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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백>의 한 장면.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최승호 감독이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자백>의 한 장면.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최승호 감독이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 뉴스타파

지난 7일 폐막한 17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화제는 MBC <PD수첩>전 PD로 잘 알려진 최승호 감독이 간첩 조작 사건을 다큐멘터리 영화화한 <자백>이었다. 매회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반응도 좋았고 다큐멘터리상과 넷팩(NETPAC)상을 수상, 2관왕의 영예를 얻었다.

당사자는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해 간첩 혐의로 기소된 탈북자 홍강철씨(1, 2심에서 무죄 선고)의 변호인단으로 활동하는 김인숙 변호사를 만났다. 김 변호사는 민들레 법률 사무소 소속으로, '민들레 국가 폭력 피해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대표를 맡고 있다. 다음은 지난 17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김 변호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진실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언론인 그린 영화"

 김인숙 변호사
김인숙 변호사 ⓒ 이영광

-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유우성씨 등 간첩 조작 사건을 영화로 만든 <자백>이 상영됐잖아요. 홍강철씨 변호인으로 활동하셔서 느낌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이미 알고 있던 것이어서 내용 자체는 크게 새로운 건 없었어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잘 만든 다큐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첫 상영 때 보셨는데 분위기는 어땠나요?
"영화관에 젊은 분들이 많이 오셔서 진지하게 보셨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는데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은 '이런 영화를 만들면서 겁나거나 무섭지 않았느냐' 혹은 '위협을 느끼지 않았느냐'라는 거였어요. 그리고 영화제 담당자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했어요. 이런 질문을 하는 걸 보고 정말로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에 의한 탄압이나 공포를 갖고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최승호 감독님께 내용에 대해 공감한다든지, 영화에 나오는 저 사람들이 지금은 어떻게 지내느냐 등 영화 자체에 대한 질문보다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두렵지는 않았냐는 질문들이 많이 나와 씁쓸했습니다. 우리가 이 두려움을 극복해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이 공포는 어떻게 해야 이겨낼까요?
"제일 먼저 부당한 공권력 집행 즉, 사찰이나 조작 등을 우리가 용납하지 않고 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들도 법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리고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 그래도 지금은 어디 끌려가거나 하진 않잖아요?
"네. 지금 그러진 않죠. 그렇지만 악랄한 방법으로 조작하거나 공작하는 일이 이뤄지잖아요. 간첩 사건을 조작하고, 정치적 악성 댓글을 달고, 종북 프레임으로 민주 세력들이 제대로 활동을 못하게 하는 일이 이어져 옵니다. 그래서 최 감독님도 '국정원은 하나도 안 변했다'는 말씀을 하시는 거죠."

- 왜 변하지 않고 계속 간첩을 만들어낼까요?
"그건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리가 민주 정권 10년이 있었지만, 그 외 정권에서 지금까지 친일과 반민주 세력의 기득권이 청산되지 않고 오히려 견고해졌어요. 또한 국가기관을 부당하게 이용해 안보위협을 부추겨 정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죠."

-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떠셨어요?
"유우성씨 사건 땐 변호인단에 합류하지 않고 홍강철씨 사건부터 했어요. 최승호 PD님이 홍강철씨 사건을 지속해서 취재를 하셨어요. <자백>이라는 영화가 어쩌면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지만 반드시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내용이기 때문에, 잘 만들면 좋겠고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국정원의 간첩 조작 등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인이 보기에도 어렵지 않게 잘 만드신 것 같아요. 영화의 흐름을 따라 보시면서 많은 생각을 하실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 인상 깊은 장면은 무엇이었어요?
"영화에서 유가려씨나 홍강철씨가 고생한 이야기는 제가 충분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최 감독님의 직업 정신에 대해서 새삼 감동했어요. 영화 장면 중에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과 관련하여 재판에 참석했던 국정원 직원들과 인터뷰 하려고 그들의 자가용을 막아서는 장면이나, 우연히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만나서 인터뷰하겠다고 남자 화장실 앞을 서성거렸던 장면 있잖아요.

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만나서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면서 끝까지 쫓아가는 모습도 나와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인터뷰하실 때 최 감독님을 막는 사람들을 물리치면서 끝까지 사과하라고 하는데, 원 전 원장이 우산으로 가리잖아요. 그 우산이 들췄을 때 원 전 원장 부부가 웃는 듯한 표정은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자백>은 국정원의 간첩조작을 고발하는 내용만이 아니라 언론인이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을 잘 그린 것 같아요."

- 언론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언론이라는 게 민주사회에서는 정말 중요한 기능을 하잖아요. 그런데 요즘 뉴스를 보면 종편 등에서 온갖 왜곡보도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대다수 언론이 정부가 특정한 입장이나 정책을 발표하면 마치 속기사처럼 그냥 받아쓰잖아요.

무엇이든 묻지 않는다면 언론이 아니지요. 보도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사실을 확인해서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한다면 반드시 눈으로 확인하고 자료를 수집해서 100%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개연성 있는 내용을 보도해야 하는데 최 감독님이 <자백>에서 보여준 모습이 바로 그 모습 같아요."

- 영화를 보면 변론 과정이 생각났을 것 같아요.
"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제가 국가보안법 사건을 본격적으로 맡았던 게 지난 2011년 왕재산 사건이었어요. 변론하면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많이 배운 사건이었는데 홍강철씨 사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겪은 왕재산 사건이나 유우성씨, 홍강철씨 사건은 한두 명의 변호사가 아니라 7~8명이 팀을 이뤄서 변론한 사건이었어요. 고생하면서 사건을 풀어나갔던 동료 변호사들과 검사님들 판사님들 생각이 났었습니다."

"국정원 내부에서 '못 해먹겠다'는 목소리 나와야"

 지난해 10월 20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정감사에 앞서 김수민 2차장과 이헌수 기획조정실장이 정보위 소속 의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20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정감사에 앞서 김수민 2차장과 이헌수 기획조정실장이 정보위 소속 의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 '민들레 국가 폭력 피해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유우성씨나 홍강철씨를 변호하면서 좀더 체계적으로 간첩조작 등을 당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이뤄졌죠. 그래서 변호사들과 시민 사회운동을 하는 분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단체입니다. 아직 2년이 안 되었지만 현재 국가기관으로부터 억울한 피해를 본 사람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이 후원을 하고 계시는데 국가폭력피해자들을 위한 변론지원과 생활비지원, 정책대안 등의 사업을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 간첩 조작 사건을 맡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처음 어떻게 변론하게 되셨어요?
"저는 특별히 간첩 사건이라고 해서 어렵거나 주저하진 않았어요. 간첩이든 아니든 변호사가 필요하면 변론해야죠. 그런 면에서 저는 특별히 꺼려지진 않았어요. 후배인 장경욱 변호사와 같이 왕재산 사건을 하면서 국가보안법 사건을 하게 되었지요.

제가 변호사 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두 가지 원칙을 세웠거든요. 먼저 누구든 필요한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성경에 나오는 말씀처럼 배가 고픈 사람에게는 빵을 주고 목이 마른 사람에게는 물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데, 괜찮다는 말로 배가 부르거나 갈증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변호사로서 의뢰인들에게 필요한 변호를 하자고 생각했고 다음은 누구든 자기가 감당할 책임 이상을 지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혹여 살인자라고 하더라도 변호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간첩도 변호사가 필요하죠. 더군다나 억울하다고 무죄를 주장할 경우에는 달려들어서 정말 이 사람이 무죄인데도 부당하게 기소되는지를 따져야 하죠."

- '변호사가 필요하다면 변론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요즘 로펌 김앤장이 일본 전범 기업이나 옥시 변호인으로 참여해서 비판이 있는데 어떻게 보세요?
"제가 말한 대로 모든 사람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어요. 이건 헌법상 보장된 거예요. 하지만 변호사로서 조력하는 경우에도 한계가 있지요. 대상보다는 구체적인 변론과정에서 사실관계를 왜곡시키거나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윤리조차 지키지 않는 것까지 인정되는 것은 아니지요.

변호사는 오히려 법조인으로서 정의나 평등, 자유, 인권 등을 당연히 전제하고 변론활동을 하는 거죠. 그런데 지금 논란인 되는 김앤장 사건의 경우에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좀더 지켜봐야 하지만, 만약 재판을 위해서 특정한 부분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그 부분이 일반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내용이었다면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 20대 국회가 여소야대잖아요. 그래서 '국정원 개혁'에 대한 기대가 있어요.
"국정원이 국내에서 정보 수집을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금지해야 해요. 국내에서 불법으로 정보를 수집하거나 부당하게 사용할 경우 아주 엄하게 처벌해야 하고 해외파트에서 역량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개혁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국정원도 국가기관인데 조롱과 멸시를 받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자존감을 해치는 활동을 하는 것은 국가가 잘못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국정원에 아무나 못 들어갑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들어갑니다. 똑똑한 사람을 뽑았으면 일을 제대로 시켜야지 댓글 다는 걸 시켰으니, 얼마나 자괴감과 자기비하를 느끼겠습니까. 스스로 모멸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오히려 화를 내야겠죠. 밖에서만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못 해먹겠다, 내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뭘 해보겠다고 국정원에 왔는데 쓸 데 없이 사찰이나 시키고 정치인들 비리를 캐거나 댓글을 달게 한다'고 항의하는 등 안에서 개혁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외국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멋있고 능력 있는 정보수집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요즘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잖아요. 여러 언론기관이 조롱을 받지만 그래도 <오마이뉴스>는 신뢰받는 언론 매체입니다. <오마이뉴스>를 보시는 분들이 이번에 기회가 된다면 <자백>이라는 영화 많이 봐주시면 좋겠어요. 그래서 널리 알려주시고 더불어서 이 영화에 나오는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민들레 국가 폭력 피해자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단체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김인숙#자백 #홍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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