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물건에 딱히 집착이 없다. 특정 물건에 잘 꽂히지도 않고, 다행히 '지름신'도 잘 찾아오지 않는다. 작고 아기자기하고 예쁘장한 물건에 눈이 가지 않고, 그렇다고 크고 화려하고 그럴듯한 물건에 끌리는 것도 아니다.
대체로 물건 앞에서 심드렁한 자세를 취하는 난, 그럼에도 많은 물건을 쌓아두고 살아간다. 10년 전에 산 키보드, 8년 전에 받은 전등, 15년 전에 산 책 한 질, 새로 산 스마트 폰에 달려온 (불필요한) 사은품, 몇 개월 치다 만 기타, 역시 몇 개월 타다 만 스케이트 보드. 방을 둘러보면 사방엔 물건이 가득하다.
내게 소비는 감정의 분출이기 보단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위축되거나 우울한 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물건이 있다 싶으면 소비했다. 봄이 오면 봄옷, 여름이 오면 여름옷을 마련했다. 서랍 구석구석 들여다보면 몇 년 간 잊고 지냈던 외투, 옷가지들이 가득하다. 방 안 물건들을 둘러보면, 소비사회에 아주 적응 잘 한 나를 만날 수 있다.
소유에 대한 개념만 살짝 바꾸면...
그러다 몇 개월 전엔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읽고 물건을 많이 덜어냈다. 더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은 내다 버리거나 기증했다. 몇 년 간 입지 않은 옷도 눈을 꼭 감고 버렸고, 책도 버렸다.
내 오랜 꿈 하나는, 책으로 빽빽이 둘러싸인 서재를 갖는 거였다. 일본의 다독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저 유명한 '고양이 집' 같은 집을 꾸밀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는 (조금은 충동적으로) 생각을 바꿔봤다. 단지 '책을 많이 소유한 나'라는 이미지가 좋아서 책을 쌓아 두고 있는 거라면 이 이미지를 한번 걷어내 보고 싶었다. '많은 책'으로 둘러싸인 방보다는, '좋은 책' 또는 '좋아하는 책'을 품은 방이 더 '내방' 같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 마음으로 열 박스 가까이 책을 덜어냈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의 책이라 해도 다시 읽지 않을 것 같으면 박스에 넣었다. 일례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은 다 넣었다. 몇 번을 곱씹어 생각해봐도 하루키 소설의 환상성은 내 스타일이 아니므로, 앞으로도 그의 소설을 읽을 것 같진 않았다. 그러니 하루키 책을 왜 '소유'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하루키 에세이는 좋아하므로, 에세이는 그대로 뒀다).
그래도 책장엔 책이 수백 권 남았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거나, 언젠가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책들이었다. 소위 '내 삶을 바꾼 한 권의 책'에 해당하는 책들도 당연히 그대로 책장에 꽂아 두었다. 그리고 이 후 몇 개월 시간이 흐르면서 책장엔 또 새 책들이 들어찼고, 방에도 물건이 여섯 개쯤 새로 채워졌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는 책 포함 물건 모두를 버리고, 새 삶을 찾은 듯했지만,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한 셈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미니멀리즘'은 '무소유'의 개념은 아니다. 정말 좋아하는 물건이라면 소유해도 된다. 다만 불필요한 소유에서 고개를 돌리자는 것이고, 그렇게 고개를 돌린 곳에서 찾은 여유와 자유를 맘껏 만끽하자는 것이 미니멀리즘 사상이다.
사실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건, 어쩌면 그리 어렵지 않은(?)지도 모른다. 소유에 대한 개념만 바꾸면 된다. 꼭 필요한 물건은 소유하되, 나머지는 소유하지 말 것. 물건을 살 땐 충동적으로 구입하지 말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 뒤, 정말 필요하다 싶으면 구입할 것. 뼛속 깊이 새겨진 소비자로서의 책무에 죄책감을 느끼지 말 것. 또, 가장 중요한 건 물건으로부터 정체성을 빌려오지 말 것!(그러니까, 수천 권의 책이 마치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대변해준다는 생각을 하지 말 것!)
'아무 것도 없는'이 삶의 기준
억지로 물건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소유에 대한 개념을 바꾸면 저절로 소유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이 미니멀리스트의 생각이다. <궁극의 미니멀라이프>의 저자 아즈마 가나코의 말을 들어도 행위보다 '생각의 전환'이 앞선다는 걸 알 수 있다.
"꼭 사야 할 때도 '버리고 싶지 않으니까 사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심플라이프를 추구한다거나 물건을 줄이겠다는 마음보다는 단지 '낭비하고 싶지 않다', '버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한 편이에요." "기계에 의존하는데 익숙해지면 '그게 없으면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있는 것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발상으로 전환하면 그렇게 많은 도구가 필요 없어요.""지금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면 삶의 본질이 보일지도 모릅니다.""자신의 형편에 맞지 않는 것은 갖지 않는 것, 그뿐이에요." - 본문 중에서 역시나 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엔 그른 것 같다. 벼르고 벼르던 물건을 최근에 결국 구입한 걸 보니. 하지만 그러면서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미니멀리스트 근처를 배회하며 그들의 삶을 엿본다. 얼렁뚱땅 또 물건을 구입한 나보다는 냉장고, 세탁기도 없이 생활하는 배짱 두둑한 아즈마 가나코가 더 본질적인 삶을 사는 것만 같다.
가나코는 삶의 기준이 '아무것도 없는' 이라고 말했다. 물건이 없는 게 기본이기 때문에, 노후나 장래를 걱정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는단다. 가나코처럼 그렇게까지 '궁극의 기준'은 삼지 못하겠다. 하지만 '세미' 미니멀리스트를 도전하는 나는 기준을 '적게 소유하는'으로 두려고 한다. 생각해보면, 꼭 필요해서 산 물건 중에 정말 꼭 필요한 물건은 거의 없었다. 얼마전에 구입한 그 물건도 그렇다.
덧붙이는 글 |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사사키 후미오/ 비즈니스북스/2015년 12월 10일/1만3천8백원)
<궁극의 미니멀라이프>(아즈마 가나코/즐거운상상/ 2016년 10월 10일/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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