무실에 연락을 드려야 하나?'
시계를 보니 30분가량 여유가 있었다. '침착하자.' 경록이가 산비탈 쪽으로 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산비탈에는 주민들이 숲 사이로 낸 지름길이 있었다. 곤란했다. 교무실에서 지름길의 정체를 들어 알고 있었지만 경험이 없었다. 더군다나 도로를 따라가는 정식 코스가 아니었다. 학생들을 인솔하다 자칫 중간에 헤매게 되면 낭패였다. 고민하고 있는데 작대기를 짚고 서있던 김담이 나섰다.
10살 아이의 안내, 든든했다
"쌤. 제가 거기 알아요. 하나도 안 위험해요."
옆에 있던 경인이도 격하게 맞장구쳤다.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다니는데 못 갈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담이를 앞장세우고 교사는 제일 뒤로 빠졌다. 꼬리에서 낙오자가 생기면 더 위험해진다. 한 줄로 서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지름길에 들어서자 나무들이 우거져 바깥보다 훨씬 어두웠다. 바닥에는 지난가을 갈비(낙엽처럼 떨어진 솔잎)가 가득해 미끄러웠다.
"꽉 잡아요. 쌤~ 괜찮아요?"
길잡이는 조심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목소리에 제법 대장다운 위엄이 있었다. 정예 산악 703 특공연대 전역자로서 제자에게 보살핌을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잠시 뒤 언 땅이 녹으면서 질척거리는 지점이 나왔다. 선두는 이번에도 마른 부분을 찾아 안전하게 대처했다.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능숙한 태도가 제법이었다. 비탈의 중간은 경사가 심해서 부축이 필요한 경우가 생겼다. 손으로 당기고 밀다 보니 구석구석 긁히고 찔렸다. 선생은 진땀 흘리고 있는데 담이는 요리조리 장애물을 피하며 쑥쑥 나갔다.
"나무 작대기 갖고 싶은 사람~ 여기 많다~"
학급을 에스코트하는 10살짜리 대장부가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이끼 낀 바위를 넘고, 썩은 나무 밑동을 쳐가며 전진했다.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위로 갈수록 하늘을 덮고 있던 빽빽한 솔가지들이 듬성듬성해졌다. 아름드리나무가 하나둘 보이지 않더니 하늘이 조금씩 환해졌다. 희망이 보였다.
눈 밝은 형욱이가 발자국을 발견했다. 크기는 230mm 정도이고 발끝이 봉수대를 향하고 있었다. 경록이가 유력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어느새 시내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꽤 올라온 듯했다. 갑자기 담이가 앞으로 후다다닥 뛰어갔다. 곧이어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봉수대다아~ 경록이도 있다아~~"
지름길이 끝나고 운동기구 몇 개가 설치된 쉼터가 등장했다. 거기서 50m 떨어진 곳에 봉수대가 있었다. 경록이는 벤치에 다리를 꼬고 누워있었다. 꿀밤을 쥐어박고 싶었지만 당사자가 너무 태연하여 차마 실행하지 못했다. 담이는 옆에서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두 꼬맹이는 눈을 찡긋 맞추고 오후에 놀 계획을 짰다.
이제 6학년이 되었을 '김담'이 지금도 산을 돌아다니는지 모르겠다. 외부기술에 의지하지 않고 신체를 믿었던 아이. 살아있는 내비게이션이 제공한 정보는 정확했고 유용했다. 어디 길 안내 뿐이랴 춤, 연기, 운동... 몸으로 하는 모든 움직임이 개성 있고 아름다웠다. 타고난 끼라고 보기에는 삶이 유달리 부지런했다. 가꾸고 키워낸 재능이었다. 혹시 여러분이 사는 마을에도 온 사방 휘젓고 다니는 까불이들이 있다면 나무라지 말자.
언제 어디서 그 까불이들이 '내비게이션'이 되어 당신을 위기에서 구해줄지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