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마트가 우리에게서 빼앗은 것들>(신승철 저)이란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편리한 마트 뒤에 숨은 자본주의의 은밀한 욕망'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인데요. 저자는 골목상권의 붕괴와 살수록 가난해지고 있는 현실 뒤에는 대형마트가 있음을 지적합니다. 오마이뉴스는 'NO마트, GO시장'을 기획하고 그 첫 번째로 이희동 시민기자의 연재, '좌충우돌' 사회적경제를 통해 대형마트의 대안으로 재래시장이 갖는 사회적 함의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
이번 주말 28, 29일 서울시 강동구 길동에 위치한 길동복조리시장에서 전통시장 축제 '가장(家場)'이 열린다. '가족이 함께 가는 장'이란 의미의 가장은 전통시장 활성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길동복조리시장 신시장모델육성사업단이 올해 4월부터 11월까지 매월 넷째 주 주말마다 진행하는 지역의 작은 축제다.
가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가족의 건강한 먹거리가 있는 '먹장', 가족이 함께 공부하는 '책장', 그리고 가족이 함께 추억을 입는 '옷장'이 바로 그것이다. 우선 먹장부터 살펴보자. 사실 먹거리는 전통시장과 마트를 가장 크게 구분 짓는 요소 중의 하나이다. 마트에서도 푸드 코트 등에서 먹거리를 팔지만 전통시장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지극히 친숙한 모습으로 우리의 오감을 유혹하는 전통시장의 먹거리는 그 분위기만으로도 마트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길동복조리시장에는 예전부터 먹거리와 관련하여 30년 이상의 경력을 자랑하는 재야의 고수가 많다고 한다. 전통조리법으로 잔뼈가 굵은 그들이 이제는 시대에 맞춰 새로운 메뉴를 선보인다고 한다. 그러니 가장의 먹장을 기대할 수밖에.
다음 책장은 가장이 준비한 회심의 아이템이다. 길동복조리시장 바로 옆에는 강동구에서 가장 큰 강동도서관이 있다. 사업단은 도서관과의 협조를 통해 축제에 온 가족 단위의 참가자들이 도서관에서 여러 프로그램들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빠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동화책을 만드는 등 책장에는 기존의 전통시장 축제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축제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이다. 아무리 먹거리를 가지고 사람들을 유인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시장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으면 축제는 원활하게 진행될 수 없는데, 책장은 시장에 온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붙잡는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책장은 전통시장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시장이 단순히 물건만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주위의 다른 공간과 연계함으로써 그 기능을 얼마나 확장시킬 수 있는지 책장은 증명한다. 시장에 왔다가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그리고 그것이 추억으로 남고. 결국 책장은 시장에서 추억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옷장은 가장의 뜬금없는 발상이다. 주최 측은 참가자들에게 한복을 대여해주고 그들이 함께 추억을 만들게끔 했다. 전통시장에서 전통 옷을 입고 전통식품을 먹는 것이 전통적인 풍경이라는 촌스러운 도식인데, 막상 그 계획에 따라 한복을 대여하고 있는 알바생들을 보면 안쓰럽다는 생각부터 든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낯선 발상이 의외로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복을 빌려 입는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복을 빌려 입고 돌아다니듯이 서울의 작은 시장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한복을 입고 돌아다닌다.
이는 결국 시장이란 공간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 때문인데, 사람들은 시장을 마트와 같은 공간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마트가 단순히 상행위를 위한 무균질의 공간이라면 시장은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있는 삶의 역동적인 장소다. 사람들은 한복을 입음으로써 그 시장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을 떠올린다. 시장에 한복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만큼 시장을 우리가 일궈낸 전통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가장은 위의 세 가지 장 외에도 토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어린이 노래자랑과 라이징 스타 대회를 연다. 이는 전통시장을 찾아왔던 주민들과 하루 종일 수고했던 상인들이 모두 모여 하나 되는 자리로서, 가장은 이 행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전통시장의 의미를 되새긴다.
전통시장은 단순히 물건만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함께 이웃하는 주민들이 상행위를 매개로 만나는 자리이며,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공간이다. 마트는 끊임없이 개인들을 파편화 하고 자본에 대한 종속을 강요하지만, 전통시장에는 믿고 오는 단골이 있으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덤이 있다. 결국 전통시장은 상행위 이전의 사람들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공간인 것이다.
사회적경제와 전통시장 활성화
단순한 상행위를 사람 간의 관계로 치환시키는 전통시장의 힘. 따라서 사회적경제는 전통시장의 활성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마트보다 전통시장에 사회적경제 조직이 쉽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비록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경제가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자활기업 등만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편협하게 해석되고 있지만 결국 사회적경제의 중심은 사람으로서, 전통시장이 지향하는 가치와 일맥상통한다.
경제행위를 하는데 있어서 자본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고, 자본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로서 대우 받으며,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조금 더 나은 삶인 사회적경제는 모든 것이 전통시장의 가치와 맞닿아 있다. 결국 전통시장이 추구하는 것도 자본을 넘어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이며, 그 관계 속에서 맺어지는 공동체, 그리고 그 공동체를 통한 다수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돈의 흐름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회적경제와 전통시장은 둘 다 대자본 중심성에 반대하며 지역의 선순환 구조에 주목한다. 대자본이 운영하는 마트는 지역의 돈을 중앙으로 보냄으로써 오히려 지역을 피폐하게 하지만, 사회적경제와 전통시장은 그 지역의 돈을 지역 내에서 순환시킴으로서 그 지역을 풍요롭게 하고자 한다. 지역과 괴리된 사회적경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으며, 전통시장은 그 자체가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사회적경제의 확산에 있어서 전통시장의 활성화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전통시장 활성화는 단순히 시장 상인들의 매출을 늘리는 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지역 주민들 간의 관계를 복원하고, 그 지역이 지니고 있는 역사성을 기록하는 동시에,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작업으로서 사회적경제의 활성화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공동체가 만들어지면 신뢰가 쌓이고, 결국 사회적경제는 그 신뢰를 바탕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마트 대신 시장으로최근 몇 해 동안 우리 사회에 사회적경제가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그만큼 기존의 자본주의 체계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의미한다. 비록 사회적경제가 그 대안이라고 100% 말할 수는 없지만, 사회적경제의 확산은 사람들의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며, 사람들을 최소한 절망에 빠뜨리지 않게 하고 있다.
지금 이 시점, 전통시장이 활성화 되어야 하는 이유 역시 같다. 현재의 마트 중심의 유통 시스템은 기존의 질서를 공고하게 하며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강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라도 전통시장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 그것은 단지 과거의 시스템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상을 하는 것이며,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던 공동체를 부활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강동구 길동복조리시장 축제에 많이들 오셔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