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꺄아악~, 여보 여보 여기 여기." 50대 후반의 주부 조아무개씨는 서울서 살다 시골에 내려온 2009년부터 매년 한해도 빼지 않고, '놀라 자빠지는' 경험을 되풀이 하고 있다. 그는 시골 생활을 정말 좋아하지만, '뱀'은 상상만으로도 몸에 소름을 돋게 한다. 어렸을 때부터 뱀이 "정말 죽도록 징그러웠다"는 그는, '예쁘게' 그려진 아동용 뱀 캐릭터에도 진저리를 친다.
조씨의 딸 김아무개씨는 곧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다. 김씨는 엄마와 달리, 뱀이 "귀엽다"고까지 한다. 특히 새까맣고 동그란 뱀의 눈이 예쁘지 않느냐고 그는 반문한다. 그렇지만 김씨도 엄마의 시골집을 방문하면, 수시로 마주치는 거미나 이런저런 벌레에는 꼼짝 못한다. "으아아아~, 여기 여기." 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골은 다 좋은데 벌레 때문에 못살겠다"고 말한다.
개구리가 겨울 잠을 깨는 시기, 뱀도 머잖아 동면을 끝내고 기어나올 즈음이다. 겨우내 다 죽어 사라져버린 듯했던 이런저런 곤충들의 등장도 임박했다. 친지의 시골집 방문이나 집밖 나들이가 아니더라도, 여기저기서 벌레와 좀 더 자주 마주쳐야 하는 계절이 온 것이다.
뱀 보면 '깜짝', '공포가 유전자 각인된 탓'왜 어떤 사람은 몸서리를 칠 정도로 뱀을 혐오하고, 왜 또 어떤 사람들은 벌레를 목격하면 소리를 지르며 줄행랑을 칠까? 곤충을 포함해 뱀 등, 특정 동물을 유달리 역겹게 느끼는 사람들의 비율은 전체인구 대비 10% 안팎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다.
이와 관련, 일부 전문가들은 과거의 나쁜 기억이나 경험이 극단적인 동물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어렸을 때 벌에 쏘여 고통을 받은 적이 있다면, 벌을 기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곤충이나 뱀 등과 관련해 불쾌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시간이 지나면 그들 동물에 대해 정상적인 관념을 되찾는다는 게 정설이다. 바꿔 말해, 나쁜 경험이나 기억만으로는 벌레나 뱀에 대해 유달리 큰 공포심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최근 십수 년 간에 걸쳐 이뤄진 실험이나 조사에 따르면, 일부 동물에 대한 공포심은 선험적일 가능성이 크다. 학습이나 경험 없이 그 같은 공포심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가 주도한 한 실험 결과, 뱀이나 벌레를 유달리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자연 풍광과 뱀 벌레 등이 섞여 있는 이미지를 보여줬을 때, 뱀과 벌레를 더 빨리 식별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뱀이 죽도록 싫다는 귀촌 주부 조아무개씨도 이런 부류에 속한다. 조씨는 식구들과 밭에서 일을 하거나 동네 산을 산책할 때도 뱀을 거의 예외 없이 가장 먼저 발견하곤 한다.
뱀이 아니더라도 파충류는 비교적 인간의 애호를 받지 못하는 동물군에 속한다. 주변을 둘러 봐도 도마뱀이나 악어를 사랑스럽게 느끼는 사람은 흔치 않다. 뱀을 포함한 파충류에 대한 혐오증 혹은 공포심 등을 선험적인 것으로 설명하는 전문가들은, 인간의 조상이 가진 파충류에 대한 공포가 유전자에 각인된 탓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의 조상 격인 포유류들이 파충류의 먹이가 되던 시절 DNA에 새겨졌던 흔적을 지금도 가진 사람들이 유달리 뱀 등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뱀, 벌레 등에 대한 공포심과 혐오감은 여간해서는 치유를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학습을 통해 일정 부분 개선이 가능한 측면도 있으므로, 이들에 대한 공포심이나 혐오감에 과도하게 좌우될 일은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위클리공감(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주간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