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된 청와대 문건이 발견된 최순실씨의 개인 컴퓨터에는 '제3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2013년)'도 들어 있었다. 박 대통령은 이 기념사를 낭독한 취임 첫해의 5.18 기념식 이후에는, 3년 동안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최씨의 컴퓨터에 담긴 기념사와 실제 기념사를 비교해보니 상당 부분 차이점이 있었다. 가장 큰 특징은 "광주의 힘", "광주 정신", "광주시민", "민주주의", "자유와 인권" 등 5.18을 상징하는 용어가 대폭 빠졌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통일대박"을 말한 드레스덴 선언문(2014년 3월)과 달리, 5.18 기념사에는 첨삭의 흔적으로 보이는 '빨간 글씨'가 발견되진 않았다. 하지만 최씨 컴퓨터에 담긴 기념사와 실제 기념사가 다르다는 점, 그리고 최씨 컴퓨터의 기념사를 누군가 기념식에 앞서 열람했다는 점에서, '최순실 첨삭'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아래는 실제 기념사와 최씨 컴퓨터에 담긴 기념사를 비교한 내용이다.
최순실 PC 기념사-실제 기념사 비교해보니...
[최순실 첨삭 의혹①] "저는 영령들께서 남기신 고귀한 뜻을 받들어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 것이…." →
"영령들께서 남기신 뜻을 받들어 보다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이….": "저는"이라는 주어가 빠졌고, "고귀한",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수식어도 삭제됐다.
[최순실 첨삭 의혹②] "5.18 민주화운동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나아가 세계인들이 자유와 인권을 배우는 학습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 "….": 5.18 민주화운동의 세계사적 의미가 담긴 문장이 통째로 빠졌다.
[최순실 첨삭 의혹③] "지역을 넘어, 아픔을 넘어 대한민국의 역동적인 발전의 상징으로 승화되고 있는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
"앞으로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5.18 민주화 운동의 상징성을 설명한 "지역을 넘어, 아픔을 넘어 대한민국의 역동적인 발전의 상징으로 승화되고 있다"는 내용이 삭제됐다.
[최순실 첨삭 의혹④] "저는 이제 선배세대들이 쌓아온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국가발전의 길을 열어갈 때라고 생각합니다."
→ "저는 이제 새로운 국가발전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5.18을 역사적 성과로 표현한 "선배세대들이 쌓아온 성과를 바탕으로"라는 내용이 빠졌다.
[최순실 첨삭 의혹⑤] "저는 광주의 힘, 광주의 정신을 믿고 여러분과 함께 국민행복의 새 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
→ "저는 여러분과 함께 국민행복의 새 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 5.18을 상징하는 "광주의 힘, 광주의 정신"이란 표현이 삭제됐다.
[최순실 첨삭 의혹⑥] "광주시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민주영령 앞에 깊은 추모의 마음을 드립니다." →
"5.18 민주화운동의 날에 다시 한 번 민주영령 앞에 깊은 추모의 마음을 드립니다.": "광주시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라는 내용이 빠졌다.
한편, 실제 기념사에서는 "고귀한 희생으로 민주화 시대를 선도해주신"이란 표현도 빠졌다. 다만 다른 문장에서 "민주화를 위해 고귀한 희생과 아픔을 겪으신"이란 표현이 추가돼 삭제되지 않은 것으로 간주했다.
5월 단체 "모욕감과 분노"
이와 관련해 김대중 정부의 공보기획비서관을 지낸 최경환 국민의당 의원은 26일 <오마이뉴스>를 만나 "5.18, 광주의 의미를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최 의원은 "박정희·전두환 권위주의 정권 때 국정의 가장 큰 폐단은 정부시스템을 무시했던 것"이라며 "당시 국무회의는 중앙정보부가, 비서실은 경호실이 대체했는데, 지금은 정부 밖의 비선조직까지 나와 버린 것 아닌가. 시스템이 망가져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민주유공자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도 보도자료를 통해 "대통령의 5.18 기념사를 최씨가 사전에 검수했다는 사실에 모욕감과 분노를 느낀다"라고 발표했다.
이어 이들은 "박 대통령은 (2013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원하는 5.18 유공자와 시민의 요구에 귀를 닫은 채 무성의하게 원고만 읽고 자리를 떴다. 그 원고가 바로 최씨의 검수를 거친 것이었다는 데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박 대통령은 국기 문란 행위를 사죄하고 특별검사와 국정조사 등 성역 없는 수사를 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