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국립도서관이다. 파리의 국립도서관에서 시를 읽고 글을 쓰는 고급진 경험을 해봐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프랑시스 잠이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라면 잘 어울릴 것 같다. 백석과 윤동주의 시여도 좋겠다. 파리에서 읽는 백석과 윤동주라니!
릴케의 소설 <말테의 수기>에 등장하는 파리 국립도서관. 그곳에서 말테가 읽는 프랑시스 잠의 시. 그리고 프랑시스 잠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사랑한 시인 백석과 윤동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두가 연결되는 느낌이다. 심지어 윤동주의 삶이 영원히 안타까운 스물여덟 해로 멈춰 버린 것과 소설 속 말테가 파리에 머물며 프랑시스 잠을 읽은 것이 스물여덟이었다는 것까지. 그래. 오늘은 파리 국립도서관이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넬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국립도서관으로 향하는 내내 입 속에서는 벌써 익숙한 시구가 맴돌고 있었다.
"나는 여기 앉아서 한 시인의 작품을 읽고 있다. 열람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을 느낄 수 없다. 그들은 책에 몰두해 있다. (...) 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어쩌면 가장 가난하고, 게다가 외국인이기까지 한 내가 시인을 앞에 두고 있다는 건 무슨 운명인가." <말테의 수기>에 나오는 파리 국립도서관 장면이다. 릴케는 조각가 로댕에 대한 평론을 써 달라는 위촉을 받고 파리에 온다. <로댕론>을 쓰고 그의 작업실에 비서로 머물며 로댕의 예술관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이후 작은 하숙집에 머물며 도시의 고독과 절망, 인생과 시의 본질에 대해 고뇌하며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다. 이때의 파리 체험을 바탕으로 후에 로마에서 쓰기 시작한 소설이 <말테의 수기>이다. 스물여덟의 가난한 무명 시인 말테는 결국 릴케 자신이다.
"내가 읽고 있는 시인은 베를렌이 아니다. 파리에 사는 시인이 아니다. 전혀 다른 시인이다. 그는 산 속에 조용한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맑은 공기 속에 울려퍼지는 종소리처럼 울리는 시인이다. 자기 집 창문이나 아련히 먼 곳을 생각에 잠겨 반사하는 책장의 유리문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는 행복한 시인이다. 바로 이런 시인이 내가 되고 싶은 시인이지." 말테는 베를렌이 아니라 프랑시스 잠을 읽는다. 랭보와의 파격적인 사랑으로 유명하며 보들레르의 상징주의 계보를 잇는 시인 베를렌이 아니라 프랑시스 잠. 욕망과 환영이 가득한 도시를 등진 채 산속에 머물며 전원의 평화로운 생활을 노래한 시인, 손때 묻은 오래된 물건과 소박한 서정을 노래한 시인, 우유를 담고 빵을 만들고 구두를 수선하고 씨앗을 뿌리고 달걀을 거두어들이는 일을 노래한 시인. 말테는 그런 시인이 되고 싶다 말한다.
센 강변의 고물상이나 헌책방을 기웃거리며 한가하고 지루한 삶을 꿈꾸기도 하고 유년시절의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고향을 떠나 낯설고 적막한 남의 나라 도시 한복판에 놓인 가난하고 젊은 시인은 온기 없는 6층 다락방에서 밤을 지새우며 사랑과 인생과 시에 대해 고민한다. 밤의 적막을 잊기 위해 쓰고 또 쓴다. 욕심 없이 겸허하고 따뜻한 시를 쓰고 싶다는 꿈을 꾼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아무도 돌보는 사람 없이 문이 굳게 닫혀 있는 많은 농가들 중, 어느 한 곳에서 살 수가 있다면, 나도 한 사람의 시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방 한 개만으로도 족했을 텐데. 거기서 나는 오래된 내 물건들, 가족의 초상화들, 무엇보다도 책과 함께 살았을 텐데. (...) 다만 노란 상앗빛 가죽으로 묶인, 오래된 꽃무늬가 그려진 책 한 권. 거기에다 글을 써넣었을 텐데. 많은 것을 써넣었을 텐데. 왜냐하면 나는 많은 생각과 수많은 사람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으니까."
몽파르나스에서 루브르로 이동한 후 어제 걸었던 그 길을 다시 걷는다. 근처에 국립도서관이 있다는 표지를 어제 보았는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보이질 않는다. 루브르 앞 광장의 부티크와 카페를 기웃거리며 어제 얼핏 본 도서관 표지판을 부지런히 찾아본다. 오페라 쪽으로 하염없이 걷다 보니 안내 표지가 보인다. 한국 식료품점 K-mart도 우연히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들어가 김치 사발면과 맥주, 김밥과 물을 샀다. 부자가 된 기분이다.
몇 개의 골목을 돌고 돌아 마침내 도서관을 찾았지만 이런 젠장, 야속하게도 공사 중이다. 도서관 담벼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돌아선다. 헛헛한 마음 때문인지 갑자기 출출해진다. 요 앞 공원에서 점심이나 먹고 가자 싶다. 입구가 철문으로 잠겨 있길래 공원을 반 바퀴 돌아 맞은편 입구로 갔다. 그런데 여전히 같은 모양새다. 이상하다. 도서관이 공사 중이라 공원도 출입금지인가? 혹시나 하고 철문을 밀어 보니 스르르 열린다. 이런 허무할 때가! 손으로 만져 보고 한 발 디뎌 보면 쉽게 해결될 일을 우물쭈물 망설이다 얼마나 많이 놓쳐 버리곤 하는지. 하물며 물설은 남의 나라에서야.
공원에 앉아 멋진 분수대를 바라보며 K-mart 김밥을 꺼내 먹는다. 한 줄에 4유로 99센트 하는 김밥이 서울에 흔한 천 원짜리 김밥만 못하지만 배고픈 방랑자에겐 꿀맛이다. 옆 벤치엔 바게트를 뜯고 있는 프랑스 엄마와 꼬마. 그 옆엔 한국식 포장 도시락을 먹고 있는 중국인 부부와 딸 둘. 그 옆엔 동네 친구 같은 프랑스 엄마 둘, 그리고 스카이 씽씽과 미끄럼 타기에 한창인 그녀들의 아들 딸들.
백여 년 전 파리의 이방인 말테가 그랬던 것처럼 국립도서관에 앉아 프랑시스 잠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백석과 윤동주를 읽겠다던 야무진 꿈은 끝내 이루지 못했지만, 도서관 앞 공원, 놀러 나온 파리 8구 주민들 틈에 앉아 먹은 김밥과 대낮의 맥주 한 캔은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시간은 느리기만 한데 입속을 맴도는 구절들. 육첩방은 남의 나라, 6층 다락방도 남의 나라, 파리 8구의 작은 공원도 남의 나라...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백석과 동경 육첩방의 윤동주와 파리 6층 다락방의 릴케. 모두들 한데 모이면 참 재미날 텐데. 술이라도 한 잔 들어가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좋아하는 '프랑시스 잠'의 시를 이야기하며 날이 새도록 즐거워할 텐데. 남의 나라 도서관 앞 작은 공원에서 꾸역꾸역 상상해 보는 그림 같은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