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 노동과 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파견의 범위를 확대하는 파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파견노동자가 처한 현실과 마주하기 위해, 기자 명함을 버리고 파견노동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지난 2~3월에 걸쳐 한 달 동안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여러 공장에 취업해 보고 듣고 겪은 것을 기록했습니다. 그 기록을 공개합니다. [기자말]
박근혜 대통령님께
대통령께서는 집권여당에 대한 심판으로 끝난 20대 국회의원선거 이후, 소통에 나섰습니다. 그 첫 번째 행보로 지난 4월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을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파견법 개정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파견법 (개정)이야말로 일석사조쯤 된다"고 말했습니다. 9만 개의 일자리가 생겨, 실업자나 은퇴한 중장년층이 치킨집을 여는 대신 제조업 등에서 계속 일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통령 말씀에 제 부모님 생각이 났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과거 치킨집·노래방 등을 운영했습니다. 장사가 안 돼 가게를 접었고, 두 분은 지금 파견·용역 회사를 통해 청소와 경비일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 5시에 출근하는 두 분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저희 부모님은 저임금과 고용 불안정에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다음 해고자가 당신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고 있습니다.
파견법 개정으로 일자리가 늘어나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파견법은 파견노동자를 저임금·장시간 노동과 차별의 수렁에 빠뜨린 지 오래입니다. 파견의 범위를 확대하는 파견법 개정에 많은 이들이 큰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지난 2월 경기도 안산·시흥의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파견법 개정을 호소하는 기업인들을 만나 "중소기업하는 분들은 애국자인데, 이렇게 피눈물 나게 하는 게 맞는 일이냐"라고 했습니다.
누가 대통령의 귀를 막으려는 것일까요? 만약 대통령께서 이곳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를 만났다면, 생각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1970년 열여덟 살의 대통령께서는 청와대에 있었습니다. 그해 11월 청와대에서 멀지 않은 서울 평화시장에서는 스물두 살의 재단사 전태일이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죽어가면서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고 외쳤습니다. 한 달 전 전태일은 이곳 노동자들이 좁은 골방에서 하루 13~16시간 일하고, 한 달에 이틀밖에 쉬지 못한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노동청에 제출했습니다. 이는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처음으로 알려진 계기였습니다.
그로부터 46년이 지났습니다. 2016년 파견노동자의 삶은 1970년 평화시장 노동자의 삶보다 크게 나아졌을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루 12시간을 꼬박 공장에서 보내야 하고, 주말에도 일해야 합니다. 주 5일 근무와 저녁이 있는 삶은 최저임금을 받는 이들에게는 남의 나라 얘기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지난 2012년 8월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시절, 전태일 동상에 헌화하면서 "노동자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쉬운 해고', '저성과자 해고'를 가능하게 하는 고용노동부 지침으로 노동자들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또한 파견 노동을 확산시킬 파견법 개정안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기업인들이 애국자라면, 파견노동자도 애국자입니다. 이들의 피눈물을 닦아줘야 할 책임이 대통령께 있습니다. 저는 지난 2~3월에 걸쳐 한 달 동안 기자가 아닌 파견노동자로서,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여러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제가 보고 듣고 느낀 가혹한 노동 현실을 기록했습니다.
대통령께서 제가 기록한 기사를 보고 파견노동자가 처한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노동자가 행복한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다시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1년 10개월 뒤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에게 박수를 받고 퇴임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 2016년 5월 1일 126주년 노동절에 부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