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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 닭고기 생산업체인 타이슨 푸즈(Tyson Foods)의 종계(種鷄) 농장. 사람들이 먹는 닭의 '부모 닭'을 기르는 농장이다. 이 농장 그물망 울타리 앞에서 수탉 한 마리가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닭의 콧구멍에는 플라스틱 막대가 하나 끼워져 있었는데, 막대가 그물망에 걸려버린 것이다. 몸부림을 치다가 자칫 심각한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닭은 동물보호단체 활동가의 눈에 띄었고 무사히 구조됐다. 그러나 농장의 다른 닭들에게 언제든 똑같은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있었다. 농장에는 이 수탉처럼 콧구멍에 플라스틱 막대가 박힌 닭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콧구멍의 플라스틱 막대가 그물망에 걸린 수탉(위 사진 노란색 원)을 동물보호 활동가가 구조하고 있다. 미국 동물보호단체  '도살에도 자비를(Compassion Over Killing)'이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 캡쳐.
콧구멍의 플라스틱 막대가 그물망에 걸린 수탉(위 사진 노란색 원)을 동물보호 활동가가 구조하고 있다. 미국 동물보호단체 '도살에도 자비를(Compassion Over Killing)'이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 캡쳐. ⓒ Compassion Over Killing

닭 콧구멍에 플라스틱 삽입... 이보다 잔인할 수 없다

이것은 '도살에도 자비를(Compassion Over Killing)'이라는 미국 동물보호단체가 지난 8월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 내용을 일부 옮긴 것이다. 동물보호 활동가가 버지니아 주의 타이슨 푸즈 종계 농장에 취업해 몰래 촬영한 이 영상에는 동물학대의 참혹한 실상이 담겨 있다.

영상에서 농장 일꾼들은 닭들을 발로 차고, 집어던지고, 주먹질을 했다. 운송 상자에 구겨 넣어진 닭의 신체가 일부 밖으로 나왔는데도 문을 세게 닫아버리는 모습도 포착됐다. 일꾼들은 닭의 머리를 발로 짓밟았고, 지게차 바퀴에 닭이 깔려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모든 만행이 전부 살아있는 닭을 대상으로 벌어졌다.

영상에는 지금까지 공개된 적 없는 잔혹한 관행도 담겨 있었다. 어린 수탉의 콧구멍에 '본(bone)'이라는 플라스틱 막대를 끼우는 작업이었다. 일꾼들은 공포에 질린 닭들의 날개나 머리를 강제로 움켜쥐고 플라스틱을 쑤셔 넣었다. 닭의 고통을 줄여주는 진통제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러한 작업은 '보닝(boning)'이라고 불리는데, 특정 사료의 섭취를 제한하기 위해 시행된다. 수탉의 콧구멍에 삽입된 플라스틱 막대가 암탉용 사료를 먹는 것을 방지하는 장애물 역할을 한다.

고기용 닭은 빠른 속도로 살찌도록 유전자가 조작된 동물이다. 그 결과 지나치게 비대해져서 다리 기형·심장 마비 등으로 죽는 경우가 많다. 농장에서는 종계가 2년 정도까지는 죽지 않고 제 역할을 하도록 '보닝'으로 비만을 방지한다.

맥도날드·버거킹·케이에프씨·월마트 등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타이슨 푸즈는 농장동물의 복지를 위해 노력한다고 자부해왔지만, 이번 영상을 통해 정반대 현실이 드러났다. 이번 사건에 관한 성명서에서 타이슨 푸즈는 "영상 속 학대에 혐오와 분노를 느낀다"고 유감을 표하면서, 학대에 관련된 노동자 10명을 해고하고 '보닝'을 즉시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타이슨 푸즈의 동물학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보닝'을 중단한 것은 다행이다. 그런데 노동자 해고는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육류 소비 부추기는 업계... 열악한 환경, 동물에 화풀이하는 노동자

소비자는 고기를 보다 싼 가격에, 보다 많이 먹고 싶어 한다. 업계는 이런 요구에 부응하려고 서로 경쟁하고 육류 소비를 부추긴다. 이런 현실에서 농장동물과 노동자에 대한 처우는 낮을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것은 생산비용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기사 "'치맥', 이래도 드시겠습니까?"에서 다뤘듯이, 농장 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로환경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분노를 동물들에게 표출한다. 농장동물에 대한 학대의 배경에는 고통받는 노동자가 있다. '치느님', '1인1닭'과 같은 신조어가 유행하는 우리나라에서 타이슨 푸즈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니다.

매년 10월 2일은 '세계 농장동물의 날'이다. 이날 전 세계에서는 육식으로 희생되는 농장동물의 고통을 기억하는 행사가 열린다. 지난 27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더불어숨센터에서는 '세계 농장동물의 날'을 기념하여 박미연 활동가의 강연회가 열렸다.

한국계 미국인인 박미연씨는 타이슨 푸즈의 동물학대를 폭로한 '도살에도 자비를'의 공동 설립자로서, 20년 넘게 동물권리 운동을 해왔다. 이날 강연에서 박미연씨는 초등학교 9학년 시절 인권 시위에 참여하면서 시작된 활동이 농장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으로 확장된 배경과, 활동가로서 자신이 변화한 여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름'에 저항하는 투쟁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더불어숨센터에서 강연을 하는 박미연 활동가.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더불어숨센터에서 강연을 하는 박미연 활동가. ⓒ 조세형

"넌 뭐야? 일본인이야? 아니면 중국인?"
"한국인..."
"'한국'이라는 나라도 있나? 넌 아무것도 아냐!"

다섯 살 때 유치원에 간 첫날, 박미연씨는 남들과 다른 피부색 때문에 들었던 말을 생생히 기억한다고 했다. 그날 그녀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무시당했다. 그리고 커가면서 인종·성차별, 동성애·외국인 혐오를 비롯한 온갖 편견과 이로 인해 차별당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런 편견과 차별에 대한 박미연씨의 고민은 세상의 고통을 줄이는 활동으로 이어졌다. 각종 인권관련 시위와 탄원, 단체 후원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런 자신이 하루 세 번 식사를 할 때마다 '가장 많은 존재들에게 막대한 고통을 주는' 종(種)차별주의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

19살이었던 어느 날, 박미연씨는 우연한 기회에 얻은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의 홍보책자를 통해 육식으로 희생되는 농장동물의 비참한 현실을 접했다. 그리고 농장동물이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고통 받는 '목소리 없는 약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녀는 농장동물을 자신과 '다른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그녀가 농장동물을 차별한다면, 그것은 그녀에게 "너희 나라로 가버려!"라고 소리쳤던 사람들이 지녔던 편견과 다를 바 없었다. 어떤 존재가 지느러미·날개·다리·깃털 중 무엇을 지녔던 간에, 이런 신체적 차이는 그 존재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맥도날드 지붕에 올라가 외치다... "당신들은 살해자야"

박미연씨는 전 세계에서 인간에 의해 희생되는 동물의 98%가 농장동물임에도 철저한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리고 농장동물의 고통을 줄이는데 헌신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고통을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993년 대학 졸업 후, 박미연씨는 동물복지단체에서 직업 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시절 자신이 '항상 화가 나 있었다'고 회상했다. 19살이 될 때까지 농장동물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던 자신과, 동물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소리를 지르며 대중의 이목을 끄는 시위 활동에 집중했다. 맥도날드 건물 지붕 위에서 "맥도날드는 살해자!"라고 육식반대 구호를 외쳤고, 모피 패션쇼장에 난입했다. 워싱턴 D.C.에서 동물 서커스가 열렸을 때는 자동차 가스 폭발로 목숨을 잃는 위험을 감수하며 서커스를 지연시켰다. 이 항의 시위는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고, 그녀는 세상이 자신의 헌신에 주목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그녀는 그런 자신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서커스 하나 때문에 목숨을 거는 미친 사람'으로 비칠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과거에 그녀는 더 크게 소리 지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또한 자신이 동물권리 활동과 채식을 하게 된 것이 육식을 하는 자신을 '살해자'라고 비난하는 공격적인 활동가들 때문도 아님을 깨닫게 됐다. 

'이분법'을 넘어 '협력'으로

 박미연 활동가.
박미연 활동가. ⓒ 조세형

이런 깨달음과 함께 박미연씨는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기관의 단체급식에 채식메뉴를 도입하고, 기존의 육류재료를 인도적으로 생산된 육류로 대체하도록 식당 운영자들을 설득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이것은 특히 대학 급식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고 한다. 선택할 수만 있다면, 사람들은 인도적으로 생산된 육류를 원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부터는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에 소속되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녀는 이해당사자들과 협력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박미연씨는 젊은 시절 자신이 '아군이 아닌 사람은 모두 적군'이라는 이분법으로 사람들을 구분했다고 고백했다. 육식을 하는 사람은 전부 '문제 있는 사람들'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그런 자신에게 동물을 이용하는 업계와 협상하여 동물복지를 개선하고 점진적인 변화를 이루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당시에는 동물에 대한 착취를 완전히 중단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미연씨는 과거에 자신이 그랬듯이 '나만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생각하면 인생을 쉽게 살 수 있지만, 동물문제는 활동가들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동물해방은 자신의 생전에 이룰 수 있는 과업이 아님을 깨달았다고 했다.

동물문제에는 소비자·축산농민·기업·수의사·입법자·과학자를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해가 얽혀 있다. 박미연씨는 여느 사회 문제와 마찬가지로, 동물문제는 단 하나의 접근법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동물의 고통을 줄여나가는 공동의 목표 하에 다양한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이해당사자들 간의 대화와 협력이라고 강조했다. 

"농장동물의 고통, 하루만이라도 나눠볼까요"

그래서 오늘날 박미연씨는 채식 캠페인을 벌이는 동시에 육류업계와의 대화에도 참여한다고 했다. 육류 공급업체 하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육식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아주 작은 일부를 바꾸는 작업이지만, 이것은 수십억 동물의 삶을 개선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해당사자들과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엄청난 진보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박미연씨는 후배 활동가들을 위한 조언도 덧붙였다. 동물관련 활동뿐만 아니라, 사회운동을 하다가 탈진해서 활동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다. 박미연씨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시절이 자신에게도 있었다고 했다. 매순간 무수한 동물들이 희생되는 현실에서 잠깐 쉬는 것마저도 이기적인 행동으로 여겨졌다고 했다. 고통 받는 동물들에 비하면 '나'라는 동물은 너무나 하찮아보였다고 했다.  

동료들은 과도하게 일하는 박미연씨에게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언젠가 몸이 말을 듣지 않을 거라고 충고했지만, 그녀는 그런 조언을 자신과 무관한 이야기로 여겼다. 그리고 하루의 휴식시간이 수면시간을 포함하여 6시간에 불과할 정도로 자신을 혹사하다가 결국 건강이 나빠지고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돼버린 자신을 발견했다고 했다.

박미연씨는 지속 가능한 활동을 하려면 자신을 보살펴야 한다고 당부했다. 나 역시 '동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자기 자신의 복지에도 관심을 기울이라고 했다. 

올해 34번째 '세계 농장동물의 날'을 맞아 동물보호단체와 환경·채식단체를 비롯한 국내 시민사회들은 농장동물의 고통을 단 하루만이라도 함께 나누자는 뜻에서 10월 2일 하루 동안 일일단식 또는 채식을 하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온·오프라인 서명을 통해 진행된 이번 캠페인을 통해 지난 1일까지 총 1067명의 시민이 세계 농장동물의 날 일일단식 혹은 일일채식을 약속했다. 이번 캠페인은 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녹색당·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동물을위한행동·동물자유연대·애니메이트·여성환경연대·채식평화연대·케어·한국동물보호연합(10개 단체 가나다순)이 공동으로 진행 중이다.

* 위 기사에 언급된 유튜브 영상은 '여기'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박미연#동물#활동가#채식#세계 농장동물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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