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단 한 번 가본 적 없는 가난한 나라의 리조트에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친 무릎에 통증이 몰려왔다. 이틀에 걸친 장시간의 이동 탓도 있었지만 어제 오후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돌았던 것이 문제였다. 절룩거리며 천천히 걷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지만 보통 걸음으로 걷기 힘들었다. 한동안 멀리했던 소염진통제를 먹어야할지 고민이 됐지만 좀 더 참아 보기로 했다. 그 속내를 모르고 리조트 매니저가 어제처럼 짜이를 권하며 정글 탐험을 할 것이냐고 재차 물어온다.
"보시다시피 무릎 통증 때문에 갈 수 없습니다.""약은 있습니까?""하루 더 버텨볼까 합니다."진통제가 없으면 기꺼이 내줄테니 언제든지 요청하라고 한다. 매니저와 함께 짜이를 마시던 사람이 내가 무릎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대마초를 권했다.
"통증에는 마리화나가 아주 좋습니다." 무릎을 다쳤던 코사니의 현지인들도 통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내게 대마초를 권했었다. 대마초가 통증과 불면증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었다.
"통증엔 마리화나가 좋습니다... 많은 이들이 약재로 쓰죠"
리조트에서 구한 적당한 크기의 작대기를 지팡이처럼 사용해 절룩거리는 다리를 끌고 숲길을 걷는데 대마초를 권했던 사내가 내 뒤를 따라와 인도 보다 그 가격이 저렴하다며 집요하게 대마초, 마리화나를 권했다.
"한국에서는 대마초 피우지 않습니까?""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인도와 네팔에서도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약재로 사용합니다."인도와 네팔 사람들이 내게 대마초를 권했을 때 뭔지 모르게 불안감이 작용했었다. 공산당을 좋게 말하면 대역죄를 짓는 것으로 세뇌 당했던 어린 시절의 의식이 그랬듯이 대마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머릿속 깊이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과 의식마저 구속시키는 이 얼마나 숨막히는 한국의 현실인가.
내게 대마초를 권한 사람은 대마초를 조직적으로 판매하는 그 어떤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어떤 일을 하십니까?""농사일을 하면서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알고 보니 국립공원 주변의 게스트하우스나 리조트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곳 마을 사람들이었다. 리조트에서 정원 손질이나 청소 일을 하고 있는 이들 대부분은 이 마을 토박이들로서 농사일을 겸하고 있었다. 농사 일이 없거나 관광객들이 몰리는 성수기에는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퇴근한다는 것이다.
사내와 헤어져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아낙네들이 집 앞으로 흐르는 또랑물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세면을 하고 있었다. 모두들 인사성이 밝다. 내가 다가가면 먼저 인사말을 건넨다. 네팔 사람들 또한 인도사람들처럼 당신의 신에게 경배를 드린다는 '나마스테!'라는 인사말을 쓰고 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먼저 인사를 건네 와 처음에는 국립공원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한 준비된 인사말처럼 다가왔지만 그들의 환한 미소를 보면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저만치에서 소를 이용해 쟁기질을 하는 농사꾼 부부가 보였고 그 주변에서 온몸으로 논을 갈아엎고 있는 젊은 청년이 보인다. 청년이 일하고 있는 주변 논들이 작은 평수로 바둑판처럼 나눠져 있었다. 10여 년 동안 농사일을 해온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같은 면적이라도 나눠져 있는 농토는 일하기에 수월하다. 넓은 논밭에서 일하다 보면 쉽게 지치기 마련이다.
한국과는 달리 특이하게도 이곳 논두렁은 그 높이가 아주 낮다. 청년이 괭이질을 할 때마다 물기 없는 메마른 논에서 먼지가 푸석푸석 올라오고 있다. 그에게 다가갔다. 그 역시 잠시 일손을 놓고 해맑은 표정으로 스스럼없이 '나마스테' 인사를 한다.
'호랑이 발' 기념품 만드는 주윤발 닮은 사내
"혼자서 일합니까?""예,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제 농토입니다." "결혼했나요?""예. 6개월 됐습니다."무엇이 그리 좋은지 연신 웃고 있는 그의 나이는 스물 한 살이고 아내는 열여덟 살이라 한다. 인도 시골 마을에서처럼 그 역시 부모가 맺어준 상대와 정략결혼을 했다고 한다.
"결혼 생활이 행복합니까?""행복합니다. 아내가 아이를 가졌습니다."그의 집은 논 주변에 있었다. 문전옥답인 셈이다. 장마철을 대비해 집을 수리하고 있는 그의 형에게는 다섯 살짜리 아들이 있었고 아내는 임신한 상태였다. 모두가 행복한 웃음을 내 보인다. 농사일을 하는 청년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 몇 마디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누고 다시 마을길을 나섰다. 한 중년 사내가 내 발길을 잡는다.
"나마스테. 어디서 왔습니까?""한국요.""아, 한국!" 그가 한국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다며 집 마당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짜이 한잔 하고 가란다. 그의 집 마당은 넓었다. 전통가옥 몇 채를 지어 놓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자식들 없이 아내와 단 둘이 살고 있다는 그가 마누라 등살에 죽겠다며 행복한 엄살을 부린다. 나와 영어 수준이 비슷한 그에게 농담으로 한마디 거들었다.
"당신보다 아내가 힘이 더 셉니까?""힘이 셉니다. 돈 많이 벌어 오랍니다.""내 아내도 힘이 셉니다. 이혼하자고 해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그가 자신도 아내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며 하하하 웃는다. 그의 말로는 이 마을은 정부의 보조금으로 마을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국립공원 안에 자리한 마을처럼 낡은 집들을 임의대로 바꿀 수 없어 큰 불편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네팔의 소수 민족, 타루족의 전통가옥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이 마을은 주거 환경이 한국의 민속촌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관광 상품으로 박제화 된 한국의 민속촌과 달리 이 마을 주민들은 대를 이어 농사를 지어가며 아이들을 키우고 공부시키는, 먹고 자는 생활공간이었다.
그의 옆집에서는 관광 상품용으로 호랑이 발자국을 만들고 있었다. 장식품 또는 재떨이 용도인 듯싶다. 진흙을 반죽하여 호랑이 발자국을 만들고 있는 사내가 낯이 익었다. 어제 오후 길거리에서 만난 얼핏, 홍콩 배우 주윤발을 닮은 사내였다.
술에 취해 내게 횡설수설 말을 걸어왔던 사내는 어제와는 달리 말짱하게 앉아 본업에 충실하고 있었다. 어제 술 취한 그를 만났을 때 주윤발이 무료한 시골 생활에 지쳐 있는 네팔 사내를 연기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나를 금방 알아본다.
"정글에는 호랑이가 많습니다. 그 호랑이 발자국입니다."어제의 기억이 겸연쩍었던지 공손하게 인사말을 건네며 호랑이 발자국을 사가라고 한다. 하지만 배낭에 넣고 다니면 깨질 수 있다며 정중히 거절했더니 괜찮다고 웃는다.
어느 집 처마 밑에서는 중년의 여인이 맷돌로 곡식을 갈고 있었다. 어린 시절 종종 보았던 고향 마을의 맷돌과 똑같이 생겼다. 푸짐하게 생긴 여인의 모습 또한 어린 시절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다가온다. 사진기를 내보이자 찍어도 상관없다는 말 대신 웃음으로 화답한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보냈을까. 닳고 닳은 맷돌은 이 마을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한 여행자의 물음 "당신은 수행자이십니까?"
늘 그랬듯이 오전 11시쯤 아침 겸 점심 식사를 마치고 리조트 원두막에서 노트북을 펼쳐 놓고 일기를 쓰면서 빈둥빈둥하다가 오후 2시쯤 마을 앞 강가로 나섰다. 강가에 젊은 외국인 남녀 한 쌍이 보였다. 여자는 강에서 수영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고 그 한 옆에서 여행 가이드라는 네팔 사내와 멕시코 청년이 마을 아이들과 모닥불을 피워 수프를 끓여가며 감자를 굽고 있었다.
마을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만난 외국인이었다. 내가 묵고 있는 리조트의 매니저 말로는 비수기라서 관광객들이 많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나마 찾아오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정글 탐사를 나섰다고 한다.
영국과 멕시코, 두 청춘 남녀는 인도 여행지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들은 인도의 요기들처럼 허름한 차림새로 긴 머리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있는 나의 겉모습이 궁금한지 물었다.
"수행자이십니까?""수행자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글을 쓰면서 가끔씩 명상을 합니다.""저도 명상을 합니다."멕시코 청년이 자신도 명상에 관심이 많고 기타를 쳐가며 노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집 아이들도 기타치고 노래를 한다고 했더니 자신의 음악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다. 하지만 그의 깊이 있는 영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에 내 의견 또한 내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영어를 잘 하는 외국인을 만나면 말이 굳어진다.
나의 영어는 내 수준과 비슷한 현지인들을 만나면 그런대로 잘 통하지만 영어를 잘하는 외국인들은 다양한 단어에 말조차 빨라 알아듣기 어렵다. 그들 또한 대충 대충 단어를 늘어놓는 내 엉터리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다. 그렇게 나는 외국인을 만나면 시골 현지인들과 다름없는 촌놈이 된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합니다.""상관없습니다. 저녁 때 다시 봬요."외국인 청년들이 저녁 때 자신들의 숙소로 놀러 오라고 한다. 자신들의 기타 연주와 노래, 질 좋은 대마초를 피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저만치 외떨어진 강가 큰 나무 그늘 밑에서 낚시하는 사내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오늘 아침 내게 대마초를 권했던 사내였다. 낚싯대가 따로 없었다. 2미터도 채 안 되는 가느다란 나무 가지 끝에 줄을 묶어 낚시 바늘에 곤충을 끼워 흐르는 강물에 던져 놓고 있었다.
"어떤 고기가 잡힙니까?'"000요."나는 그가 말하는 물고기가 어떤 물고기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다시 물었다.
"잘 잡힙니까?""예."어떤 물고기가 잡히는지 궁금해 그 옆에 쪼그려 앉아 30여분 을 보냈지만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구경할 수 없었다. 그는 미끼를 갈아끼울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내내 그러고 앉아 있다. 세월을 낚는 강태공이 따로 없었다.
해질 무렵, 리조트 근처에 넓게 펼쳐진 목초지에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몰려나와 신나게 놀고 있었고 귀가 축 늘어진 염소들이 아이들 주변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이 평화로운 풍경 속에 주저앉아 있다가 히말라야 설산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는 목초지에서 축구를 하던 문시아리 아이들을 떠올렸다.
인사성 밝은 마을 어른들의 친절한 웃음이 그랬듯이 이곳 아이들 역시 구김살이 없어 보인다. 해질녘까지 장난치고 떠들어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마을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너무나 평화로운 마을 풍경 속에 젖어 있다가 문득 영화 <트루먼 쇼>(The Truman Show, 1998년)의 세트장이 떠올랐다.
모든 것이 가짜인 세계, 24시간 TV로 생중계되는 세트장에서 생활하는 트루먼처럼 나는 이 평화로운 풍경들이 마치 가짜로 꾸며져 있는 세계, 세트장처럼 다가왔던 것이다. 행복감에 젖어 있으면 어느 순간 불행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너무나 평화롭다 보니 이 마을의 평화가 언제 무너져 버릴지 모르는 세트장처럼 다가왔던 것이다.
숙소 비용이나 음식 값이 저렴했다면 나는 이 평화로운 마을에서 일주일 이상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본으로 평화와 행복을 사고 싶지 않았다. 내 삶이 자본과 상관없이 뿌리 내리지 못하면 언제든지 자본에 얽매인 불행이 찾아오기 마련인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외국인 청년들이 초대한 숙소를 찾지 못해 내가 묵고 있는 리조트 숙소에 홀로 남아 수없이 많은 별들을 보았다. 어린 시절에 그랬듯이 밤하늘의 수없이 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저 어딘가에 내가 죽어 돌아갈 별이 있을 것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