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를 봤다. 회색빛 파리, 벨빌 거리에 있는 주인공 여자의 작은 아파트, 아담한 집 안을 적당히 채우고 있는 소박한 세간살이들, 하얀 거실과 부엌의 알록달록 작은 소품들, 현관 옆 피아노와 집 앞 공터의 외로운 벤치. 나이 차가 족히 열 살쯤은 있어 보이는 여자와 남자... 일본 영화에 흔한 애교 가득한 목소리와 말투가 불편하기도 하고, 잡지 화보 같은 실내 풍경이 가벼워 보이기도 했지만,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함이 좋았다.
절제된 슬픔, 어색한 설렘, 익숙한 허무가 피아노 선율 속에 묻어 나온다. 배경음악으로 아련히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는 여자의 묻어둔 오래된 아픔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닿을락 말락 이어가는 여자와 남자의 조심스런 감정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때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무심하게 흘러가는 가벼운 일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본 영화를 자주 보는 편도 아닌데 여자 배우의 얼굴이 낯익다. 알고 보니 <러브레터>의 마지막 장면, "오겡끼데스까!(お元気ですか)"로 유명한 나카야마 미호라는 배우란다. 우연히 다시 만난 스크린 속 여자 배우의 얼굴이 반갑기도 하고 어쩐지 아프기도 하다. 여전히 아름답고 지금 이 영화에는 딱 맞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감출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서글프다.
슬픔 담은 눈망울에 짧은 커트 머리를 하고 있던 소녀가 쓸쓸한 긴 머리 여인으로 돌아온 것이다. 죽은 연인을 잊지 못해 그리움과 원망을 담은 목소리로 허공을 향해 소리치던 하얀 눈 속의 아이. 그 사이 이 배우는 우리가 잘 아는 소설가와 결혼을 하고 파리로 날아가 살았는데, 이제는 이혼을 하고 다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한다. 이 영화 <새 구두를 사야 해>도 옛날의 그 영화 <러브레터>를 만들었던 감독과 함께 다시 손잡고 만든 것이라니 둘 사이 우정이 깊었던 모양이다.
20년 만에 다시 만난 일본 여자 배우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20년 만에 다시 찾은 파리' 여행기를 쓰고 있는 이때에 마침 파리가 배경인 영화에서 다시 만나다니. 실은 언젠가부터 이상한 일이 생겼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배우들이 좋아지게 된 것이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지만 또래의 그들이 같은 시대를, 비슷한 여정을 걸으며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다 생각하면 어쩐지 친근하게 느껴지곤 한다. 참 우습기도 하지.
삶에 지친 얼굴을 한 내 또래의 일본 여자 배우가 파리 센 강 위를 떠다니는 유람선 위에서, 만난 지 사흘 밖에 안 된 이제 곧 헤어질 연하의 남자에게 수줍은 듯 말한다.
"사람은 어디론가 가 버리지만 에펠탑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잖아요."
두 번째 파리에 도착한 것은 가을도 저물어 가는 늦은 밤이었다. 항공기가 지연되는 바람에 공항에서 한나절을 그냥 버려야 했다. 그 버린 한나절이 어찌나 아쉽던지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무작정 나왔다. 오후에 잡혀 있던 회의와 인터뷰 계획은 애초에 틀어져 버렸고 그 밤엔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걷고 또 걸었다. 나도 모르게 에펠탑으로 향하고 있었다. 몽파르나스에서 에펠탑까지는 꽤 여러 블럭을 지나야 하는 거리라 만만치 않았지만 스무 해 만에 파리에 던져진 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도도 없이 몽파르나스 타워와 역과 호텔을 기준으로 동서남북 방향을 잡았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하염없이 걸었다. 중간 중간 살짝 살짝 북쪽으로, 아니 북쪽으로 짐작되는 곳으로 방향을 틀어가며. 그렇게 걷다 보니 파리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스무 해 전 파리에 도착한 첫 밤에도 이렇게 하염없이 걸었더랬다. 14kg 배낭을 짊어지고.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대학 기숙사의 로비에서 인도 여학생의 도움으로 하룻밤 신세를 졌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땐 참 무모하고 용감했더랬지.
파리의 에펠탑은 너무 뻔하지만, 에펠탑을 뺀 파리는 상상할 수 없다. 파리에서 에펠탑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어디를 가나 보이기 때문이다. 밤이면 더하다. 2만 개가 넘는 전구에 알록달록 불을 켜 두고 조명 쇼를 하는데다 심지어 레이저 빔까지 쏘아대니 파리에선 이 날렵하고 뾰족한 철제 첨탑을 외면하는 일이 더 어렵다. 에펠탑을 그리도 싫어했다는 소설가 모파상의 일화도 있지 않은가. 그는 이 흉물스러운 시커먼 철골 덩어리가 눈에 띄지 않는 곳은 에펠탑 안에 있는 식당뿐이라며 매일 2층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한다. 지금은 누구나 에펠탑에 열광을 하니, 모파상이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혀 있는 게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에펠탑은 프랑스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889년 열린 만국박람회에 맞춰 세워졌다. 프랑스 정부는 만국박람회를 위해 300미터 이상 높이의 철제 탑 설계안을 공모했는데 백여 개의 공모작 중 만장일치로 당선된 것이 현재의 에펠탑이다.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 1832-1923)은 정부 예산에 훨씬 웃도는 건축 비용을 자비로 부담하는 대신, 철탑에 자신의 이름을 붙일 것과 완공 후 20년간 철탑에서 나오는 모든 수익금은 자신의 회사로 들어오는 것을 조건으로 계약서를 썼다.
에펠은 7개월간 이어진 만국박람회의 입장료만으로도 공사비에 가까운 수익금을 거둬들였고 이후 모든 건축 비용을 회수하고도 남았으니 안목이 대단한 투자가였던 모양이다. 게다가 공사 당시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와 비판 때문에 20년 후 철거를 전제로 건축되었지만 이후 송신탑이 추가되면서 에펠탑의 철거는 무산이 된다. 결국 에펠은 자신의 이름을 파리의 상징으로 길이길이 남기게 되었으니, 참 운발도 끝내주는 건축가인 셈이다.
하염없이 걷고 걸어 20년 만에 다시 에펠탑 아래 서게 되니 알 수 없는 감동이 울컥 올라온다. 다시 이 자리에 서는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필요할 거라고는 당시엔 짐작도 못 했다. 앞으로 또 다른 20년이 흘러야 다시 또 이 자리에 올 수 있을까.
돌아오는 길에 착한 버스 기사를 만났다. 차비도 받지 않고 호텔까지 태워다 준 덕에 차가운 밤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주머니에 미처 현금을 챙겨 오지 못한, 추위와 피로에 지친 여행객은 그의 친절이 오래도록 고마웠다. 20년 전 첫 밤은 파리에서 유학 중인 인도 여학생의 도움으로 무사히 보낼 수 있었는데, 20년 지난 오늘 첫 밤은 파리의 버스 기사 덕에 따뜻하다. 스무 해 전 그 여학생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파리의 버스 기사는 오늘도 에펠탑과 몽파르나스를 오가며 파리의 밤을 달리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