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번 인도 여행 기간 동안 호텔이 아닌 일반 음식점에서 단 두 번 식사를 했다. 델리 첫 날 식당 웨이브스(Waves)에서 점심을 먹은 것과 마지막 날 델리의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것이 전부다. 그리고 나머지 모든 식사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했다. 그 때문에 잔타르 만타르와 하와 마할을 구경하고 나서도 점심을 먹으러 호텔로 간다. 호텔은 자이푸르 남쪽 신시가지에 있다.
핑크 시티로 알려진 자이푸르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잇는 대로가 자와할랄 네루 마그(Jawaharlal Nehru Marg)다. 이 길가에는 라자스탄 대학이 있고, 중앙공원인 람박(Rambagh), 인도학 박물관, 힌두 사원이 있다. 그리고 현대적인 건물인 월드 트레이드 파크 빌딩이 있다. 이 대형 건물 안에는 프라다, 스와롭스키, 아디다스, F&B 같은 서양의 명품삽들이 들어 있다. 점심을 먹고 난 우리는 이 대로를 따라 구시가지에 있는 시티 팰리스를 구경하러 간다.
시티 팰리스는 말 그대로 시내에 있는 궁전이다. 사와이 자이 싱 2세가 1727년 수도를 암베르성에서 자이푸르로 옮기면서 궁전, 공공건물, 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4년 후인 1731년 완성했다. 우리는 매표소가 있는 가네쉬 폴을 지나 시티 팰리스로 들어간다. 시티 팰리스는 외궁인 무바라크 마할, 내궁인 찬드라 마할, 접견실인 디완, 박물관과 갤러리, 공방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먼저 역대 왕들이 탔던 수레와 마차 전시관으로 간다. 바퀴가 네 개 달린 마차가 대부분으로 말이 끌도록 되어 있다. 마차 전시관을 보고는 디완 이 암으로 간다. 가는 길에 세 명의 악사가 물건을 팔기 위해 공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디완 이 암은 마하라자가 대중을 만나는 공식 접견소로 사바 니와스(Sabha Niwas)로 불린다. 이 건물은 현재 왕실의 보물들을 전시 보관하는 아트 갤러리로 변해 있다. 대표적인 전시물로 금관, 세밀화, 산스크리트어로 된 힌두교 경전이 있다.
디완 이 암을 나온 우리는 이제 디완 이 카스로 간다. 이곳은 사방으로 개방된 공간으로 레스토랑과 서점 등이 들어서 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게 은으로 만든 물통 항아리다. 높이가 1.6m, 무게가 340㎏, 용량이 4000ℓ나 되는 특별한 은제 항아리가 두 개나 있다. 이것은 사와이 마도 싱 2세(Sawai Madho Singh II: 1861~1922)에 의해 특별 주문된 항아리로, 그가 1901년 영국을 방문할 때 갠지스 강물을 그것에 담아 갔다고 한다. 힌두교도인 왕이 영국에 가서 그 나라 물을 먹는 게 종교적으로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바라크 마할에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바지
디완 이 카스에서 또 다른 궁전인 무바라크 마할로 가기 위해서는 라젠드라 문(Rajendra Pol)을 지나야 한다. 라젠드라는 왕을 뜻하는 라자와 최고를 뜻하는 인드라(Indra)의 합성어다. 라젠드라 문은 무바라크 마할과 함께 흰 대리석으로 지은 건축물로, 조각이 아주 정교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문 양쪽으로 코끼리 조각상이 두 마리 지키고 있다. 이 코끼리는 1931년 자이푸르의 왕자 바와니 싱(Bhawani Singh)의 탄생을 축하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문은 제복을 입은 문지기 넷이 지키고 있다. 이들은 관광객과 어울려 사진을 찍는 등 자유분방한 모습이다. 이들은 실제 문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문화관광 측면에서 인도의 전통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문을 지나면 자연스럽게 무바라크 마할로 향하게 된다. 이 왕궁은 1900년 마도 싱 2세에 의해 지어져, 정무와 의전을 수행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이 궁전은 2층으로 되어 있다. 그중 1층이 현재 직물과 의류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는 자이푸르 왕족들이 시용하던 금란가사와 직물 등 최고급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사와이 마도 싱 1세(1728~1768)의 결혼 예복이다. 그리고 그는 키가 210㎝나 되고 몸무게가 250㎏이나 나갔던 거구였다고 한다. 현재 이곳 전시실에는 그가 입었던 커다란 상의와 바지가 전시되어 있다. 이처럼 몸무게가 많이 나갔기 때문인지, 그는 40세까지 밖에는 살지 못했다.
궁중예술가들이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공방
무바라크 마할 옆에는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궁중 공방이 있다. 이곳은 자이푸르 전통예술을 보존하기 위해 왕실에서 지원을 하는 수공예 예술 공방이다. 1948년까지는 자이푸르 왕실이 권력과 재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운영되었으나, 이제는 그들에게 전처럼 지원을 해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만든 예술품이나 공예품을 관광객에게 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곳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재능과 기술을 잠시 살펴본다. 무굴 제국시대 회화인 세밀화가 이곳에서 그려지고 있다. 금동으로 만든 장신구와 기념품도 굉장히 많다. 실크와 면으로 만든 의류와 사리 등도 보인다. 이곳에서는 또한 카펫과 태피스트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그중 세밀화 그리는 과정을 잠깐 살펴본다. 세필을 가지고 선을 긋고 색칠을 하는데,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선지 그림 값이 비싼 편이다. 그림 한 장에 1만 2000루피나 가는 것도 있다.
금동으로 만든 기념품은 암베르성에서 이미 샀기 때문에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 아내는 실크로 만든 의류에 관심을 보인다. 제품의 질이 상당히 높은 편인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인도의 의류는 옷감이 좋기도 하지만 염색기법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의류의 색깔이 화려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이다. 또 인도의 염색업자는 고객이 원하는 색을 그 자리에서 만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카펫을 짜는 장인을 만나러 간다. 그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는데, 우리에게 카펫 짜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 회원 중 한 사람을 조수로 채용해 즉석에서 카펫을 짜 보도록 한다. 오방색에 해당하는 다섯 가지 색실을 넣어 기하학적인 문양을 만들어내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 숙달된 장인이어야 하루에 하나 정도의 카펫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카펫이나 태피스트리를 아직도 이처럼 전통방식으로 짜고 있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찬드라 마할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이들을 보고 난 우리는 다시 디완 이 카스 앞에 모인다. 이곳에서 30분 정도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나는 먼저 자이푸르 왕족들이 살고 있는 찬드라 마할을 올려다본다. 이 왕궁은 7층짜리 건물로 시티 팰리스에서 가장 높고 크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리디 시디 폴(Riddhi Siddhi Pol)을 지나야 한다. 이 문은 철문으로 되어 있고 문지기 두 명이 지키고 있다.
이 문을 들어가면 프리탐 니와스(Pritam Niwas) 광장이 나오고, 그 북쪽에 찬드라 마할이 위치한다. 찬드라 마할은 외적으로 화려할 뿐 아니라 내적으로도 장식과 치장이 많아, 시티 팰리스를 대표하는 건물이다. 이곳 1층에는 박물관이 있고, 2층부터 7층까지는 거주와 연회용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거울의 방으로 불리는 쉬시 마할이다. 5층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아름다운 방이라고 해서 슈리 니와스(Shri Niwas)로 불리기도 한다.
이곳 찬드라 마할 옆에는 자이 니와스 정원(Jai Niwas Bagh)이 있다. 이곳에는 나무와 수로, 분수, 수영장 등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18세기에 지어진 고빈드 데브지(Govind Devji) 사원이 있다. 이 왕실 사원에는 크리슈나 신이 모셔져 있다. 그러나 찬드라 마할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지 않고 있다. 사전 예약을 통해 1층 박물관만 볼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찬드라 마할의 프리탐 니와스 광장에 연해 있는 실레 카나(Sileh Khana)에 있는 무기박물관으로 간다. 이 박물관은 이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으며, 자이푸르 왕족의 무기 콜렉션이 전시되어 있다. 활과 화살, 칼, 단도, 방패, 총 등이 있는데, 일부 무기에는 화려한 장식이 있어 무기라기보다는 예술품 장식품으로 보인다. 이곳 박물관 복도에는 또한 19세기 후반 사진 찍기를 즐겼던 람 싱 2세(Ram Singh II)의 사진들이 걸려 있다.
시티 팰리스를 다 보고 나니 오후 4시 30분쯤 되었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나하르가르 성(Nahargarh Fort)으로 가서 일몰과 야경을 구경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제안을 거절한다. 이틀 동안 너무나 많은 구경을 해 피곤하기도 하고, 이것이 일종의 옵션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일 아그라로 이동하면서 계단식 우물 찬드 바오리(Chand Baori)를 보려면,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하가르 성까지 올라가는 대신 호텔에서 자이푸르의 야경을 보는 데 만족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