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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 이후 연일 박근혜 즉각 퇴진 촛불의 행렬이 뜨겁습니다. 230만 명의 높은 시민의식도 경이롭지만 수능을 앞두고 또 수능을 막 끝내고 나온 청소년과 중학생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민주사회의 주인은 다름 아닌 바로 그들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우치게 됩니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그런 교과서로 배울 수 없다며 피켓을 든 것도 청소년들이었습니다. 왜곡된 근현대사를 당연한 역사처럼 배우고 시험을 치러야했던 우리 세대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그것은 광우병 사태 때 자발적으로 촛불을 든 청소년들, 미선이와 효순이의 억울한 죽음에 촛불을 들어 항의했던 청소년들, 더 멀리는 삼일 만세 운동을 주동했던 유관순이나 광주 고보 학생들, 4.19와 6.10 민주화 항쟁을 이끌어 낸 주체들이 청소년과 청년들이었다는 데 뿌리를 두고 있을 것입니다.

역사는 교과서에 문자로 정형화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처한 사회 현실 그 자체라는 말이겠지요. 역사라는 현장을 박제된 교과서 안의 화석이 아니라 스스로 맛보고 부딪쳐서 보고 느끼고 깨달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철수와 영희)은 학교, 입시, 두발, 나이, 군대, 강남, 노동으로 나누어 청소년들의 삶에서 풀어낸 역사의 매듭입니다. 하나, 둘 매듭을 풀어가다 보면 퍼즐조각 맞추기처럼 역사에 대한 커다란 그림이 그려질 것입니다.

역사는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멋진 세계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맛보게 될지도 모르지요. 역사를 빼고 사회나 현실, 개인의 삶을 말할 수 없을 테니까요.

머리로 배운 민주화와 몸으로 체득한 민주화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근현대사 이야기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근현대사 이야기 ⓒ 철수와 영희
광우병 사태 때 촛불에 불을 붙인 것은 사회단체나 어른들이 아니라 청소년들이었습니다. 미친 소를 급식으로 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한홍구 교수는 그 청소년들을 가리켜 '민주화의 계돈'을 탄 것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민주가 무엇인지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이미 민주가 무엇인지 알고 자란 민주화의 네이티브 세대라고나 할까요. 이미 민주와 자유를 맛본 청소년들에게서 민주와 자유를 빼앗으려 한다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저항을 할 수밖에 없을 테지요.

반면 기성세대는 학교, 군대, 사회에서 규제와 규율에 길들여진 삶을 살면서 민주와 자유를 이론으로만 배웠습니다. 실제 민주가 무엇인지 자유가 무엇인지는 세상이 변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맛을 보게 된 셈이지요.

나는 빳빳하게 풀을 먹여 칼날처럼 다린 하얀 칼라를 단 교복을 입고 여름에는 흰 운동화, 겨울에는 검정 운동화나 학생용 검정 단화를 신었어요. 중학교 때 외국 대통령이 오면 공항에 나가 줄을 서서 태극기를 흔들었고 교련 과목을 통해 삼각건 접기, 제식 훈련 등 준 군사 훈련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성적을 핑계로 하는 선생님의 체벌, 도시락 검사, 소지품 검사 등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자랐지요. 교문 앞에서는 훈육주임이 서서 지각생을 잡아 학교 잔디밭의 잡풀을 뽑는 벌칙을 주기도 했고요.

신문과 방송에서 전하는 소식이나 어른들의 이야기를 별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라난 세대지요. 지금 청소년들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이야기지요? 그래서 기성세대가 느끼는 민주나 자유와 청소년들이 느끼는 민주와 자유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온 삶의 역사가 달랐으니까요.

한홍구 교수는 어쩌면 지금 청소년들이 들으면 별로 새롭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매듭을 풀어내려 하는 것일까요? 먼저 '두발과 복장 자유'라는 문제를 가지고 그 이유를 알아보기로 하지요.

노동자 대투쟁에서 왜 노동자들은 '두발 자유화'와 '복장 자유화'를 외쳤을까?

87년은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역사가 물꼬를 튼 해입니다. 6.10 민주화 항쟁에 이어 같은 해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가 많이 신장되는 쾌거를 이루어 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 대투쟁의 중심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공장이었습니다. 수만 명의 노동자가 운동장에 몰려나와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벌이는 모습은 세게 노동운동사에서 다시 없는 장관이었다고 하지요.

그러하다면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나와 노동자 대투쟁을 벌이며 외친 구호는 무엇이었을까요? 첫 번째 구호는 "두발 자유화"이고 두 번째 구호는 "복장 자율화"였다고 합니다. 왜 그런 희극적인 구호가 노동자 대투쟁에서 외쳐질 수밖에 없었을까요?

'7,8,9 투쟁은 혁명까진 아니었지만 정말 보기 드문 일이었어요. 워낙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니까 미처 유인물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수만 명이 몰리니까 사람들끼리 급하게 여기저기 구호를 적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것이, 당시의 첫 번째 구호가 "임금 인상"도 아니고 "근로 기준법 준수"도 아니었다는 거예요. "두발 자유화" 였습니다. 학생 이야기가 아닙니다. 울산의 대기업 노동자들 이야기예요. 두 번째 구호는 "복장 자율화"였습니다. 사방에서 격렬하게 싸움이 일어나는데 구호가 그래요. 서글프면서도 좀 희극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수만 명의 성인 남자들이 모여서 외치는 구호가 "두발 복장 자유화"라니....... 그걸 보고 많이 느꼈어요. 아, 이렇게 노동자들을 통제해 왔구나. 그래서 국민들 장발 단속을 하고 복장 단속을 했구나.'

요즘 두발을 규제하는 곳은 일부 학교와 군대입니다. 종교적인 이유나 강력한 항의의 방식으로 선택하는 자발적인 삭발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학교나 군대의 단체복과 두발의 규제는 개인의 몸을 통제함으로 복종 잘하고 고분고분한 사람을 만들어 통제를 쉽게 하려는 방편입니다.

군인처럼 짧은 머리에 노동자들에게 똑같은 단체복을 입혀 정한 시간에 나와 기계처럼 시키는 일에 복종하게 만들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학교에서부터 군대까지 똑같은 머리, 똑같은 옷을 입혀 너나 할 것 없이 조직의 부속품처럼 조직이나 사회가 원하는 순종형의 사람들로 키워냈던 것입니다.

그런 맥락을 알고 나니 왜 그 치열한 노동자 투쟁에서 "두발 자유화"와 "복장 자율화"를 외쳤는지 이해가 가지요?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청소년, 학부모 시민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왜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 했을까요? 알다시피 기성 세대들은 제대로 근현대사를 배워 본 적이 없습니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역사를 가르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또 다시 국정화된 역사 교과서의 편향된 시각으로 독재자를 우상화하고 독재의 잔재들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청소년들에 대한 또 다른 의식의 통제에 다름이 아닙니다.

온몸으로 민주와 자유를 맛 본 청소년들이 그런 꼼수에 넘어갈 리가 없지만 말이지요. 역사는 교과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촛불을 들고 나온 청소년들은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요.

촛불을 들고 거리에 서서 "왜곡되고 편향된 국정교과서로 배우지 않겠다!"고 외치는 청소년들에게 "가만히 있어라. 선생님과 어른 말씀 잘 들어라"라는 말은 통하지 않을 겁니다.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은 청소년들이 살고 있는 바로 그 삶의 현장이 모두 역사이며 청소년들 스스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직접 쓰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주는 그런 책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 / 철수와 영희 /15,000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 -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근현대사 이야기

한홍구 지음, 철수와영희(2016)


#한홍구의 청소년 역사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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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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