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학교에는 공주 미마지 민속극박물관에서 기증받은 흥미로운 탈이 있다. 취호왕(醉胡王)과 취호종이라는 탈이다.
취호왕과 취호종은 고대 시대에 연행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기악(伎樂, 노래, 춤, 음악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재주를 뜻함) 속의 등장인물이다. 취호왕은 술 취한 오랑캐왕이다. 취호왕은 의젓한 편이지만, 왕을 모시는 취호종은 검은 피부에 코가 늘어져 술에 잔뜩 취한 듯하다. 취호종의 눈썹은 초승달을 닮았고, 눈은 나뭇잎처럼 크고, 코는 가래떡처럼 귀는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붉은 입술은 큼지막한 전복을 연상케한다.
취호왕의 시대를 따라가보면 당나라 장안까지 가게 된다. 당나라 장안에서는 실크로드를 타고온 호풍이 유행했다. 우리가 깨먹는 호두(호도 胡桃), 호빵, 호마(胡麻, 참깨)도 호풍 속에 날아든 것이다.
그 무렵 당나라 장안에는 호복(胡服), 호식(胡食), 호희(胡姬), 호선무(胡旋舞), 호등무(胡騰舞), 칠호병(漆胡甁)과 함께 연행 속의 취호왕이 있었다. 일본 기악 속에서도 취호왕이 등장하는데, 일본 기악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백제 사람 미마지(味摩之)가 있다. 미마지는 백제 무왕 때에 중국 오나라로 유학을 다녀온 뒤에 일본으로 건너가 기악무를 전해줬다고 한다.
"고대에 맘껏 술 취할 수 있던 건 아마도..."
왜 술 취한 왕이라는 칭호를 얻었을까? 취호왕 탈을 소장한 공주 민속극탈박물관 심하용 관장님에게 물어봤다. 그는 말했다.
"고대시대에 맘껏 술에 취할 수 있던 존재는 아마도 왕이나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수긍이 간다. 평민은 축제나 명절 때나 술을 마시고 취할 수 있었을 테고, 매일 취하려면 왕이나 왕족 정도는 돼야 했을 것이다. 곡물 수확량이 적고, 소유권이 제한돼 있는 계급사회에서 술은 한정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음료였을 것이다.
고대에는 술을 빚고, 준비하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이었다. 제정일치 시대엔 당연히 제사권을 가진 자가 권력자였다. 집안 권력의 상징으로 장자가 제사권을 갖고 있는 것도 매한가지다. 제사권은 음식을 차리고 제주를 올리는 일까지 포함된다. 그 관행은 요사이 마을 당제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제관으로 선정된 이가 제사 음식을 차리고, 제주를 빚는다. 술을 통해서 신과 소통한다고 여겼기에, 술을 빚고, 술을 앞서서 올리는 것이 권력의 상징 기호였다.
'좨주'를 아십니까고려시대 문종(1046~1083) 때에 국자감에 종3품 '좨주'(祭酒)라는 벼슬을 두었다. 제주라고도 읽지만, 벼슬을 칭할 때는 좨주로 발음한다. 좨주는 음주례를 행할 때에 나이 많은 존장자가 술을 땅에 부어 지신(地神)에게 감사를 드리는데서 유래한 벼슬이다.
국자줴주, 성균관줴주가 종3품 관직이었는데, 조선 중기로 오면 품계에 구애받지 않고 존대할 만한 인물에게 내렸던 명예로운 벼슬이었다. 줴주라는 벼슬을 달았던 큰 인물로는 고려시대 좨주 우탁이 있는데 묘비명에는 줴주라는 벼슬이 새겨져있다. 조선시대 중기에 오면 좨주 호칭을 받았던 인물로 송준길, 송시열, 윤휴, 박세채 등을 꼽을 수 있다.
오늘날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술에 취할 수 있는 세상이다. 물산이 풍부하고 기술이 좋아져서 벌어진 일이다. 우리는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기 어려운 4000원으로 가게에서 소주 3병을 사서 취하도록 마실 수 있다.
즉 술을 누리는 대목에 있어서, 현대인들은 고대의 왕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술 앞에서 진정한 왕이 되려면, 스스로 술을 통제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그러지 않고 늘 술에 취해있다면, 그게 자유로운 왕이겠는가? 중심을 놓아버린 중독자나 집을 벗어난 부랑자와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