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시차의 한계가 있어 직접 소통이 어려운 탓에 가벼운 마음으로 번역가와 출판사를 찾아간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한강은 맨부커상을 받았다. 그는 상을 받고난 이후의 7일을 "(상을 받아) 기쁘고 고맙다고 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헤아려보고자 많은 생각을 했던 일주일"이었다고 말했다.
예상을 하지 못했는데도 어떻게 담담할 수 있을까. 작가 한강은 그 이유를 <채식주의자>(2007)가 "10년 전에 썼던 소설"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렇게 많은 10년의 시간을 건너서 이렇게 먼 곳에서 이 소설에 상을 준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지난 17일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는 채식을 하려는 주인공 영혜와 그를 둘러싼 가족들 간의 갈등을 섬세한 필체로 그린 소설이다. 그는 이 소설이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계를 우리가 견딜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
그 질문은 소설 속에서 분명한 답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는 답을 내지 않고 계속 다음 소설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그 다음에 한강이 쓴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2010)는 '그렇다면 우리는 폭력적인 삶을 살아내야 하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다음 소설 <희랍어 시간>(2011)은 다시 '정말 살아내야 한다면, 인간의 어떤 지점을 바라보면서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2년 전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는 폭력적인 상황에서 존엄을 지키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질문을 담았다고 한다.
24일 동교동 한 카페에서 작가 한강의 신작 소설 <흰>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한강은 조용하고 또 단호하게 여러 질문에 대한 답을 했다. 한강의 대답을 4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1 독자] "독자는 2만 명이면 충분하다"
소설 <채식주의자>는 이미 27개 나라와 계약이 됐다. 라트비아어부터 인도 남부 지역의 소수 언어로까지 출판을 하고 싶다는 연락이 쇄도하고 있다. 출판사 관계자에 따르면 5월 광주 항쟁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 역시 10개의 국가와 계약이 체결된 상태다.
한국에서의 반응도 뜨겁다. 맨부커상을 받는다고 최종적으로 결정된 날 <채식주의자> 2만 부를 추가로 증쇄했지만, 이후 추가로 7쇄를 더 찍었다. 한강은 이에 대해 "상을 받기 전에도 2만 부 정도 나간 걸로 알고 있다, 이미 많이 나갔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10년에 2만 부, 1년에 2000명의 독자, 한강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한편 독자들에게는 "세상에 어려운 소설이나 시는 없다고 생각한다, 문학 작품을 대답으로 여기지 말고 이 질문과 움직임이 뭔지 생각하면 더 재밌게 받아들일 수 있다"라면서 마음을 열고 작품을 읽어주길 청했다. 또한 "한국에는 정말 좋은 선후배 작가들이 많다, <채식주의자>만 읽지 말고 훌륭한 분들의 글을 읽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한강은 자신이 그만큼 한국 문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스스로 "나는 글자 그대로 한국 문학 속에서 자라난 사람"이라고 했다. 아버지 한승원의 영향으로 유년 시절부터 책과 친숙하게 지냈기 때문에 한국 문학에 "커다란 애정과 빚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일이 화제가 되지도 않을 만큼 앞으로 한국 문학은 많이 읽힐 거고 번역도 많이 될 거다, 이제 시작"이라고 한국 문학에 대해 자부심을 드러냈다.
[#2 번역] "번역은 흥미로운 작업"
한강은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한 자신의 책 <채식주의자>를 보내왔을 때 무척이나 반가웠다고 했다. 그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됐지만 자신의 작품을 읽을 수 없었던 것에 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외국어인 영어로 다시 책 <채식주의자>를 읽을 수 있었던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는 <채식주의자>의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와 이메일로 여러 메모와 질문을 오가며 대화를 나눴다. 영문 <채식주의자>에 대해서 "원본에 충실하게 번역됐다"고 기뻐했다. 한강이 소설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나는 문장의 톤(tone)이다.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는 그런 한강의 생각을 옮긴듯한 번역을 해냈다고.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영혜의 독백을 데보라는 한강 작가가 썼던 톤 그대로 번역을 해서 "마음이 통했다"고 느꼈다고 한다.
한강 또한 번역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작년 영국 노리치의 번역 워크숍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한 페이지 정도의 분량을 일주일 동안 번역하는 작업을 했다. 하나의 문장을 영어로 옮길 수 있는 10개의 가능성을 생각했다. 과연 이렇게 해서 끝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결국 끝이 났다. 한 줄의 문장을 옮기는데 이렇게 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면 번역은 흥미로운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번역가가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학을 옮기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3 글] "글을 쓰면서 독자를 생각하지 않을 때가 있다"
한강은 맨부커상 이후의 갑작스러운 유명세에 대해 웃으며 "오늘 지하철을 타고 왔는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면서도 "바라건대 예전처럼 살고 싶다"라고 답했다. 이어 "오늘 이 자리가 끝나면 얼른 돌아가서 작업을 마저 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의 각오를 묻는 말에도 "글을 써가면서 책의 형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방에 숨어서 글을 쓰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맨부커상을 받는 날 "오늘만큼 기쁜 날이 있었느냐고 누군가 물었는데 당연히 그렇다, 기쁜 건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앞으로도 맨부커상이라는 성취에 흔들리지 않고, 계속 그랬던 것처럼 글을 열심히 쓰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상하게 작품을 쓰면서 독자도 생각하지 않을 때가 있다. 오로지 이 소설을 완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사이에서 끝이 났다."[#4 흰] "인간의 눈부심을 담은 소설"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말을 모르던 당신이 검은 눈을 뜨고 들은 말을 내가 입술을 열어 중얼거린다. 백지에 힘껏 눌러쓴다. 그것만이 최선의 작별의 말이라고 믿는다.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 - 소설 <흰> 중에서.2014년 여름부터 반년 간, 한강은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었다. 바르샤바라는 도시는 2차 세계대전 중 90%가 폭격으로 파괴됐고 재건됐는데, 그는 그 도시와 닮은 사람을 상상했다고 한다. <흰>(The Elegy of Whiteness)이라는 소설을 쓰게 된 동기다.
"더럽히려야 더럽힐 수 없는 투명함과 생명, 빛과 밝음, 눈부심 같은 것들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투명한, 깨져도 다시 복원될 수밖에 없는, 그렇게 믿고 싶은 지점을 책으로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쓰게 됐다."신작 <흰> 속에는 온갖 '흰 것들'이 들어있다.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베넷 옷부터 수의, 흰 손수건이나 흰 나비 같은 흰 소품 65개가 소설 <흰>을 이룬다.
한편, 신작 <흰>은 단순히 소설 속 텍스트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한강은 이번 신작에서 시각 예술가 차미혜와의 협업을 경험했다. 성북동 스페이스 오뉴월의 이주헌 한옥 갤러리에서 6월 3일부터 26일까지 '소실점'이라는 이름의 전시를 진행한다. 한강의 작품을 텍스트가 아닌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