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5일 오후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방송통신위원회 주최로 열린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안)' 세미나 도중 한 시민이 토론장 앞으로 나서 '잊혀질 권리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25일 오후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방송통신위원회 주최로 열린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안)' 세미나 도중 한 시민이 토론장 앞으로 나서 '잊혀질 권리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 김시연

지난 2014년 7월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했다.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위증과 폭탄주 회식 논란이 직접적 계기가 됐지만 과거 트위터에 올린 정치 편향적인 글들이 도마에 올랐다. 정 후보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야당 후보를 원색적으로 비판하고 박근혜 후보를 옹호한 글들을 올렸다 이후 스스로 삭제했다. 하지만 장관 후보자 지명 뒤 한 네티즌이 삭제된 글들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파문이 커졌다(관련기사: "조국, 북한 가서 살라"던 정성근 "사과드린다").

이른바 '잊힐 권리(잊혀질 권리)'와 국민의 알 권리가 충돌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잊힐 권리를 보장하는 가이드라인 제정에 나서 시민단체가 '알 권리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방통위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에 시민단체 '알 권리 침해' 반발

"내가 올린 글 지워달라는데, 이게 왜 표현의 자유 침해냐?"(이상직 변호사)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25일 오후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가칭)'안을 발표했다. 말 그대로 '이용자 본인이 과거 작성한 인터넷 게시물 삭제와 포털 검색에서 배제되도록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이다. 법적 준수 의무는 없지만 앞으로 입법까지 염두에 둔 데다, 정부에서 만든 가이드라인인만큼 네이버, 카카오, 구글과 같은 인터넷 포털 사업자들에게 상당한 강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

아동, 청소년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사생활(프라이버시) 보호 측면에선 큰 이견이 없지만, 문제는 앞서 정성근 후보자와 같은 '공인'이 과거에 올린 게시 글이다. 가안에도 국민 알 권리 보호 차원에서 '게시물이 공익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경우'를 접근 배제의 예외 기준으로 정했다.

하지만 '정무직 공무원 등 공직자, 기자 등 언론기관 관계인 및 이에 준하는 공인이 그 업무에 관하여 작성한 게시물로서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는 경우'로 한정해, 공직자와 기자에 준하는 공인을 어디까지 볼 것인지, 업무 관련성과 공적 관심사를 어떻게 판단할지 애매하다.     

예를 들어 앞서 정성근 장관 후보자의 경우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지만 트위터에 글을 올렸을 당시엔 언론인도 공직자도 아니었다. 따라서 공인 여부를 판단하기도, 업무 관련성을 따지기도 쉽지 않다.

이번 4.13 총선 후보자들 가운데도 과거 공인이 아니었을 때 SNS나 인터넷에 올린 글들 때문에 구설에 오르기도 하는데, 미리 논란이 될 만한 글 노출을 차단하게 되면 앞으로 유권자의 중요한 '후보 검증' 수단이 사라지게 된다. 거꾸로 과거 공인이었지만 지금은 공인으로 볼 수 없는 사람의 삭제 요구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인터넷 업계 "공인-공익 관련 기준 애매, 무조건 삭제 우려"

그동안 시민사회와 인터넷업계에선 방통위의 가이드라인 제정에 반대해 왔다(관련기사: "문창극 위한 '잊혀질 권리'? '알 권리' 더 확대해야" ). 특히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지난 15일 "방통위의 가이드라인이 제정되면 국민의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가 심대한 위협에 처한다"고  우려했다.

참여연대는 "가이드라인의 적용범위가 '시의성이 없는 정보'를 넘어서서 '원치 않는 정보'로 확대되어 있고, '이름 검색'에서의 배제만이 아니라 정보 자체의 삭제 차단을 집행 방법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면서 "단지 시간이 흘렀고 정보주체의 사정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 정보가 타인들에게 얼마나 절실할 수 있는지를 배제하고 정보 유통을 제한하는 것은 타인의 알권리를 비례성 있게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인터넷 포털 업계 관련자들도 애매한 공인-공익 기준에 우려를 나타냈다. 차재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실장은 "사업자가 글을 읽고 공익과 관련된 사항을 전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사적 검열' 강요"이고 "나아가 이용자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 우려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인터넷 사업자가 이용자의 삭제 요구를 거부할 경우 법적 분쟁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무조건 삭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진규 네이버 수석부장도 "'공익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경우'라는 기준은 추상적 기준이어서 실제 적용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면서 구체적 기준 보강을 요구하는 한편 "과거에 공인이었다가 현재는 공인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제3자가 올린 게시물에 대한 잊혀질 권리를 허용하지 않은 건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고려한 것"이라면서 "자기가 올린 게시물에 한해서 다른 사람이 못 보게 하겠다는데 이게 왜 표현의 자유 침해냐"고 밝혔다. 


#잊힐 권리#잊혀질 권리#방통위#알 권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