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은 뫼동에 있지. 1917년에 죽었어. 로댕 작품은 아내 카미유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영향을 받은 건 맞는데, 부인이 아니라 정부였죠.""카미유가요? 아니에요.""부인은 로즈였죠.""아니요. 로즈하고는 결혼하지 않았어요.""결혼했어요. 함께 살던 마지막 해에."우디 알렌의 매력 만점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이다. 프랑스 전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의 부인 카를라 브루니가 미술관의 가이드로 등장해 화제였던 바로 그 장면. 로댕 미술관 정원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 아래, 주인공 길과 이네즈, 이네즈의 친구 캐롤과 폴이 가이드의 안내를 받고 있다. 소르본 대학 강연 차 파리를 방문했다가 우리의 주인공들을 조우한 잘난척쟁이 폴은 이곳에서도 아는 체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로댕이 카미유와 결혼을 했네, 안 했네 하며 가이드 브루니와 옥신각신하는 장면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의 유머 넘치는 장면을 떠올리며, 카미유 클로델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소설 <어떤 여자>의 우울함을 떠올리며 로댕 미술관(Musée Rodin)으로 가는 민트색 메트로 13호선을 탄다. 바렌(Varenne) 역에 내릴 참이다.
파리의 골목길은 모퉁이마다 써 붙여 놓은 살뜰한 안내표지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길을 잃게 생긴 구조라 그렇게도 하염없이 헤매곤 했는데, 이곳 로댕 미술관 오는 길은 어쩐 일인지 작정을 하고 헤매려 해도 좀처럼 길을 잃기 어렵게 되어 있다. 지하철 플랫폼에서부터 안내 푯말을 따라 쭉 걸어오다 첫 번째 골목을 들어서면 곧장 이 베이지색 건물과 마주하게 된다.
파리는 종종 으리으리하거나 심술궂거나 화려하거나 유혹적인데, 이곳 로댕 미술관 앞 파리는 단아하고 참한 느낌이다. 노란빛이 도는 베이지색 건물들 사이로 앙상한 가을 나무들, 건물 벽에 흘러내려진 빨간색 휘장. 그 위에 선명한 글자, 'Musée Rodin'. 아직 미술관은 보지도 않았는데 주변의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워 이곳을 그냥 서성이다가 저 모퉁이 작은 찻집에서 커피나 한 잔 하고 돌아가도 아쉬움이 없을 것 같다.
까만 정장을 멋지게 갖춰 입은 안내원들이 서 있다. 이렇게 한적한 곳에 일하는 이들은 왜 그리 많은지 보디가드 같은 건장한 흑인 남자 여럿, 모델처럼 늘씬한 예쁜 여자 몇 명, 미술관 안주인처럼 생긴 퉁퉁하고 넉넉한 풍채의 직원 몇 명이 한가롭게 서 있다. 들어가려니 유리문 너머 안내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까딱이며 호들갑스레 손가락을 휘휘 저어 유리창 밖 허공을 가리킨다. 그네들이 가리킨 손가락 끝을 따라가 보니 미술관 정문이 보인다.
'아하! 저기가 입구라는 거지? 좋아!' 정문 쪽에 가니 이번엔 거구의 흑인 호위병이 팔을 쭉 뻗어 왼쪽 건물을 가리킨다. 출입문까지는 리본 두 줄이 꼬불꼬불 이어져 있다. 줄 지어 들어가라는 의미야 알겠는데, 줄 서 들어갈 관람객이라곤 달랑 나 하나뿐인 이 상황이 난감할 뿐이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처럼 리본 사이 진입로를 따라 건물에 들어서니, 방금 전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눈짓을 주고받았던 그 퉁퉁하고 넉넉한 풍채의 아낙들이 그제야 반겨준다.
"제대로 잘 찾아 왔구나! 고생했다, 얘!"
들어오기까지 꽤 긴 의식을 치룬 것에 비하면 너무도 허무하게 로댕의 걸작이 눈앞에 떡하니 나타난다. <생각하는 사람>이다. 장미꽃과 나무들로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에 낯익은 남자가 앉아 있다. 아무리 고쳐 봐도, 생각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 불편한 자세로 정말 어지러울 것 같은 높은 단 위에 발가벗은 채 턱을 괴고 앉아 있는 그 익숙한 모습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이 남자는 생각을 머리가 아니라 온몸의 근육으로 하는 듯하다. 쏟아져 내릴 것 같은 근육의 갈래가 한 줄 한 줄 선명히 보일 지경이다. 햇살 받아 따뜻해진 벤치에 앉아 햇살 담아 더 선명한 그의 근육과 힘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 남자의 상념과 고민이 쏟아져 내려 나를 덮쳐 버릴 것만 같다. 벌거벗은 몸 하나로 인간의 고뇌와 번민, 열정과 고통을 이처럼 깊고도 강렬하게 표현한 조각가는 로댕 이전에 없었다.
19세기 근대 회화의 역사를 연 화가들은 무수히 많지만 조각의 근대화를 이끈 이는 로댕 하나뿐이다. 사람의 몸으로, 그것도 벌거벗은 몸만으로, 인간의 희노애락을 심연까지 파고들어 표현을 해냈다는 것, 그것이 로댕을 위대하게 하는 점이다. 이전의 조각가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신화적 배경이나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그저 평범한 인간의 몸, 늙어가고 사라져 버릴 허망한 인간의 몸 하나로 기쁨과 슬픔, 사랑과 연민, 고독과 그리움, 고통과 번뇌를 표현한 것이다.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들> <발자크> 등 무수히 많은 조각상들이 낙엽 가득한 넓은 정원 구석구석에 무심하게 서 있다. 사람의 몸과 똑같은 크기의 조각상들 사이를 거닐며 만져 보기도 하고 멀뚱히 서서 바라보기도 한다. 하나하나 표정과 몸짓이 어찌나 처연한지 작품들 사이를 거닐 땐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만은 않다.
로댕 미술관은 조각 작품들도 감동이지만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저택이 정말 아름답다. 특히 정원이 파리에서도 손꼽힐 만큼 아름다워서 이 저택의 최초 주인이나 건축가가 아닌, 정원을 가꾸는 데 크게 기여했던 주인의 이름을 따 '비롱 저택(Hotel de Biron)'이라 칭하고 있다. 저택의 나이는 근 300년이 다 돼 가지만, 로댕 미술관으로 개관한 것은 100년쯤 전인 1919년이다.
열아홉과 마흔셋에 스승과 제자로 만나 뜨거운 사랑과 예술에의 열정을 나누며 눈부신 조각들과 세기의 스캔들을 남긴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과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1864-1943). 로댕은 자신이 살며 아틀리에로 사용했던 이 저택을 미술관으로 개관할 것과 그중 한 공간은 반드시 클로델의 작품 전시실로 꾸밀 것을 요구하며 전 작품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했다.
참, 다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로 가 보자. 그러면 폴의 말대로 로댕은 카미유와 결혼을 했던 것일까? 물론, 안 했다. 그러니까, 얄밉게도 여기저기에서 잘난 체를 해대던 폴이 틀린 것이다.
로즈와 헤어지겠다고 서약서까지 썼지만 로댕은 끝내 약속을 저버린다. 1917년 11월 로댕은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53년을 함께 살았던 로즈 뵈레는 그보다 먼저 2월에 생을 마감했고, 둘은 로즈가 죽기 2주 전에 결혼식을 올렸다. 이미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있던 카미유 클로델은 그 후로도 근 30년을 더 차가운 고독과 고통 속에 버려져 있다가 1943년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그녀에게 인생은 너무도 잔인했다. 평생을 끔찍이도 사랑하고 증오했던 연인도 떠나고, 자신에게 저주를 퍼 부었던 사람들도 떠나고, 맹렬히 탐닉했던 미와 예술에 대한 열정도 모두 사라진 후 홀로 남아 견뎌내야 했을 그녀의 길고 긴 어둠의 시간이 가슴 아프다. 천재적 재능과 불같은 사랑을 허락하였으면서 신은 대체 이 가여운 여인을 왜 그리도 야속하게 던져둔 것일까.
몸부림치는 조각상들과 키 큰 나무들 사이를 빠져나오니 햇살이 따뜻하다. 센 강에서 불어오는 여린 바람이 느껴진다. 산책하기 좋은 아담한 공간에 작은 카페도 있다. 여자 둘이 벤치에 앉아 커피와 샌드위치를 사이에 두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 아, 누구라도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눈부신 오후, 이 아름다운 공간에 나만 혼자라는 게, 버려진 여인마냥 오늘은 문득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