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일부러 구설에 휘말리게 해 소비자 이목을 집중시켜 판매를 높이려는 마케팅 기법'을 노이즈 마케팅이라 합니다. 최근 시흥시의회가 혹시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시흥시가 지난 5년간 역점사업으로 추진한 천연 잔디 조성 사업에 제동을 걸었는데, 이 일로 언론 등으로부터 따가운 질타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달 22일 시흥시의회 자치행정 위원회는 '학교운동장 천연 잔디 설치 시범사업'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시흥 잔디 사업의 육성 및 브랜드화 촉진조례(아래 천연 잔디 촉진조례)'를 부결했습니다. '실적이 없는, 성공하지 못한 사업'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이복희 (민주) 의원은 "(천연잔디 설치 기술 개발이) 성공하지도 못했는데, 시흥시가 학교에 천연잔디를 깔아주겠다고 공수표를 날렸다. 논의할 가치도 없는 사업"이라며 반대했습니다. 홍지영 의원(새누리)은 "시가 그동안 특허 기술인 양 사업을 추진해오다, 잔디의 '잔'자도 모르는 부서에 업무를 이관했다"는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언론이 일제히 포문을 열었습니다. 한 통신사는 "지자체, 교육 당국, 체육 관련 기관 등이 천연 잔디 벤치마킹을 위해 시흥시를 방문 하는 등 대외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실적이 없다'는 시의회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한 지방언론은 "지난해 의회가 주도해 천연 잔디 구장을 조성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며 "보복 심의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천연 잔디 조성 업무를 담당한 시민소통 담당관실이 미워서 천연 잔디 조성 관련 조례를 부결했다는 지적입니다.
잔디 구장 만들어 이미 시민들에게 개방, 그런데 실패한 사업?
천연 잔디 관련 조례가 부결됐다는 사실을 알고 저 또한 무척 당혹스러웠습니다. 시흥시 천연 잔디 조성 사업이 성공적이라 판단했고, 지난 9월 '성공 사례'로 이미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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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잔디, 알고 보니 인조잔디 반값도 안 돼 당시 취재를 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게 천연잔디 조성 비용이 인조잔디의 반값도 안 된다는 것이었고, 기술 개발이 더 이루어지면 조성 비용이 더 내려갈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러한 일을 국가 기관이 아닌 지방자치 단체인 시흥시가 5년만에 이루어냈다는 게 정말 놀라웠습니다.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이미 잔디 구장을 만들어 시민들한테 개방했고 잔디 구장을 시공·관리할 사회적 기업인 '녹색 발전소'까지 운영하는 상황이라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표 포함 직원 6명으로 이루어진 '녹색 발전소'에서 '맨땅에 그린' 운동장(약 5000㎡, 2개소)과 희망공원 천연잔디 구장 (7992㎡), 산기대학로에 있는 천연잔디 농장(87982㎡)까지 조성해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직원 6명이 축구장 15배 넓이의 잔디 구장을 관리하는 셈이니, 인력 효율이 굉장히 높은 편입니다. 그동안 시공·관리 기술을 충분히 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난 10월에는 시흥시가 조성한 잔디 구장에서 축구 경기를 해 보았습니다. 시흥시 잔디는 '엄지 척'을 할 만큼 품질이 뛰어났습니다. 십수 년 간 축구를 취미로 삼은 덕에 수많은 잔디 구장을 밟아 보았는데, 그중에서 시흥 잔디가 단연 최고였습니다. 프로 축구 경기가 열리는 잔디 구장 수준이었습니다.
조례 부결로 천연잔디 좌초시키려 했다면 작전 실패
이밖에도 시흥시 천연 잔디 사업이 성공적이라는 근거는 아주 많습니다. 인근 지방자치단체와 교육기관에서 시흥시 천연잔디 사업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방문했고, 신문, 방송 등 언론에서 앞다투어 취재했습니다. 드라마 촬영장소로 이용되기도 했고요.
국회도 시흥시 천연잔디에 관심이 높습니다. 안민석 의원실 주최로 지난 9월에 열린 '학교운동장 개선 현장토론회'에 시흥시 공무원들이 초청을 받아, 천연잔디 사업에 대해 발표를 했습니다. 국회, 교육부, 서울·경기교육청, 학계, 사회단체 등 관계자 30여 명이 참여해 학생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우레탄·인조잔디와 관련한 대책을 의논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날, 참가자들이 천연 잔디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시흥시 공무원이 "농가 소득 증가 효과를 볼 수 있고, 환경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내년에 학교 운동장을 잔디 구장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하자 안 의원을 포함한 다수의 참가자가 "학교 운동장 천연잔디 교체 사업이 기대된다. 천연잔디 운동장을 꼭 둘러보겠다. 좋은 성과 기대한다"고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천연잔디 사업은 매우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사업이기도 합니다. 시흥시가 천연 잔디로 유명해지고 있고, 천연 잔디가 시흥시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흥시의회가 혹시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이유입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반대할 이유가 없는데, 더 잘하라고 격려해야 했는데 오히려 제동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시흥시의회가 '노이즈 마케팅'을 하기 위해 천연잔디 사업에 재를 뿌리는 척을 했다면 '작전 성공'입니다. '시흥 천연잔디'라는 검색어만 입력하면 '시의회 때문에 시흥 천연 잔디 사업 좌초'라는 제목·내용의 수많은 기사가 검색됩니다. 명성을 얻은 겁니다.
그러나 정말로 시흥 천연잔디 사업을 좌초시킬 계획이었다면 '작전 실패'입니다. 조례안 하나 부결시켰다고 성공적이라 평가받는 천연잔디 사업이 좌초될 리가 없고, 그 대신 비난만 들끓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흥시 정·관·언론계 관계자에 따르면, 천연 잔디 예산을 대폭 삭감할 움직임이 시흥시의회에서 감지된다고 합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 된다면 시흥 시의회는 직권을 이용해 횡포를 부렸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조례안 부결과 예산 삭감을 주도한 의원은 '시의원 자질'을 의심받게 될 것입니다. 시의회 무용론이 고개를 들지 않을까 걱정스럽기까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