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1교시에 꼭 와주시면 좋겠어요. 도움반 공개수업이 있어요."
표현이 낯설었다. 도움반(특수교육반) 선생님은 '꼭'이라는 당위성 멘트를 날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녀는 언제나 친절하며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올해 들어 처음 들어보는 부탁조 메시지였다. 사실 공개수업이야 모든 선생님들이 일 년에 두 번 하는 거니까 그 시간에 다른 수업이 있으면 안 가도 그만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냥 좀 미안하네' 하면서 넘어가겠는데 이번엔 망설여졌다.
"혹시 교장, 교감샘도 오시나요?"
따각따각, 소심하게 손가락을 눌러 관리자들이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 메시지를 보냈다. 흠... 하... 답장이 없었다. 보낸 쪽지함에 보니 수신확인에 체크가 되어 있는데 왜 반응이 없는 걸까? 괜히 쓸데없는 쪽지를 보냈나 하고 후회하던 찰나 '삘리리' 전화가 걸려왔다. 내선번호 570. 도움반이다.
"네 감사합니다. 4학년 2바안~"
"선생님 아까 쪽지 보셨죠? 사실 요즘에 Y가 많이 힘들어해서 격려해주시면 해서요."
수신 멘트가 끝나기도 전에 말을 가로막은 건 뜻밖에도 Y 소식이었다. Y는 도움반에서 국어, 수학 수업을 받는 우리 반 남자애다. 말수는 적어도 뽀얀 피부에 늘 생글생글 웃고 다녀서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녀석. 그런데 Y가 힘들어 한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 식사하시고 잠시 도움반에서 말씀 나누실 수 있으세요?"
"애들이 자꾸 못한다고 놀려요, 장애인이라고..."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별관 3층 교실로 쫓아갔다. 숨을 헐떡이며 도착하자 가녀린 체구의 도움반 선생님이 약간 어두운 표정으로 의자를 빼주었다. 요즘 Y가 도움반 수업에 계속 지각을 해서 까닭을 캐물으셨단다. 그런데 Y의 대답이 화단에서 닭을 봤다고 했다가, 화장실에 들렀다고 했다가 횡설수설이었단다. 느낌이 이상해서 공부하던 교재를 덮고 상담하길 수십 분째, Y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길.
"애들이 자꾸 못한다고 놀려요. 장애인이라고, 딸린다고."
선생님은 그 대사를 읊으며 왼손 검지를 관자놀이 주변에서 빙빙 돌렸다. 아찔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숨을 고르고 찬찬히 들어보니 우리 반 남학생 두 명이 저지른 일이었다. 평소 믿고 아끼는 놈들이었다. 꼼꼼히 살피지 못하고 방치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식은땀이 되어 흘렀다. 제대로 지도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고개 숙여 사죄드리며 도움반을 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름 도움반 친구를 잘 배려하는 학급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수시로 장애이해교육을 해왔었는데 모든 게 허사가 된 기분이었다. 불과 지난주만 해도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종목을 안내하며 휠체어 컬링과 아이스 슬레지 하키 얘기를 했었다. 사회적 약자는 항상 우선적으로 배려받아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실망감이 컸다.
오후에 두 가해자를 상담하기로 마음먹고 5, 6교시 수업을 진행했다. 일부러 도움반에서 들은 사건은 말하지 않고 Y네 모둠을 유심히 지켜봤다. 종이인형과 OHP 필름, 스마트폰 플래시 라이트로 그림자 연극을 하는 활동이었다. 아이들은 흥부와 놀부 이야기에 맞춰 역할을 나누고 대사를 익히느라 여념이 없었다. 친구들이 맹연습하는 동안 Y는 종이인형을 만지작 거리며 대본을 외우는 둥 마는 둥 했다. 세 문장이 대본의 전부였다.
가해자로 지목된 A가 종이 인형을 Y의 손에 쥐어주며 플래시 라이트를 켜줬다. 그리고 시범을 보이더니 따라 해보라며 Y에게 반복 연습을 시켰다. Y가 가지고 놀던 종이인형 모퉁이가 찢어지자 가져가서 풀로 붙여줬다. 말투는 강압적이지 않았으며, 꼬집거나 강제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나는 여러 모둠 사이를 돌아다니며 슬금슬금 지켜보던 중이었기에 A가 선생 눈치를 보느라 그럴 까닭도 만무했다.
'꽤 괜찮은 애인데... 저 꼬마 녀석이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Y를 장애인이라고 놀린다고?'
순간 마음이 복잡해지며 의문이 들었다. 사건의 내막이 알고 싶어 수업이 종료된 후 두 아이를 불러 앉혔다. "법적보호 대상에게 폭언하는 게 얼마나 큰 잘못인지 알아?" 엄하게 꾸짖으니 3분도 안 돼서 눈가가 벌게졌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죄송하다는 말은 안 하고 억울하다며 울먹거린다.
"맨날 도와주려고 해도 걔는 노력도 안 하고 장난만 쳐요. 선생님 안 볼 때는 욕하고 이상한 게임 얘기해요!"
Y가 구멍 낸 몫 매워야 했던 구성원들
정리하면 이랬다. 우리 반은 4명씩 모둠 단위로 하는 수업이 잦다. 서로 힘을 합쳐야 과업을 완료할 수 있으니 협동이 필수적이었다. 아무래도 Y가 속한 모둠은 작업 속도가 더디고 완성도가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담임이 하도 'Y 좀 잘 챙기라' 하니 같은 모둠원들이 일거수일투족을 의식하며 보조를 맞춰주었다. 그런데 Y도 도움반 학생을 혼내지 않는 교사의 성향을 아는 터라 자기가 재미있는 것은 하고, 하기 싫은 것은 아예 손을 놓았다. Y가 구멍 낸 몫은 나머지 구성원들이 메워야했다.
자연스레 Y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높아지고, Y가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 친구들하고 같이 놀고 싶어서 엉뚱한 소리를 하면 욕을 해댄 것이었다. Y도 마냥 당하고 있지는 않고 쌍방이 입씨름을 했으니 가해자들 입장에서는 속상할 만도 했다.
따지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그래도 장애인이라고 놀리는 것은 상대방에게 큰 상처라고 타일렀다. 덧붙여 Y는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친구니 늘 양보하는 마음으로 지내 달라고 당부했다.
며칠 뒤 금요일, 폭언 사건도 있고 해서 도움반 공개 수업을 참관하러 갔다. 1학년생 한 명, 2학년생 한 명, Y, 도움반 선생님, 보조선생님 이렇게 다섯 명이 반달 모양의 책상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손뼉을 치며 60까지 수를 세어보는 활동으로 수업이 시작됐다. 삼십일!, 삼십이!, 삼십사!
"야, 삼십 삼이라고 해야지!"
잘못 들은 것일까? Y가 2학년 K에게 큰 소리로 잘못을 정정해 주었다. 나는 한 번도 Y가 수업 시간에 목청을 높이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더욱 놀라웠던 건 동생 K가 Y를 굉장히 믿음직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는 사실이었다. 이어서 동생들이 사십칠과 오십구를 틀리게 욀 때도 Y는 당당하게 지도했다. 도움반 맏형다운 패기가 있었다.
초반부의 활약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도움반 선생님이 교실 뒷벽에 붙은 시계들을 가리키며 이름을 묻자 Y는 손을 번쩍 들었다. Y가 조급한 입술을 떼어 답을 발표하기도 전에 옆에 앉은 S가 '디지털 시계'와 '바늘 시계'라고 냉큼 말해버렸다. Y 얼굴이 울긋불긋해졌다. 눈치 빠른 도움반 선생님이 Y 표정을 읽고 학교 어디에 가면 디지털 시계를 볼 수 있냐고 운을 띄웠다. 동생들이 턱을 괴고 고민하는 사이 Y가 쏜살 같이 체육관이랑 급식실을 언급했다. 모두 옳은 답변이었다.
4학년 2반에 사는 Y와 전혀 다른 Y가 도움반에 있었다. 씩씩하고, 지적인 대사를 마구 날리며, 명랑한 아이. 마지막 활동이 끝나고 도움반 선생님께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드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Y가 정말 열심히 하네요. 원래 이래요?"
"평소에는 더 해요. 오늘은 손님들이 계셔서 얼어서 그렇지."
도움반에 오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몰랐으리라. 그간 장애인을 차별 대우해왔었다. 장애가 있으면 약한 사람이니까 무조건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얼마만큼의 능력이 있고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섣불리 판단했다. Y는 얼마나 민망했을까? 자기도 숫자를 셀 수 있는데, 가위질 요리조리 할 줄 아는데 선생님이 네 살배기 취급을 하고 있으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장애인에게 연민의 감정을 품는 건 오만이다. Y를 교실에서 소극적으로 만든 건 담임인 나의 지나친 오지랖 때문이었다. Y야, 너의 진가를 못 알아봐서 미안하다. 내일부터 우리 반 시계 반장을 부탁해도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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