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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사라진다. 글로벌 저성장 기조와 기술의 발달은 우리 모두를 일자리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평생직장의 시대는 오래 전 끝났고, 100세시대 누구나 2~3번의 일(業)을 해야 생존한다. 국가도 사회도 답해줄 수 없는 문제, 결국 개인이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내 일은 내가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다. 직장을 다니면서, 또는 홀로서기를 통해 '1인기업'을 운영해온 이들에게서 답을 찾고자 한다. '직장 다닌다고 직업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한 '1인기업가'들의 경험담을 통해 해법을 찾아본다. [편집자말]
 2011년 도자기 카네이션을 최초로 기획 제작한 도예작가 김소영씨. 김씨는 도자기를 시작한 지 10년만인 8월30일 신사동 아트스페이스 남케이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다.
2011년 도자기 카네이션을 최초로 기획 제작한 도예작가 김소영씨. 김씨는 도자기를 시작한 지 10년만인 8월30일 신사동 아트스페이스 남케이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다. ⓒ 김소영

블로그 2만명, 페이스북 1만4000명, 인스타그램 1만4000명, 팔로어 수가 이 정도면 연예인급 인기인이다. 도자기로 만든 카네이션과 액세서리, 트레킹과 클라이밍을 즐기는 젊은 여성의 사진으로 뒤덮인 SNS의 주인공은 5년차 1인 기업 도자기공예 작가 김소영씨다.

처음부터 공예(도자기)를 전공할 생각은 아니었다. 미대 1학년 말 전공 선택 시 섬유디자인을 지망했지만 경쟁이 치열해 차선책으로 도자기공예를 선택했다. 흙을 다루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마음먹은 대로 빚어지지도 않고 900℃의 가마에서 초벌, 재벌 등 제작과정도 상상이상의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3~4학년 시절엔 아예 학교에서 살다시피 하며 도자기와 씨름했고 어느새 도자기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산티아고 가려고 도자기 카네이션 제작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 지치기도 했고 졸업 때가 되니까 돈을 벌어야 했어요. 도자기는 잠시 접어두고 온라인 쇼핑몰에 입사했어요. 창업의 꿈이 있었기에 쇼핑몰 경험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7개월 일한 후 퇴사했고 지인의 카페에서 매니저로 일하던 중 3~4개월 구직활동을 했지만 취업이 쉽지 않았어요."

돌파구가 필요했다. 스무 살 적 버킷리스트에 올려둔 산티아고 순례길이 떠올랐다. <연금술사>의 파울로 코엘료가 걸었던 길, 책을 읽으며 마음속에만 담아뒀던 그 일을 지금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모아둔 돈은 바닥났고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2011년 8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이후 김씨는 도자기 카네이션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2011년 8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이후 김씨는 도자기 카네이션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 김소영

"여행 경비를 모으기 위해 도자기를 만들어 팔아야겠다 생각했어요. 도자기 하면 흔히 그릇을 떠올리는데 저만의 독특한 아이템을 만들고 싶었어요. 마침 어버이날을 앞두고 있어서 카네이션 액세서리를 만들어 트위터로 홍보했더니 반응이 괜찮았어요."

2011년 당시 김씨는 팔로어 1만 명을 지닌 파워 트위터리안이었다. 카페에서 일하는, 강아지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랑스런 소녀 이미지의 SNS스타였던 것. 2주 동안 트위터로 도자기 카네이션 60여 개와 반려동물 목걸이 등을 팔아 300만 원을 벌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전히 자신의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번 돈 300만 원으로 그 해 6월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

"산티아고는 도자기 카네이션을 시작하게 된 계기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진짜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낯선 곳을 혼자 여행하면 도전정신이 생기고 자신의 한계를 깨고 싶어지게 돼요. 그것이 앞으로의 내가 되는 거죠. 그때 마음 한켠 꿈으로만 접어둔 도자기를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하지 않으면 이 다음에 영영 후회할 것 같았어요."

 생화와 흙카네이션의 만남(초벌 들어가기 전 모습. 왼쪽). 도자기 카네이션 브로치 2011년(맨위)부터 2016년(맨아래).
생화와 흙카네이션의 만남(초벌 들어가기 전 모습. 왼쪽). 도자기 카네이션 브로치 2011년(맨위)부터 2016년(맨아래). ⓒ 김소영

2011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도자기 카네이션 작업을 시작했다. 지인의 작업실에서 밤샘 작업을 하며 더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매대를 펼쳐놓고 파는 것은 물론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통한 온라인 홍보도 열심히 했다. 그 결과 2012년 3~4월 두 달 동안 총 600개, 이전 해의 10배를 더 팔았다. 그렇게 번 돈으로 부모님께 진 빚을 갚고 작업실도 차렸다.

"학교 때부터 리더십이나 창업에 관심 있어 관련 수업도 일부러 찾아서 들었어요. 창업 초기엔 창업가 모임에도 자주 나갔는데 어른들이 보기엔 젊은 여자가 도자기로 사업을 하겠다니 가당치도 않아 보였나봐요. 도자기로 무슨 사업을 할 수 있겠느냐며 무시할 때 저는 되레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때 도자기로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성공해보겠다고 결심했죠."

"도자기로 성공해보겠다" 결심...  '벌고, 투자하고, 갚고, 빌리고' 반복만

사업 초기엔 한마디로 거지신세였다. 작업실이 없어 돈을 빌려야 했고 문화센터, 방과후교실 등에서 어린이 미술 강습을 병행해야 했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시던 부모님이 일을 그만두신 후 부담은 더 커졌다. 도움이 돼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홀로서기조차 힘들었다. 잠시나마 도자기를 그만두고 취업을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미술 강습을 병행하다 보니 작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제대로 된 작품을 못 만드는 악순환이 거듭됐죠. 이건 아니다 싶어 2013년 초반에 강습을 다 그만두고 카네이션에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신기하게도 카네이션 외에도 다른 작품들의 판매가 늘면서 강습비를 메울 정도의 수입이 생기더라고요."

봉천동 주택가에 작업실을 차린 지 4년, 김씨에게 여전히 금전적인 부분이 가장 힘들다. 도자기 카네이션은 '유형의 제품'이다 보니 재료비 등 1000만 원 이상의 투자비용이 든다. '벌고, 투자하고, 갚고, 빌리고, 벌고'를 반복했다. 스스로도 열심히 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잘 돼 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매번 제자리였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쌀도 못 사먹을 정도였다면 믿지 못하실 거예요. 지난 3~4년 동안 수입이 일정치 않아 하루살이처럼 살았어요. 신발을 1년에 한 켤레 살까말까 하는 생활이 익숙하지만 가끔은 갖고 싶은 가방이나 구두를 보고 울컥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20대엔 고생하더라도 30대 땐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자는 생각으로 버텼어요."

김씨에게 도자기는 생계의 수단일 뿐 아니라 끊임없이 발전을 추구해야 하는 예술이다. 예술가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창작의 고통으로 인해 연간 한두 차례 슬럼프를 겪기도 한다. 또 매장에 입점하지 않고 SNS만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글을 쓰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해서 SNS를 하는 것이 제 성격과 잘 맞았어요. 초기엔 반려동물이나 클라이밍, 기타 등 다양한 취미생활을 공유하며 즐기는 정도였죠. 도자기를 하면서부터 SNS 때문에 가끔씩 스트레스를 받게 되더라고요. 심각할 땐 SNS가 하기 싫어서 도자기를 그만둘까 생각한 적도 있으니까요."

5개의 SNS를 운영하는 김씨는 때론 하루 5시간 이상 SNS에 매달릴 때도 있다고 한다.

95% 이상의 매출이 SNS를 통해 발생하므로 SNS를 포기한다는 것은 곧 도자기를 포기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SNS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타인의 시선이 불편할 때도 있다.

 도자기 작업은 때론 10시간 이상 한자리에서 작업에 집중해야 하는 일이 많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트레킹과 클라이밍을 즐기는 김소영씨.
도자기 작업은 때론 10시간 이상 한자리에서 작업에 집중해야 하는 일이 많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트레킹과 클라이밍을 즐기는 김소영씨. ⓒ 김소영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SNS 스트레스

"어떤 사람들은 저를 비싼 소파에 앉아 매일 와인 마시며 우아하게 사는 여자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부모가 작업실을 차려준 금수저라 짐작하죠. 또 다른 사람들은 저를 불굴의 의지가 있는 대단한 사람으로 보기도 해요. 현실 속의 저는 예전 그대로인데 SNS를 통해 사람들이 저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을 때 어색하고 당황스러워요. 하지만 어딜 가든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행동해요. 열 받으면 욕도 하는 그런 인간 김소영으로요."

여성 1인기업으로 5년 이상 버티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김씨는 5년차인 올해부터 수입 흐름이 안정적 추세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시즌 상품인 카네이션만으로 1년을 버틸 수는 없어요. 평상시 다른 작품들도 꾸준히 잘 팔리는 편이에요. 사업 초기엔 버는 족족 투자비로 다 나갔지만 조금씩 모아가고 있어요. 지금 수입은 대기업 연봉 이상은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시키는 일만 해야 하는 직장생활과 만족도는 비교할 수 없어요.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오로지 내 콘텐츠로 남는다는 점도 큰 장점이죠."

 김씨가 처음 디자인한 메인작품 우주별 도자기(맨 위), 재벌작업 후 금칠하는 과정(가운데줄 왼쪽), 악기 브로치와 <제주해녀 바다이야기>작품에 들어갈 제주해녀 모형, 개인전에 전시할 작품 <상처>(맨 아래).
김씨가 처음 디자인한 메인작품 우주별 도자기(맨 위), 재벌작업 후 금칠하는 과정(가운데줄 왼쪽), 악기 브로치와 <제주해녀 바다이야기>작품에 들어갈 제주해녀 모형, 개인전에 전시할 작품 <상처>(맨 아래). ⓒ 김소영

도자기를 시작한 지 10년, 창업 5년 만에 홀로서기에 성공한 김씨에게는 올해 안에 해야 할 2가지 숙제가 남아있다. 서른이 되기 전 책을 쓰는 것과 개인전을 개최하는 것. 2년 전부터 준비한 개인전은 도자기 작가 도화(陶花) 김소영으로서 본격 활동을 시작한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8월 30일부터 9월 5일까지 신사동 아트스페이스 남케이갤러리에서 개최하는 개인전을 위해 최근 페이스북 크라우드펀딩으로 600만 원을 모았다. 개인전이 끝난 후엔 다시 산티아고를 다녀와 창업경험을 담은 책을 쓸 계획이다.

"창업을 하려는 사람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걸 하면서 돈이 없어 거지같이 살더라고 이것만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2년 안에 그만두게 돼요. 저 역시 금전적인 여유나 다른 어떤 것보다 도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았다면 1년도 안 돼 그만뒀을 겁니다."

 김씨가 직접 도자기 카네이션으로 온몸을 장식하고 거리에서 진행하는 파이오니어 퍼포먼스는 2012년 이후 매년 진행하고 있다.
김씨가 직접 도자기 카네이션으로 온몸을 장식하고 거리에서 진행하는 파이오니어 퍼포먼스는 2012년 이후 매년 진행하고 있다. ⓒ 김소영

젊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도자기 액세서리라는 새 영역을 개척한 김씨는 이 분야 명장으로 인정받는 무형문화재가 되는 것이 꿈이다. '도자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도자기 액세서리 문화를 널리 알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최근엔 젊은층에게 도자기를 좀더 친숙한 존재로 알리고 싶은 마음에 제작과정을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으로 공개하고 있다.

"도자기도 창업도 고통스러운 측면이 있다는 걸 꼭 알려드리고 싶어요. 가끔 대학생들이 저의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창업을 쉽게 생각할까봐 걱정될 때도 있어요. 일단 시작했다면 내가 생각하는 대로 안 될 때가 있더라도 실패라 생각하지 말고 꾸준히 한 단계씩 올라가는 것 중요합니다. 실패를 밑거름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져요."

 완성된 도자기 카네이션.
완성된 도자기 카네이션. ⓒ 김소영



#1인기업#도자기공예#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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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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