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2일.
새누리당이 그해 4월 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152석으로 과반 1당이, 12월 대선에서 박근혜가 승리하기까지 과정에서, 결정적 분기점이 된 날이다. 공천탈락 발표를 앞두고 있던 김무성이 당 잔류를 선언한 것이다.
김무성은 2007년 대선 경선을 주도한 '친박 좌장'이었으나, 박근혜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 원내대표 추대에 응하고, 이명박의 세종시 수정안을 지지하면서 박근혜와의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박근혜의 '영애(令愛) 의식'에 질린 그는 주변에 이를 토로하기도 했다. '배신', '하극상'을 용납하지 않는 박근혜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그를 공천에서 배제했다. 전형적인 '토사구팽(兎死狗烹)'이었다.
'김무성이 탈당을 결심했다'는 보도가 잇달았고, 김무성 의원실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가 기자회견을 시작하는 방송화면에 '탈당 선언'이라는 자막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우파 분열의 핵이 될 수는 없다"며 당 잔류와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기자회견 직전까지도 탈당을 장담했던 그의 고참 보좌관은 한동안 기자들을 피해 '잠수'해야 했다.
김무성 "박근혜만큼 애국심 깊은 사람 없어"그가 20여명의 낙천 의원들을 이끌고 탈당해서 충청권의 자유선진당과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의 신당 '국민생각'과 손을 잡고, '비박근혜 연대'를 만들었다면, 이후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와 대선 승리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가 총괄본부장을 맡지 않았다면, 지리멸렬했던 '박근혜 대선 선대위'를 일사불란체제로 바꿔 대선에 임하게 만드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명실상부한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의 '특등 공신'이었다.
2006년 쯤 그에게 "왜 이명박이 아니라 박근혜를 지지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의 정치적 대부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명박 지지'를 선언하고 과거 자신의 휘하에 있던 정치인들에게도 이를 종용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이명박과도 가까웠고 승산도 반반이었다. 갑자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여성 의원을 "가시내야"라고 부르는 '마초'가 여성을 지지한다는 것도 의아했다.
그는 "지금 정치인 중에서 박근혜만큼 애국심이 깊은 사람은 없다. MB는 자기 이익만 생각 하고 산 사람 아닌가"라고 했다.
2012년 대선에서, 근거도 없는 '노무현 서해 북방한계선(NLL)포기' 논란을 전면화한 것을 비롯해 온갖 네거티브를 주도한 것도, 그 나름으로는 '박근혜에 대한 충성'이라는 '마초의 순정'과 '보수 정부 연장'이라는 애국심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박근혜 애국심'의 실제 모습은, 자신과 최태민·최순실 일가를 위한 '권력 사유화'일 뿐이었다.
2012년 백의종군 선언으로 박근혜 대선 가도의 문을 활짝 열었던 그는 그로부터 4년 7개월여가 흐른 23일, 박근혜와 최종적으로 결별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에 일익을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직전 당 대표로서 국가적 혼란에 책임을 통감한다. 제 정치 인생의 마지막 꿈이었던 대선 출마의 꿈을 접고자 한다. 합리적인 보수 재탄생의 밀알이 되고자 한다. …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은 탄핵을 받아야 된다. 새누리당 내에서 탄핵 발의에 앞장서기로 했다."'탄핵에 앞장 서겠다'는 그의 선언은 이후 상황전개에 따라 박근혜에게 치명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은 박근혜에 대한 탄핵 추진을 결정적으로 가속화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들이 새누리당 비박계의 확실한 의사표시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박계의 좌장격인 그가 확실한 답을 내놨기 때문이다. 탄핵추진파는 이로써 탄핵의결 정족수(200명)를 상당히 웃도는 수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탄핵 앞장 선언'이 박근혜에 치명타 될 가능성
김무성 기자회견 관련 기사 제목으로는 '대선 불출마', '박근혜 탄핵 앞장' 등이 뽑혔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에 일익을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국가적 혼란에 책임을 통감한다"는 발언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박근혜정권 창출의 핵심인물로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대선 불출마'를 통해 그 나름의 정치적 책임을 진 셈이다.
대선불출마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정계를 떠나야 한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 숱한 '박근혜 정권 개국공신'들 중에 그나마 책임을 진 사람은 현재까지는 그밖에 없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7인회도, 박근혜 덕택에 금배지를 단 무수한 국회의원들과 지자체장들도, 박근혜를 지지했던 언론들도 "최순실을 몰랐다"고 도리질을 치고 있을 뿐이다.
김무성은 일단 탈당하지 않고, '이정현 지도부 퇴진'을 관철하겠다는 방침이다. 그의 의도대로 이정현 대표가 물러나고 '비박근혜계 비대위'가 만들어질 경우 박근혜는 출당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적 퇴진 압력에 맞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박근혜로서는 발 밑이 허물어지는 셈이다.
이정현 대표가 끝내 버티면서, 그가 탈당할 경우 이는 실질적인 새누리당의 분당을 의미한다. 김무성 등이 주도하는 신당은 이후 정치적 활로를 찾기 위해 가장 격렬하게 '박근혜 죽이기'에 나서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