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겨울비가 촉촉하게 내렸다. 겨울 가뭄이 다소 해갈이 될 듯하다. 이렇게 겨울비가 내리는 날이면 따끈한 국물 음식이 생각난다. 겨울비 내리는 날 좋은 음식은 뭘까. 오늘은 수제비가 먹고 싶다. 그래서 여수 진남시장을 찾았다.
시장 초입에 있는 자그마한 분식집이다. 입구에는 빨간 떡볶이와 오뎅이 입맛을 유혹한다. 주방에 내걸린 빛바랜 메뉴판을 살펴보니 다행히 수제비가 있다. 수제비 한 그릇에 5000원으로 가격도 착하다.
잘근잘근 특별한 식감... 스트레스 해소에 좋아
TV에서는 최순실 등 국정농단 공범들의 첫 재판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답답한 소식에 갑자기 혈압이 상승한다. 나도 모르게 죄 없는 수제비를 잘근잘근 씹어대고 있다. 언제쯤 속 시원한 소식을 들을 수 있으려나. 이 개떡 같은 세상에서 맛있는 수제비처럼 맛깔난 세상을 잠시 꿈꿔본다.
이 집의 수제비는 모양새가 좀 별나다. 일반적으로 반죽한 밀가루를 얇게 떼어낸 수제비와 달리 두툼하다. 그래서 식감이 좋다. 잘근잘근 씹기에 좋아 수제비 먹으면서 스트레스 해소에 아주 그만이다. 밀가루 향이 올라오는 건 좀 개선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반찬은 배추김치와 깍두기가 참 맛깔스럽다. 예전 주인장이 갈빗집과 참치회 전문점 등의 큰 식당을 운영했다는데 나름의 노하우가 담겨있다. 소박하면서도 단출한 수제비 한 그릇이지만 이렇듯 반찬에도 신경을 많이 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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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의 수제비는 모양새가 좀 별나다. 일반적으로 반죽한 밀가루를 얇게 떼어낸 수제비와 달리 두툼하다. |
ⓒ 조찬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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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비맛도 괜찮다. 육수를 내어 끓여내는데 국물의 감칠맛이 우월하다. 먹을수록 알 수 없는 묘한 끌림이 있다. 맛집으로 추천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이집의 수제비 한번쯤 먹어볼만하다.
수제비에 관한 기록이 별로 없어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수제비를 먹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길은 없다. 그러나 가까운 이웃인 중국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농업기술서 <제민요술>에는 수제비가 '박탁'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경상도 통영 지방에서는 수제비를 '군둥집'이라고 한다. 북한 지역에서는 '뜨더국'이라고 부른다. 또한 닭 육수에 밀수제비를 넣어 끓인 황해도의 '또덕제비', 메밀가루를 익반죽하여 멸치장국에 미역과 함께 끓여낸 제주도의 '메밀저배기' 등의 비슷한 음식도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블로그 '맛돌이의 오지고 푸진 맛'과 여수넷통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