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드라마 <화랑>에서는 도성 사람들인 서라벌 귀족들의 횡포가 묘사됐다. 지난주 방영된 1회와 2회에서는 서라벌 밖의 하층민촌 주민인 막문(이광수 분)이 무명(박서준 분)과 함께 도성에 몰래 들어갔다가 겪은 참혹한 경험이 묘사됐다.
막문은 잃어버린 아버지와 여동생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다. 서라벌에 몰래 들어간 그날 밤, 그는 고급 주점에 일하러 들어가는 여동생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래서 뒤따라 주점에 들어갔다가 잘생기고 지체 높은 귀족 청년한테 주먹질을 당했다. 아무나 함부로 들어오는 데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무명이 달려와서 구해주지 않았다면, 막문은 그 자리에서 어떻게 됐을 것이다.
겨우 목숨을 구하는가 싶었지만, 막문을 추격하는 기마 무사가 있었다. 주점에서 그 사단이 벌어지기 전, 막문은 우연찮게 진흥왕(박형식 분)의 존재를 접했다. 무사는 천민이 신성한 왕의 존재를 접했다는 이유로 막문을 추격하는 길이었다. 결국 막문은 무사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드라마 시작과 함께 이렇게 죽음으로써, 막문은 '특별 출연'의 존재로 남게 되었다.
서라벌 도성 사람들의 '실체'드라마 <화랑>의 초반부에서는 서라벌에 사는 도성 사람들이 '갑질'을 하는 질 낮은 사람들로 묘사됐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었다. 그런데 신라왕조에서는 이들이 또 다른 중요한 의의를 띠고 있었다. 그것은 국가 비상시국마다 등장해서 '투표권 확대'를 실현시키고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는 세력이었다는 점이다.
왕조 국가에서는 임금의 혈통이 끊어져 그 자리가 비는 것이 가장 큰 정치적 위기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이럴 때마다 등장해서 나라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집단이 있었다. 국인(國人)으로 불리는 집단이 바로 그것이다.
일부 <삼국사기> 번역서들에서는 국인을 '백성'이나 '나라 사람'으로 풀이했다. 완전히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적합한 번역은 아니다. 왜냐하면, 국인이란 말 속에는 제3의 의미가 있으며,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는 그런 제3의 의미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중국 노나라의 역사를 다룬 책이 <춘추>다. 이 <춘추>의 해설서 중 하나가 좌구명이 쓴 <춘추좌씨전>이다. <춘추좌씨전>의 은공 1년 편에 따르면, 국(國)은 천자가 사는 도시, 즉 천자의 도읍이었다. 이것이 國의 원래 의미였다. 오늘날의 수도를 가리키는 개념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國의 원래 의미가 천자의 도성이었기 때문에, 國人이란 말의 원래 의미 역시 도성 사람들이었다. 드라마 <화랑>에 등장한 귀족 청년들은 바로 그런 국인들이었다.
국가 비상시마다 정치무대에 등장한 '국인'국인이란 단어가 도성 사람들을 의미하던 시절에, 이들은 국가 비상시마다 정치무대에 등장해 나라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역할을 했다. 중국 주나라나 춘추전국시대에도 그랬다. 맹자가 제나라 선왕에게 조언을 하는 장면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맹자> 양혜왕 편에 따르면, 맹자는 제나라 선왕에게 "신하들보다는 국인들의 여론에 따라 인사 문제나 형벌을 처리하시라"고 건의했다. 항상 그러라는 의미가 아니라 특별한 상황에서는 도성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라는 의미였다.
국인의 존재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도 자주 등장한다. 일례로 서기 184년, 제8대 임금인 아달라왕이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왕을 이을 태자가 없었다. 이런 경우, 왕실 어른들이 나서서 왕족 중에서 후계자를 선출해야 했다. 하지만, 당시 신라 왕실은 그럴 힘이 없었던 것 같다. 모종의 위기가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왕실이 차기 왕을 결정하지 못했다.
신라왕조가 끊어질 수도 있는 이런 상황에서, 발언권을 높이며 정치무대에 등장한 집단이 바로 국인 즉 서라벌 사람들이다. 이들은 일종의 비상기구를 결성했다. 서라벌 사람들로 구성된 회의체였다. 서라벌 사람들이라고 했지만, 모든 서라벌 주민은 아니었을 것이다. 노비는 당연히 배제되었을 것이고, 평민들은 포함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귀족 중심으로 구성됐을 것이다.
이 회의에서 국인들은 사위 겸 양자 자격으로 왕실 일원이 된 석탈해의 손자를 차기 왕으로 추대했다. 그가 제9대 벌휴왕이다. 이렇게 국인들이 나서서 벌휴에게 권위를 실어주고 그가 아달라의 왕위를 잇도록 함으로써 신라 왕조는 해체되지 않고 정통성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 뒤에 국인들은 원래 위치로 되돌아갔다.
만약 신라 왕실이 국인들의 개입을 거부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관직도 없는 너희들이 무슨 권한으로 개입하느냐면서 거절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신라는 내전에 준하는 혼란에 빠져들었을 것이고 왕실의 계속성을 보장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민심을 얻는 게 그들의 천년 생존의 비결이었다
선덕여왕의 즉위 때도 동일한 일이 있었다. 선덕여왕도 국인들의 추대로 왕이 됐던 것이다. 그는 아버지인 진평왕의 합법적 계승자로서 왕이 된 게 아니었다. 그의 등극도 비상 상황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선덕여왕이 왜 그렇게 등극해야 했는지를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위작 논란이 있는 필사본 <화랑세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선덕여왕은 장녀가 아니라 차녀였고 장녀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왕이 되었다.
비정상적인 왕위계승이었기에 국인들의 추대라는 특별한 절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렇게 국인들은 비상시마다 등장해서 정치적 불안 요인을 없애주고 나라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들의 개입을 인정했기에 신라 왕실은 지배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로마제국뿐 아니라 신라도 처음에는 서라벌이라는 도시에서 출발했다. 이 도시의 거주자 중에서 노비 혹은 노예를 제외한 사람들은, 신라의 지배력이 서라벌을 벗어나 외부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귀족의 지위를 획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신라가 훨씬 더 커진 뒤에 이들은 귀족 집단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신라 왕실은 비상시마다 서라벌 사람들 즉 국인들에게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고 그들의 힘을 빌려 왕조의 수명을 연장했다. 신라가 991년간이나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바로 여기 있다. 필요할 때마다 투표권을 과감하게 확대한 것이 왕조의 수명을 늘리는 데 기여했던 것이다.
2016년의 대한민국은 비상 위기에 처해 있다. 국민들이 국회를 압박해서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시켰다. 국민들은 이번과 같은 일들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정치문화 혹은 정치제도를 뜯어 고치고 싶어 한다. 새로운 토양에서 새로운 지도자들이 선출되길 원하고 있다. 그래서 연령의 고하를 불문하고 촛불을 들고 대통령뿐만 아니라 정치체제를 끊임없이 압박하고 있다.
만약 신라 왕실이 2016년 대한민국과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신라 왕실은 보다 더 많은 백성들의 참여를 인정하고 그들에게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생존의 길을 모색했을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투표권을 만 20세 미만에게도 확대한다거나,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선거제도를 뜯어 고친다거나, 국민을 배신한 선출직 공직자들을 투표로써 소환할 수 있도록 한다거나 등의 방법으로 민심을 얻고 기운을 충전해서 왕실을 보존하는 것이 그들의 천년 생존의 비결이었다.