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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 직원 중에 건축담당 여직원 있지? 칭찬 좀 해 주게나."

경로당에서 만난 어르신은 면사무소의 한 직원을 지목하며 칭찬해주라고 했다. '손자며느리 같고, 딸 같을 수도 있으니,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네"라고 짧게 답했지만 그게 아닌 듯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대답하는 건가?"

사실 내가 경로당에 방문한 목적은 독거노인들의 생활상을 듣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직원 칭찬은 관심 밖일 수밖에 없다.

"죄송합니다. 제가 다른 분들 말씀을 듣는 중이라…."

고개를 흘낏 돌리자 노기 어린 어르신의 표정이 보였다. 자세를 바로잡았다. 할아버지 말씀은 이랬다. 자신이 아는 사람이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작은 조립식 건물을 지었다. 주위 사람들이 "허가는 받았느냐?"는 말에 그 사람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게됐다. 그 사람은 고민을 거듭하다가 면사무소에 찾아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담당 여직원은 "철거 대상이다, 한번 찾아뵙겠다"라고 답했단다.

다음날 할아버지 집을 방문한 직원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후 줄자로 건축물 너비를 측정하길 수차례. '철거하면 그만이지 참 참 철저하기도 하다.' 그 할아버지 생각은 그랬다. 그런데 뜻밖의 말.

"제가 사진도 찍었고 도면도 그려 놓을 테니, 내일 나오셔서 신고서 작성해주세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김인아(43) 주무관. 내가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건 이 직원이 오랜 기간 공직에 있었던 게 아니라, 들어온 지 채 5개월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판단을 했을까.

행정, 집행만이 능사는 아니다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사무소 새내기 공무원 김인아 주무관을 소개합니다.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사무소 새내기 공무원 김인아 주무관을 소개합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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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다수 공무원들은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까?' 법을 어겼으니 자진철거를 명령할 게다. 불이행시 강제집행 절차에 들어간다. 법을 집행하는 공직자라면 이렇게 하는 게 맞다. 몰랐든, 고의든, 행위자의 사정이나 생활이 어떻든 일률적 잣대를 들이댄다.

몇 년 전 한 지인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 지인은 어떤 일을 이유로 한 공무원에게 "몰라서 그랬으니 한번 봐 달라"고 사정했다. 돌아온 답은 "(봐주는) 이런 일이 선례가 되면 공무원들 일하기 힘들어진다"란 말. 그는 이 말을 듣고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할 수는 있지만) 예외를 만들면 공무원들이 힘들어진다? 이건 누가 봐도 '갑질'이다. 최근 정부에서 '소극행정 공무원 퇴출'을 발표했다. 이런 경우가 '소극 행정' 아닐까.

"잘못된 건 알았죠. 그런데 가난한 어르신께서 그걸 철거하고 다시 신축하면 부담이 커지잖아요. 현장에 나가 건축물을 재봤는데, 큰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았고요. 정말 모르셔서 하신 일 이기에 '다음엔 절대 그러시면 안 된다'는 말씀도 드렸어요. 그게 잘못된 걸까요?"
"아니요. 잘하셨어요. 그거 칭찬하려고 부른 거예요."

면장실을 찾은 그 직원은 "행정은 집행이 능사가 아닌 지도와 지원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새로 들어온 직원에게 큰 가르침을 받았다.

"현장 행정이 뭔가요? 단순히 현지에 나가 일하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잘못된 부분에 대해 법이란 잣대를 들이대 무조건 '안 된다'라는 식의 마인드는 이젠 바뀌어야 합니다. 농촌 현실에 맞는 행정, 도움을 주는 적극 행정이 현장행정입니다."

다음날 직원회의를 소집해 했던 말이다. 덧붙여 김 주무관 사례도 소개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 이렇게 하는 것도 방법

 김 주무관 책상. 지속적인 건축법 연찬이 주민을 편하게 하는 방법이란다.
 김 주무관 책상. 지속적인 건축법 연찬이 주민을 편하게 하는 방법이란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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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아씨는 건축직이다. 여직원 선호도가 낮은 직종이다. 지방행정도 건축 수요 증가와 귀농·귀촌인들이 늘어나면서 바쁜 부서가 됐다.

"늦은 나이에 공무원을 시작하셨네요?"
"실은 강원도 인제에서 사회복지직 공무원으로 2년간 일하다 뜻한 바가 있어 건축직 신규로 시험을 봤어요."

지난해 김 주무관이 발령을 받던 날, 건축이 전공이냐고 물었다. 아니란다. 사회복지를 전공했지만, 건축에 남다른 관심이 있어 지원했다고 했다. 순간 '참 별종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남들은 전공을 살려 응시해도 쉽게 낙방하는데 도대체 이 사람은 뭐냐'라는 생각도 했다.

"공부는 관심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느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판단이 섰을 때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가정도 하게 되고 집중을 하게 되잖아요. 공부를 그렇게 하면 참 재미있어요."

최근 서울시 9급 공무원시험 경쟁률이 87.6대 1이라는 발표가 있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높은 경쟁률을 보이는 것이 공무원 시험이다. '공시족'이란 신조어가 생긴 지도 오래다. 재수, 3수는 보통이다. 수년간 학원가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김 주무관 말처럼 "무조건 되고 보자는 식이 아닌, 해보고 싶은 분야 또는 관심 있는 직종을 정해 현장을 가정한 몰입"을 한다면, 그 또한 방법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장입니다.



#김인아 주무관#사내면#화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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