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계획을 잡았다. 일이 끝나고 한 번쯤 가고 싶었다. 호주 워홀러들의 루트 중 하나다. 돈을 열심히 벌어 여행 가는 것. 로드트립(차를 타고 호주 도시 순회하는 여행)이나 골드코스트 같은 명소에 가기도 한다. 스카이다이빙을 즐기거나 서핑을 하기도 한다. 호주는 여행을 다니기에 날씨도 좋고 숙소도 잘 돼 있는 편. 그러나 기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1주일 뿐이었다.
"여기로 와."퍼스에 간 친구가 말했다. 시드니와 정 반대에 있는 곳. 3시간 시차가 있다.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는 소리다.
"사람도 적고 편히 쉬다가기 좋을 거야."쉬는 날도 없이 6개월을 일했다. 요양(?)이 필요했다. 여행을 가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는 것도 꽤 머리 아프다. 결국 목적지를 퍼스로 결정했다.
시동 걸리지 않는 차, 결국 택한 건 시드니에서 국내선을 타고 퍼스로 향했다.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구입했다. 왕복 400불. 나쁘지 않은 가격이다. 한국의 '제주항공'처럼 저가항공사인 '타이거 항공'을 이용한다. 국제선과는 달리 국내선은 그렇게 까다롭지 않다. 검사도 대강대강. 그런데 기자를 부른다.
"가방 좀 열어봐."가끔 검사를 하기도 한다던데 딱 그 케이스였다.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보여줬다. 살피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이내 "쎼쎼"를 외친다.
"No, south korea."
인도인으로 추정되는 직원은 미안하다며 "안녕하세요"를 연발한다.
"북한이었다면 총을 쐈을 거야."그의 조크(?)를 들으며 게이트로 향한다. 국내선 안에는 몇몇 면세점이 보인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크리스피크림 도넛'. 한국에는 매장이 있지만, 호주에서는 편의점 내 조그마한 냉장고에서 판매한다.
"여기서는 망했어."
과거 그 이유를 묻자, 사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실제로 시드니 내에서 매장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 매장을 만나다니, 기념으로 커피를 한 잔 사마셨다.
퍼스까지는 5시간 비행이다. 시차를 넘어간다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다. 더군다나 시드니보다 시간이 늦은 곳이다보니 가면 갈수록 시간은 뒤로 간다. 시간을 거슬러 간다는게 이런 느낌일까.
비행기는 작다. 바람에 쉽게 흔들린다. 덜커덩거리길 수십 번. 잠을 청하기에는 좁은 좌석. 여러모로 불편하다. 뻣뻣하게 목이 굳어온다. 악착같이 참다보니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것이 천국이다.
"왔냐."밤 11시가 넘어간 시간(시드니는 이때 새벽 2시였다). 친구가 마중 나왔다. 정답게 인사를 하고 차로 향한다. 그리고 차는 묵묵부답.
"이거 왜 이러지."시동을 걸려고 해도 차는 대답이 없다. 1시간을 아등바등해도 변하는 것이 없다. 결국 우버(공유 개인 택시)를 타고 집으로 온다. 간단히 와인과 저녁을 하고 잠에 든다.
사람이 없는 도시퍼스엔 사람이 없다. 아침만 되면 이런저런 소리로 시끄러웠던 시드니에 비해 퍼스는 고요하다. 시티를 제외하면 크게 번화한 곳도 없다. 친구 집 앞에도 밥먹을 만한 가게가 없었다. 아, 프랜차이즈를 제외하면. 맥도날드, KFC 같은 패스트푸드나 콜스, IGA 같은 대형마트는 어김없이 들어와 있다. 편리하지만 섬뜩하기도 하다. 이런 곳까지 파고들다니.
간단히 아침을 먹고 차를 보러 간다. 공항으로 다시 돌아간다. 차는 어제와 마찬가지 상태. 결국 렉카차를 부르기로 했다. 한국과는 달리 호주에서는 차 자체를 뒤에 태운다. 다시 말해 트럭이 온다는 의미. 트랜스포머처럼 적재칸이 내려온다. 그곳에 차를 두고 올리면 트럭 뒤에 태워진다. 내릴 때도 마찬가지. 90불이 들었지만 어쩌면 해볼 수 없는 경험을 했다.
차를 맡기고 버스를 탔다. 이곳 저상버스는 한국과 달리 앞에서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이 나온다. 처음에 타려다가 맞을 뻔.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한다. 시내는 높은 빌딩과 옛 건물들이 어우러져 있다. 잘 정리된 도로와 건물들. 다만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꽤 늦은 붐비는 시간에 나왔음에도 사람 수는 적다.
유명한 커피집에서 커피를 한잔하고 엘리자베스 키로 향한다. 시드니에 '서큘러 키'와 같은 곳으로 배들이 드나드는 곳이라고. 한 쪽 카페에 앉아 로제 와인을 한모금한다. 조용한 도시.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 여유로운 도시다. 고층건물과 안 어울리는 덩치를 가졌다고 할까. 마치 추석 때 조용해진 서울을 보는 것 같다.
여행을 끝내고 다시 비행기를 탄다. 이제 호주에서의 일정이 끝났다. 귀국만 남았다.
덧붙이는 글 | 스물일곱.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왔습니다. 앞으로 호주에서 지내며 겪는 일들을 연재식으로 풀어내려합니다. 좀 더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풀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