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이하 SBS노조)는 15대 위원장으로 윤창현 SBS 보도본부 국제부 기자가 선출하였다. 윤 신임위원장은 지난 3월 14~16일까지 진행된 위원장 투표에서 총 조합원 1077명 중 815명이 참여해 794명이 찬성표를 던져 97.42%의 찬성률로 당선되었다.
1996년 SBS에 입사한 윤 신임 위원장은 정치, 경제, 보도제작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거쳤고 SBS노조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특히 <뉴스추적>에서 영화 <부러진 화살>로 잘 알려진 '전직 교수 김명호, 그는 왜 법을 쐈나' 편을 제조명해 2008년 제39호 한국기자상 기획보도부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보도본부에서 국제부 차장을 맏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에 위치한 SBS 사옥내의 노조 휴게실에서 윤 신임 위원장을 만나 당선소감과 현재 헌론 상황, 그리고 앞으로 각오에 대해 들어 보았다. 다음은 윤 신임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15대 SBS 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되셨는데 소감 부탁드립니다."어깨가 무거워요. 아시다시피 지상파 방송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많이 떨어져서 지상파 방송이 생존하기 위한 조건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잖아요. 그것은 결국 저를 포함한 방송 기자, PD들 그리고 다양한 직군에 종사하시는 방송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갈수록 나빠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그럼 이런 상황과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가 무엇이고 길이 어디 있느냐를 찾아야 하거든요. 그래서 어느 때보다 저는 지상파 방송 노동조합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한 시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 그럼 그 길은 뭐라고 생각하세요?"방송 산업의 기본은 콘텐츠잖아요. 그런데 저희를 믿을 수 있어야 시민이 보기에 '아 저 방송이 하는 말은 믿을만해', '가치 있게 볼만 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막혀있는 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시청하겠어요.
그럼 그 신뢰를 어디서부터 구축해야 하느냐 저는 거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취임을 앞두고 조합원들을 만나면서 강조하는 게 '신뢰를 가져올 만큼 저희 보도가 공정하냐'와 '심층적이고 중층적으로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서 다양한 접근을 하고 있느냐'에서 아직 보완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걸 잘하는 게 노동조합에 주어진 숙제인 것 같아요. "
- 97.42%의 찬성률을 받으셨잖아요. 물론 찬반을 묻는 투표기 때문에 찬성표가 높을 것 같은데 단지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저는 여러 사람이 후보로 나와 경선을 해서 이렇게 높은 지지율이 안 나오길 바랬어요. 왜냐면 노동조합 일이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처럼 인식되는 게 싫었어요, 그럴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인식이나 흐름이 그렇지 않잖아요, 노동조합 가면 빨갱이 취급당하고 해고당해서 밥줄 끊어 지는 걸 상상하잖아요.
그러나 경제나 정치적으로 여러 통계를 볼때 노동조합이 활동할 때 소득의 불균형이 가장 최소화되었던 역사적 경험이 있고 노동조합이 가장 활발할 때 질 좋은 경쟁들이 일어났어요. 질 좋은 경쟁이란 게 뭐냐면 서로 조금 더 사회 부조리에 대해 깊이 접근하고 집중적으로 탑사하고 이런 노력을 방송 3사가 경쟁적으로 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사라졌잖아요. 그래서 답답해요. 저는 저에게 지지율이 높은 건 저 혼자 나온 측면이 있는 것이고 반면에 70%대 투표율이 나왔는데 그건 제가 말씀드린 것에 대한 조합원과 구성원들의 갈증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 노조 위원장은 주로 주위 권유로 출마하잖아요. 처음 권유받았을 때 어땠어요?"저는 등 떠밀려서 하기 싫은 짐을 억지로 받는 모양새로 나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왜냐면 저도 하기 싫은 일을 하게 되는 것이고 제가 그런 입장을 취해버리면 저와 같이 일할 사람들, 조합을 바라보는 조합원들과 SBS 노동조합에 거는 기대들이 있는 시민의 눈길이 어떻겠어요? 그렇게 인식되기 시작하면 조합이 하는 모든 일이 요식행위처럼 보일 수가 있고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것처럼 진정성의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또 하나 저는 SBS에 노동조합이 생기는 과정부터 다 봐왔어요. 그리고 조합이 생긴 이후로 어떤 활동을 해왔고 그것이 회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다 봐왔어요. 뭐냐면 노동조합이 생긴 뒤 회사의 여러 의사 결정 과정에 의견을 제시하고 그런 것을 통해 상당히 많은 부분이 규정돼왔어요. 그런 역할들이 회사가 좀 더 건강하게 운영되는 데 적잖은 영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결정을 하는 데에 과거의 경험이 많이 도움됐어요."
- 윤 위원장은 출마의 변에서 "우리는 지상파 방송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충실히 다하고 있는가? 권력과 자본의 간섭에서 독립해 자유롭고 공정하게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건강한 여론 형성에 기여하고 있는가? 이를 위한 기초인 SBS 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 제반 권리는 충분하고 안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기 위해 무너진 기본을 다시 세워나가겠다"고 하셨어요. 그럼 무너진 기본을 다시 세워나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지금의 한국사회를 부르는 '헬조선', '기울어진 운동장'등 여러 명칭이 있잖아요. 이건 뭐냐면 사람들의 사회적 불만과 그에 상응하는 요구의 기준이 굉장히 높아져 있는데 언론이 전혀 부합하고 있지를 않잖아요. 저는 언론이 제 역할을 했으면 한국사회가 헬조선이란 말이 나올 정도까지 위태로운 상황으로 내몰리진 않았을 것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언론의 책임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제대로 보도, 견제하고 지적하는 등 언론의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게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제대로 해야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을 수 있어서 저희가 좋은 콘텐츠를 공급했을 때 시청자들이 '아, 저 회사는 믿을 만해'라고 흔쾌히 콘텐츠를 수용하죠. 그리고 그것이 저희 건강한 수익의 기반이 되어 그 것을 바탕으로 더 질 좋은 콘텐츠를 내놓고 국민과 더 많이 소통하면서 저희 뿌리를 점점 더 강하게 박을 수 있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 언론이 망가진 것은 MB정부의 언론장악으로 인한 것이죠.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망가졌을까란 의문이 들기도 해요."MB정부에서 미디어법이 만들어지고 종편이 생겼잖아요, 그러면서 언론의 질적 하형 평준화가 이뤄졌어요. 문제 제기의 수준이 예전처럼 경쟁적으로 깊고 심층적인 쪽으로 가진 못하고 어젠다 셋팅의 기능 자체가 종편에 상당 부분 뺏겨 버리면 전반적인 질문의 수준이 확 떨어져 버린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저희가 돌파할 수 있는 내용을 지상파들이 대안으로 제시하지 못하는 거죠, 오히려 거꾸로 딸려가는 상황이 된 것이죠.
문제는 MBC나 YTN 사례에서 보듯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기자들의 밥줄을 가지고 협박하잖아요. 기자도 생활인이 때문에 밥을 먹고 사는 문제와 자기가 언론 가치에 충실히 해야 하는 문제가 충돌할 때 상당 부분 후자의 가치를 계속 뒤로 밀어 넣게 되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그런 것 때문에 결국은 자기검열을 강화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뗄 것인가에 노동조합의 역할이 있는 거예요.
이미 MBC 같은 경우에도 지노위 판례로 공정방송을 위한 활동이 근로조건을 위한 것이라는 게 나와 있어요, 이것은 공정방송이라는 것 공정보도는 언론노동자들의 양심에 따라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근로조건의 핵심이에요. 공정보도는 기본 중에도 기본이죠. 그건 언론사의 노동조합을 다른 노동조합과 차별화시키는 가장 큰 부분이라고 생각 해요. 저흰 사회적 책무를 안고 있고 그것을 지켜내는 것이 언론 노동자들의 핵심적인 책무이자 노동조합의 가장 큰 일이에요. 그랗기 때문에 그런 인식의 전환이 필요해요."
- 박근혜 정부 들어 언론 노동 운동하기 어려워요."쉽지 않죠, 일단 언론 노조뿐만 아니라 올해 단체 협약과 관련된 지침들을 만들어 냈잖아요. 고용세습을 포함한 여러 가지 조건에 대해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내용 글을 내놨는데 사실상 상당 부분 기존의 단체협약을 맺고 근로자들의 보호조건을 보호해온 내용과 동떨어져 있어요. 노동조합을 약화하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명확히 보이는 상황이고 특히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여론을 움직이는 언론사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형태로 다양한 압박들이 상시로 들어올 것으로 생각해요. 어려운 조건이지만 언론인들이 양심적으로 일해야 해서 달성될 수밖에 없는 공정 보도와 방송이란 것은 언론 노동자의 근로 조건이에요. 공정방송을 포기하는 건 근로조건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으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에요."
- SBS의 보도는 어떻게 평가하세요?"지금 상대적으로 종편과 MBC, KBS의 보도가 워낙 편향적이라는 평가를 받잖아요. 그에 비해서 저희가 상대적으로 좀 낫다는 평가를 받기도 해요. 그러나 최근에 위안부 문제나 개성공단 문제 등의 여러 문제에서는 SBS 뉴스 역시 공정성을 충분히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부에서도 그런 문제 제기가 있었죠. 그래서 그런 부분은 노동조합이 해결해야 할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런 숙제는 영원히 계속될 거예요."
-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다가와요, 세월호 참사에서 언론문제를 빼놓을 수 없어요. 많은 언론인이 반성하고 달라지겠다고 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언론이 달라졌냐면 아닌데."맞아요. 전혀 달라지지 않았죠. 저는 역사적으로 봐도 언론이 중요한 고비를 맞을 때는 반성하는 척하고 시민의 흐름에 동참하는 척했지만 제대로 반성한 적이 있던가요? 저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80년에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도로 몰아붙였던 제도권 언론들이 제대로 반성한 적이 없어요. 그 뒤로 자기들의 스피커가 늘어나니 또다시 폭도니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잖아요. 저는 본질에서 언론이 제대로 대오각성해서 반성한 적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언론자유라는 가치들이 본격적으로 부가될 수 있었던 것은 시민이 뿌린 피가 없었다면 단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어요. SBS만 해도 물론 창업주가 과감히 투자를 결정해서 회사가 커왔지만 다시 민영방송을 만들자는 논의가 가능했던 것은 87년 민주항쟁이 일어나고 시민이 요구하는 언론자유의 수준과 욕구가 터져 나오지 않았으면 존재할 수 없는 방송사예요. 언론 자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노력과 제대로 된 반성에 기초해서 시민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내부의 자성 등은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계속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못하고 있어요. 물론 하고 싶어 하는 구성원들이 많이 있지만 내부의 자기 검열과 눈치 보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는 게 현실인 것 같아요."
-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저도 답이 있는 건 아니에요. 결국, 노동조합을 포함한 방송 종사자들 전체가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갈 수는 없죠. 당연한 얘기인데 노동조합이 선도적으로 목소리를 나는 게 필요하겠지만, 그것과 더불어서 언론에 종사하는 개개인들이 자기가 왜 이 직업을 택했고 무엇을 하고자 이 길로 들어섰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을 다시 부여잡고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언론인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고 주는 대로 받아 적고 질문하지 않는 언론은 전부 기계로 대체 될 거예요. 알파고 봤잖아요.
얼마 전 <뉴스타파>에서도 공영방송들의 청와대 관련 보도들을 KTV와 비교한 콘텐츠가 있었는데 그런 기사는 알파고까지도 필요 없어요. 초보적 수준의 인공지능만 있으면 기계가 다 쓸 수 있는 기사예요. 그럼 언론사와 기자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공정보도를 떠나 앞으로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런 식으로 최소한의 공정성과 최소한의 질문을 하지 않는 기자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 그리고 각오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거창한 계획 없어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해요. 왜냐면 그게 가장 중요하거든요. 기본을 충실히 잘 지켜내서 SBS가 무너져 버리는 시민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도록 그걸 바탕으로 해서 SBS의 조합원들이 양심껏 일해서 만들어 내는 결과물아 더 큰 사랑을 받고 그걸 바탕으로 해서 조직이 단단해지고 앞서 말씀드린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노동조합이 자기 목소리를 충실히 내고 역할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